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5〈아기 이름은 아직 없고, 별명만 있다〉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이름보다 먼저
별명을 얻는다.”
(by 서이나)
신생아실 게시판에 새 종이가 붙었다.
〈오늘의 꼬물이들〉
서이나는 멈춰 섰다.
“… 잠깐만.
(내레이션)
병동 게시판은
늘 체온표와 주의사항으로 가득해야 하는데,
오늘은
뭔가 이상하다.
종이에는 이름 대신
이렇게 적혀 있다.
새해둥이 1호 — 울음 담당
만세 아기 — 수면 중 만세 자세 고정
찡그림이 — 표정 담당
먹보 후보 — 수유 후 바로 취침
서이나가 중얼거린다.
“… 이거 누가 붙였어요?”
“간호사실이요.”
“… 왜요?”
“귀여워서요.”
(내레이션)
병동에서 ‘귀여움’은
가끔 규정보다 빠르다.
산모 한 분이 게시판을 보고 웃는다.
“저게…
제 아기인가요?”
“아마도요.”
“울음 담당이라니…”
“… 아주 성실합니다.”
산모가 말한다.
“그래도요.”
“…네?”
“저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괜히 든든하네요.”
(내레이션)
이름을 부르기 전,
마음을 먼저 부르는 순간이 있다.
서이나는 펜을 들고
게시판 아래에
작게 한 줄을 적는다.
※ 별명은 임시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임시가 아닙니다.
윤제하가 본다.
“… 선생님.”
“네.”
“이건 규정에 없는데요.”
“알아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 아기들이 아직
글자를 못 읽어요.”
(내레이션)
신생아실의 규정은
대부분 어른을 위한 것이다.
아기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각자 자기 역할을 수행 중이다.
울음 담당은 열심히 울고,
만세 아기는 여전히 만세고,
찡그림이는 끝까지 찡그리고 있다.
서이나가 말한다.
“아가야.”
“…”
“너희.”
“…”
“별명 마음에 안 들면
빨리 커서 항의해.”
아기들은 아무 대답도 안 한다.
(내레이션)
아기들은 항상 침묵으로
세상을 이긴다.
서이나는 차트에 적는다.
‘오늘 컨디션 양호.
별명 다수 발생.
웃음 많음.’
그리고 한 줄 더.
‘사람들이 아기들한테
벌써 정이 들었음.’
아기들은 이름 없이 태어난다.
하지만 별명과 웃음과
괜한 애정부터 얻는다.
그게 이 병동의 방식이다.
오늘도 아기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먼저 정이 들었다.
별명으로 불렸던 날은
분명
오래 기억에 남을 거다.
어서 와.
이름 없는 하루.
그리고—
이미 사랑받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