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할머니, 고마워요 사랑해요
방울이는
학교에 다녀오면
늘 부엌으로 먼저 조로록 달려갔어.
그곳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준비해 둔
최고의 간식이 있었거든.
따뜻한 고구마,
잘게 썬 사과,
때로는 방울이가 좋아하는 달콤한 빵.
할머니는 말없이 웃으며
방울이를 안아주셨지.
"내 강아지...^^"
그래서 방울이는
그게 늘 있는 일인 줄 알았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였어.
부엌에 달려가도 간식이 사라졌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할머니에게 물어도
예전처럼 바로 웃으며
대답해 주지 않고,
방울이에게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어.
방울이는
괜히 마음이 서운해졌어.
이젠 내가 커서
안 챙겨주는 걸까?
나를 덜 좋아하게 된 걸까?
하지만 방울이는
그 마음을 말하지 않았어.
괜히 더 서운해질까 봐.
어느 날, 서운해하는 방울에게
엄마가 조용히 말했어.
“할머니가 자꾸 깜빡하셔.”
그때 방울이는 알았어.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 걸.
간식을 안 챙긴 게 아니라,
기억하지 못했던 거라는 걸.
방울이의 마음이 쑥 내려앉았어.
그날 밤, 방울이는 펑펑 울었어.
“나는…
서운해하기만 했어.”
그 슬픈 울음소리를 마렌이 들었어.
마렌은 방울이 옆에 앉아 방울이를 토닥였어.
“고마움은 기억하고 있을 때보다,
잊힐 때 더 선명해지기도 해.”
그 순간, 마당 한쪽
늘 그늘져 있던 자리에서
작은 하얀 꽃들이 고개를 숙이며 피어났어.
은방울꽃이었어.
그때,
빛처럼 요정 리아가 나타났지.
리아는 말했어.
“이 꽃은
늘 곁에 있었기에
보지 못했던 마음이야.”
방울이는 꽃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어.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방울이는
부엌에 먼저 갔어.
고구마를 꺼내고,
과일을 씻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잔에
차를 따라 놓았지.
“할머니, 간식 드세요.”
할머니는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웃었어.
“고맙다…”
그 한마디에
방울이의 가슴이 따뜻해졌어.
그 순간,
은방울꽃에서
은은한 향이 퍼졌어.
리아는 꽃을 들어 올리며 말했어.
“이제 이 꽃은
정원으로 돌아갈 수 있어.”
잃어버린 정원의 뿌리 가까운 자리.
그곳에 은방울 꽃씨가 떨어지자
땅이 조용히 숨을 쉬기 시작했지.
정원에
‘함께 살아가는 힘’이 돌아왔어.
마렌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느꼈어.
이제 자신은
아이의 마음을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을 이어 주는 존재가 되고 있다는 걸.
마렌의 빛은 조금 더 단단해졌어.
그날 이후, 매일 방울이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향했어.
간식을 챙기며
문득문득 생각했지.
예전엔 몰랐던 마음을.
그리고 어느 날은
아무 말 없이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렸어.
조금 놀란 듯
가만히 서 있던 할머니의 어깨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방울이를 향해 기울었어.
방울이는
그 품에서 작게 속삭였어.
"할머니...
사랑해요.
이젠...
제가 할머니 곁을 챙길게요.”"
그 말은
약속처럼
두 사람 사이에 남았어.
그제야 방울이는 알았어.
고마움은
받을 때보다
건넬 때
더 오래 마음에 머문다는 걸.
그리고 그 마음 어딘가에서
아주 조용히,
은방울꽃 향이
사르르 피어나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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