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처음부터 다시 읽다』

제4장. 글을 아는 자와 말만 아는 자의 거리/‘이두·향찰·구결’

by 이다연



― ‘이두·향찰·구결’이라는 불완전한 다리


조선 사회에서 ‘글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학습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에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기준이었고, 동시에 말만 아는 이들과의 거리를 만들어내는 힘이었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었지만, 글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지 않았다. 이 간극은 개인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문자 체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거리였다.


글을 아는 자는 기록할 수 있었다. 기록한다는 것은 사건과 생각을 남긴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공적인 것으로 승인받는 행위였다. 글로 남은 것은 법이 되었고, 제도가 되었으며, 역사가 되었다. 반면 글로 남지 못한 말은 사적인 영역에 머물렀고, 사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1. 이두(吏讀)의 예시 ― 행정을 위한 언어의 절충


이두는 주로 관청과 행정 실무에서 사용되었다.
한자를 그대로 쓰되, 뜻이 아니라 ‘소리’나 ‘기능’을 빌려 우리말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조선어 문장

"백성이 곡식을 바친다”

를 한문으로 쓰기 어려울 때,

이두에서는 조사나 어미 자리에 한자의 음을 빌려 다음과 같이 적었다.

‘之(지)’ → 우리말 조사 –의

‘也(야)’ → 문장 끝 어미 –이다


즉, 한자는 여전히 중심에 놓인 채 우리말의 문법 요소만 끼워 넣는 방식이었다.
이두는 말의 흐름을 흉내 냈지만, 읽고 쓰기 위해서는 한문 실력이 먼저 요구되는 문자였다.

→ 결국 이두는
백성을 위한 문자라기보다, 관리가 백성을 다루기 위한 도구에 가까웠다.


조선어 문장

“백성이 곡식을 바친다”


이두식 한자 표기 예시

百姓 米 進上 也

또는 조사·기능을 더 드러내면,

百姓之 米乙 進上也


왜 이것이 ‘이두’인가?

주요 어휘(백성·곡식·바치다) → 한자의 뜻 그대로 사용

조사·어미 → 한자의 음이나 기능만 차용

문장 구조는 우리말 어순을 부분적으로 반영


즉,

한문 문장을 기본으로 하되,
우리말 문법을 끼워 넣은 행정 실무용 문자


라는 이두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2. 향찰(鄕札)의 예시 ― 노래를 적기 위한 고난도의 표기


향찰은 주로 향가(鄕歌)를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방식은 한자의 뜻과 소리를 모두 차용해 우리말 문장을 거의 그대로 적으려 한 시도였다.

대표적인 예가〈제망매가〉와 같은 신라 향가이다.


예를 들어,
우리말 표현

“가신 님을 생각하며 슬퍼한다”

를 향찰로 적을 때는

어떤 한자는 뜻으로

어떤 한자는 소리로

어떤 한자는 조사 역할로 섞어 사용했다.

이 방식은 말의 내용을 비교적 충실히 담아냈지만,

표기 규칙이 극도로 복잡했고

같은 말을 사람마다 다르게 적었으며

해독을 위해서는 고도의 훈련이 필요했다.


→ 향찰은 말을 가장 잘 적을 수 있었지만, 아무도 쉽게 배울 수 없는 문자였다.


“가신 님을 생각하며 슬퍼한다”의 향찰식 표기 예시

去身 任念 哀悲 爲遣

또는 조금 더 향찰적인 방식으로 풀면,

去身 任 思念 哀悲 爲遣


왜 이런 식이 되는가?

동사·형용사 의미 → 한자의 뜻 차용

고유어(님, 조사, 어미) → 한자의 소리 차용

문법 요소 → 의미 없는 한자를 기능적으로 사용


이 때문에 향찰은

문장을 말 순서 그대로 적을 수 있었지만

같은 문장도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적을 수 있었고

후대에는 해독이 극도로 어려운 문자가 되었다.


3. 예시가 보여주는 공통된 한계


이두와 향찰의 예시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말은 분명 존재했고

그것을 적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지만

출발점이 ‘한자’였기 때문에 결코 모두의 문자가 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두는 행정에 머물렀고, 향찰은 문학에 머물렀다.
둘 다 백성의 일상 언어를 사회 전체로 확장시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들의 명분은 ‘다리’였지만, 백성이 스스로 건널 수 있는 다리는 아니었다.


