고독해서 그래, 의리는 무차별 배포하지 않습니다

《의리의 사용처》

by 이다연



나는 의리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을 스스로 입 밖에 내는 순간
조금 민망해지긴 하지만,
사실이다.


대단한 정의감이나
목숨을 건 충성심 같은 건 아니고,
그냥 한 번 마음 준 사람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쪽이다.


그래서 가끔 손해를 본다.


나는 약속을 기억하고,
사람의 말을 저장해두는 편이다.


“그때 내가 힘들어서…”
“나중에 꼭 보자.”
“다연아, 그건 네가 있어서 가능했어.”


이런 말들이
나에게는 휘발되지 않는다.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인다.


문제는 상대는 그걸
임시파일처럼 다룬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분명히 내가 옆에 있었고,
분명히 내가 시간을 썼고,
분명히 내가 도와줬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일은 그 사람 혼자 해낸 일이 된다.


그럴 때 나는
섭섭해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아, 나는 의리로 왔고
저 사람은 상황으로 왔구나.


의리 있는 사람의 특징이 하나 있다.

끝까지 간다.
웬만하면 먼저 돌아서지 않는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마지막에 남아 있는 사람이

늘 나다.

모임의 끝,
관계의 끝,
프로젝트의 끝.


사람들은 중간에 빠지고
나는 끝까지 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종종 깨닫는다.

아,
여기까지가 내 몫이었구나.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누군가 힘들다고 해서
몇 달을 함께 버텨줬다.
말도 들어주고,
시간도 써주고,
괜찮다고 말해줬다.


그러다 내가
조금 힘들어졌을 때
조심스럽게 말했더니
상대가 이렇게 말했다.

“넌 원래 강하잖아.”


그 말 한마디에 내 의리는 퇴근했다.

그날 알았다.

의리는 서로에게 작동할 때만 의리라는 걸.

한쪽만 오래 붙잡고 있으면
그건 그냥 집착이나 노동이 된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의리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다만 의리의 사용처를
조금 까다롭게 고르게 됐을 뿐이다.


말이 가벼운 사람에게는 마음을 얹지 않고,
약속을 흘리는 사람에게는 시간을 쓰지 않는다.

의리는 여전히 있지만 무차별 배포는 중단했다.


나는 의리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줄였고,
관계를 단순하게 만들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고독해졌다기보다는
정확해졌다고 말하고 싶다.

고독해서 그래.


그래도
내 마음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에필로그 │ 의리 있는 사람의 다음 약속


이 글은 브런치북의 형식에 따라
서른 번째 숫자에서 멈춘다.

끝이라기보다는 약속된 쉼표에 가깝다.


나는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고,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도
아마 비슷한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


의리로 남아 있었고,
고독해서 남아 있었고,
괜히 끝까지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사람.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조금 닮아 있다.

서른 번의 글 동안
나는 고독을 설명했고,
의리를 점검했고,
관계를 정리했고,
마음을 덜 소모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알게 됐다.

고독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정확해지는 상태라는 걸.


의리는 버리는 게 아니라
다음에 쓸 사람을 고르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의리 있는 다연이는
이쯤에서 한 번 숨을 고르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려 한다.

고독한 구독자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서.


시즌 1은 여기서 조용히 문을 닫지만,
의리는 여기서 퇴근하지 않는다.


다음 주, 조금 더 단단해진 고독으로
시즌 2에서 다시 만날 예정이다.


늘 그렇듯 의리로 왔고,
이번에도 의리로 돌아온다.


고독해서 그래.


그래도 다음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금은 덜 외로워지기를 바라면서.


— 시즌 1 끝
그리고, 다음 주 계속.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30《고독해서 그래》: 《의리는 무차별 배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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