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thing special/ 문갑도

35. 문갑도(文甲島)

by 이다연

말없이 마음을 접어두는 섬

육지와 바다 사이에서 남겨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의 섬.

“배를 타고 들어가지만,
말은 내려두고 간다.”


문갑도(文甲島)


문갑도는
섬의 형태가 책상(문갑)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단순한 외형 묘사가 아니라,
이 섬의 성격을 정확히 설명하는 열쇠가 된다.


文 — 말과 기록,
甲 — 가장 앞선 것,
島 — 고립이 아닌 선택.


이 섬은 묻지 않는다.
“왜 왔느냐” 대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한다.


1. 섬, ‘말의 바깥’


우리는 여행지에서
자주 설명하려 든다.

왜 왔는지,
무엇을 봤는지,
어떤 의미였는지.


하지만 문갑도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이곳에선
말보다 먼저 침묵이 도착한다.


2. 배가 남기고 간 것들


문갑도는 배를 타야 닿는다.
다리도, 우회도 없다.

그래서 이 섬에 들어올 때
사람은 하나씩 내려놓게 된다.


일정표,
연락,
굳이 해야 할 설명들.


배가 떠나고 나면
섬엔 생각보다 적은 것만 남는다.
그리고 그 적음이
이 섬의 본질이 된다.


3. 시간이 접히는 방식


문갑도의 시간은
흐르기보다 접힌다.


파도는 반복되고,
바람은 방향을 바꾸지 않으며,
길은 더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섬에선
앞으로 가는 시간보다
잠시 멈춘 시간이 더 또렷하다.


여기서는
‘무엇을 할까’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먼저 보인다.


4. 풍경, 설명 없는 문장


문갑도의 풍경은 문장처럼 짧다.

낮은 집들,
조용한 포구,
사람보다 바다가 먼저 남아 있는 자리.


이곳의 풍경은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각자의 마음이
풍경 안으로 들어간다.


5. 문갑도, 섬의 기본 정보


행정구역: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교통: 인천 → 덕적도 경유 → 문갑도 (여객선)

특징: 소규모 섬, 주민 수 적음

분위기: 관광보다 생활, 속도보다 정적


문갑도는 작다.
그러나 비워둘 수 있는 여백은 크다.


6. 문갑도 文甲八景(문갑 8경)


1경. 갑형도서(甲形島書)


바다 위에 펼쳐진 낮은 책상 하나.
이 섬은 무언가를 쓰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오면
조용히 받아 적을 뿐이다.


2경. 문갑백사(文甲白沙)


파도는 여름을 크게 부르지 않는다.
모래는 오래 말없이 눌려 있고,
사람의 발자국은
금세 바다로 지워진다.


3경. 송림정적(松林靜積)


소나무들은 서로를 부르지 않는다.
바람이 지나가도
숲은 설명하지 않고,
고요만 겹겹이 쌓아 둔다.


4경. 포구일상(浦口日常)


그물은 풍경이 되지 않으려
늘 제자리에 놓여 있다.
일과 삶이 나뉘지 않는 곳,
여기서는 하루가 그대로 남는다.


5경. 갑산완능(甲山緩稜)


섬의 가장 높은 곳조차

몸을 세우지 않는다.
오르다 보면
마음이 먼저 낮아진다.


6경. 어촌만식(漁村晩食)


노을보다 먼저
저녁 냄새가 퍼진다.
바다는 말없이 어두워지고,
섬은 밥 짓는 소리로 하루를 닫는다.


7경. 갑해무언(甲海無言)


이 바다는
늘 먼저 변화를 맞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8경. 귀로정잔(歸路靜殘)


배가 떠난 뒤에도
섬은 끝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사진이 아니라
말이 줄어든 마음이다.


7. ‘말을 줄이는 섬’의 의미


문갑도는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존재는 충분하다는 것.


이 섬의 아름다움은
보이는 데 있지 않고
남겨지는 데 있다.


Epilogue


문갑도를 나올 때 나는 배를 탄다.

이번엔 몸보다 말이 먼저 떠난다.


무언가를 얻었다기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섬에 두고 온 기분.


문갑도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마음이
말이 될 필요는 없어.”


가장 조용한 섬에서
나는 가장 많은 말을
비로소 내려놓았다.


♡- Legend

팔선녀굴 전설


아득한 옛날,
문갑도 바다 위로 달이 유난히 밝던 밤이 있었다.

그날 밤, 하늘의 구름이 갈라지며
여덟 명의 선녀가 은빛 물결을 따라 내려왔다.


그들은 인간 세상을 훔쳐보러 온 것이 아니라,
바다와 땅이 만나는 경계의 숨을 쉬게 하기 위해 내려온 존재들이었다.


선녀들은 문갑도의 절벽 아래,
바람이 가장 고요해지는 굴 앞에 머물렀다.
낮에는 굴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바닷가로 나와 춤을 추었다.


그들의 춤이 시작되면
파도는 스스로 소리를 낮추었고,
별들은 굴 입구로 더 가까이 내려왔다.
선녀들의 노래는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섬의 바위와 풀, 조개와 물고기들은
그 노래를 모두 기억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한 어부가 달빛에 비친 선녀들의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그가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사이,
선녀들은 이미 인간의 시선을 느꼈다.

선녀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남아야 할 시간이 다 되었구나.”


그날 이후,
여덟 선녀는 더 이상 바다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굴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
스스로 바위가 되고, 물이 되고, 바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굴을 팔선녀굴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전해 내려온다.

바닷물이 유난히 잔잔한 날,
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여덟 개로 나뉘어 들리면
그것은 선녀들이 아직도
섬을 지키며 숨 쉬고 있다는 증거라고.


지금도 문갑도에서는
그 굴 앞에서 소원을 크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으로만 조용히 빌면,
선녀들이 바다의 길을 돌아
그 소원을 가장 알맞은 때에
달님에게 조용히 띄워 보낸다고 한다.


― 《섬 thing Special》
《말없이 마음을 접어두는 섬, 문갑도》


















































― 《섬 thing Special》: 《어머니처럼 자리를 내어주는 섬, 석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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