기록의 권력, 침묵의 구조


조선의 공식 언어는 한문이었다. 법령, 실록, 외교 문서, 상소문은 모두 한문으로 작성되었고, 이를 해독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곧 정치적 자격을 의미했다. 글을 안다는 것은 국가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언어로 말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말만 아는 자는 국가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억울함을 글로 호소할 수 없었고, 국가가 발행한 문서를 스스로 이해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 대신 읽어주고, 대신 써주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백성의 말은 언제나 중개되었고, 그 말의 주체성은 쉽게 지워졌다.


말은 있었으나, 기록할 수 없었고 존재했으나, 남지 못했다.

이것이 조선 사회에서 말과 글이 분리되어 작동하던 방식이었다.


임시방편으로 놓인 다리들


그러나 조선은 이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사회는 아니었다. 한문만으로는 우리말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말과 글 사이를 잇기 위한 여러 시도가 등장했다. 이두, 향찰, 구결이 그것이다.


이두는 주로 행정 실무에서 사용되었다. 문장의 틀은 한문으로 유지한 채, 조사나 어미와 같은 우리말의 문법 요소를 한자의 음이나 기능으로 대신 표기하는 방식이었다. 말의 흐름을 흉내 내려했지만,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한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했다. 이두는 백성을 위한 문자라기보다, 관리들이 백성을 다루기 위해 선택한 절충에 가까웠다.


향찰은 향가를 기록하기 위해 사용된 방식으로, 말에 더 가까이 다가간 표기였다. 한자의 뜻과 소리를 섞어 사용함으로써 우리말 문장을 비교적 충실히 옮기려 했지만, 그만큼 복잡하고 불규칙했다. 같은 말을 사람마다 다르게 적었고, 일정한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향찰은 말을 가장 잘 담아냈지만, 아무도 쉽게 배울 수 없는 문자였다.


구결은 한문 경전을 읽기 쉽게 돕기 위한 보조 기호에 가까웠다. 이는 조선어를 기록하기 위한 문자라기보다, 한문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였다.

이 세 방식은 모두 하나의 공통된 한계를 지닌다.
말을 기준으로 문자를 설계한 것이 아니라, 한자를 유지한 채 말을 끼워 맞췄다는 점이다.


왜 ‘불완전한 다리’였는가


이두·향찰·구결은 분명 말과 글 사이를 잇는 다리였다. 그러나 그 다리는 끝내 건널 수 있는 구조가 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접근성에 있었다. 이 표기법들은 오히려 한문에 능한 소수만이 사용할 수 있었고, 백성이 스스로 익혀 자신의 언어를 기록할 수 있는 체계는 아니었다.


또한 일관성이 없었다. 표기 규칙이 정착되지 못한 문자는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없다. 말은 존재했지만, 그것을 모두가 동일하게 적고 읽을 방법은 없었다. 이로써 말과 글의 위계는 해소되지 않았고, 글을 아는 자와 말만 아는 자의 거리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두와 향찰은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흔적이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이들은 다리였지만, 백성이 스스로 건널 수 있는 다리는 아니었다.


세종이 본 한계


세종은 이 지점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한자를 보완하는 방식으로는 백성의 언어를 공적인 세계로 끌어올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말이 글이 되지 못하는 한, 백성은 언제나 정치의 주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세종의 질문은 단순했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으로 기록할 것인가였다.


백성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있는 문자, 말과 글 사이의 거리를 없앨 수 있는 문자 체계가 필요했다. 이 인식은 보완이 아니라, 창제를 요구했다.


요약 및 논의


조선 사회에서 글을 아는 자와 말만 아는 자의 거리는 구조적이었다. 이두·향찰·구결은 그 간극을 인식한 결과였지만, 출발점을 바꾸지 못한 한계를 지녔다. 말은 여전히 한자의 틀 안에 갇혀 있었고, 백성은 자신의 언어를 온전히 기록할 수 없었다.


이 불완전함 위에서, 훈민정음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으로 등장한다.
다음 장에서는, 세종이 왜 보완이 아닌 ‘새로운 문자’를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참고 문헌


문자사회학(문자–권력–기록의 관계)에 대한 인문학적 논의

『훈민정음해례본』(1446) 서문 및 해례

이기문, 『국어사개설』

최현배, 『우리말본』

김슬옹, 「훈민정음 창제의 역사적 배경」

조선 전기 이두·향찰·구결 연구

전반문자사회학(문자–권력–기록의 관계)에 대한 인문학적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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