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thing special/ 선유도

36. 선유도(仙遊島)

by 이다연


선유도(仙遊島)

仙 — 속도를 내려놓은 존재,
遊 — 목적 없는 머묾,
島 — 현실에서 한 발 물러난 자리.

이 섬은 묻지 않는다.
“왜 왔느냐” 대신
“잠시 놀다 가도 괜찮다”라고 말한다.


1. 섬, ‘유영(遊泳)’


선유도에 오면
사람은 걷기보다 흘러 다닌다.

어디를 꼭 봐야 한다기보다,
발길이 닿는 쪽으로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이 섬의 길은
도착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은
일정이 아니라 상태가 된다.


2. 시간이 가볍게 풀리는 곳


선유도의 시간은 붙잡지 않는다.

햇빛은 바다 위에서 오래 머물고,
파도는 리듬만 남긴 채 사라진다.


이곳에선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먼저 온다.


3. 풍경, 유희의 결


선유도의 풍경은 고요하지 않다.
그러나 소란스럽지도 않다.


모래는 발을 부르고,
바다는 눈을 붙잡고,
노을은 말을 걸다 말고 사라진다.


그래서 이 섬의 풍경은
정적이 아니라 유희다.
바라보는 동안
사람도 풍경의 일부가 된다.


4. 선유도, 섬의 기본 정보


행정구역: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위치: 고군산군도 중심 섬

교통: 군산 → 고군산연결도로

특징: 명사십리 해변, 낙조, 완만한 지형


선유도는 넓다.
그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섬이다.


5. 선유 8경


1경. 명사유보(明沙遊步)


모래는 길이 아니라 초대다.
걷다 보면 목적은 사라지고,
발자국만 남았다가
이내 파도에 씻겨간다.


2경. 선유완조(仙遊緩潮)


이 바다에선 서두르는 파도가 없다.
물결은 오고 가는 대신
그저 놀다 멈춘다.


3경. 선유봉망(仙遊峰望)


높지 않은 봉우리 위에서
시야는 뜻밖에 멀어진다.
올라온 길보다
마음이 먼저 내려간다.


4경. 망주석담(望主石談)


두 바위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오래 마주 본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듯이.


5경. 군산낙조(群山落照)


해는 늘 같은 방식으로 지지만,
이곳의 저녁은 매번 다르다.
노을은 풍경이 아니라
하루를 접는 손길이다.


6경. 섬길유연(島路遊然)


길은 분명 이어져 있는데
서두를 이유는 없다.
선유도의 길은
걷는 사람을 목적에서 풀어준다.


7경. 고군연해(古群連海)

섬들이 섬을 부르며
바다 위에 흩어져 있다.
혼자가 아닌 고요가
이 바다의 깊이다.


8경. 귀심유잔(歸心遊殘)


돌아가는 길에도 놀던 마음은 남는다.
선유도는 사람을 가볍게 보내준다.



선유도의 여덟 장면은
감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잠시 놀다 가도 괜찮다는 상태를
사람에게 남길뿐이다.

선유도에서 쉼은 목적이 아니고,
유영이 마음의 형식이 된다.


6. ‘놀다 간다’는 것의 의미


선유도는
우리에게 쉼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놀다 가는 법을 가르친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괜찮고,
아무 의미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


이 섬에서 사람은
잠시 ‘나’가 아니라
흘러가는 존재가 된다.


Epilogue


선유도를 나설 때,
나는 무언가를 정리하지 않는다.

대신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채 돌아간다.


선유도는 이렇게 말한다.

“쉬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잠깐 놀다 가.”

마음이 유영하듯 풀어지는 섬.

선유도는 현실과 일상 사이에서
사람을 잠시 신선처럼 만들어 주는 섬이다.


♡- Legend

《기다림이 바위가 되다》


아득한 옛날,

선유도 바다에는 아직 다리가 없고
섬과 섬 사이의 거리는
기다림으로만 건너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섬 끝자락,
바다를 가장 오래 바라볼 수 있는 바위 위에
한 여인이 살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이름 대신
‘바다를 보는 사람’이라 불렀다.


여인의 남편은

바다로 나가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그는 떠날 때마다 말하곤 했다.
“파도가 잦아들면 돌아올게.”
그 말은 약속이었고,
여인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이유였다.


여인은 매일 같은 자리에 섰다.
해가 뜰 때도,
물이 빠질 때도,
노을이 바다에 잠길 때도.


기다림은 점점
몸의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곧 삶이 되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오시오.”
“기다림에도 끝이 있는 법이오.”


그러나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돌아오지 않았을 뿐,
떠난 건 아니니까요.”


그날도 여인은
바다와 마주 선 채 해를 맞았다.
바람이 불었고,
파도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섬을 덮을 즈음,
여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가가 보았을 때,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바위였다.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파도는 그 바위를 피해 돌아갔다.


사람들은 그 바위를
망부석이라 불렀다.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된 바위가 아니라,
기다림 자체가 굳어버린 자리라고.


그래서 지금도 그저 기다렸던 시간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듯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바다에서 들려오는 낮은 소리는

여인이 남긴 말이라고 전해진다.


“기다림은
돌이 되어서도
바다를 바라본다.”


그 기다림이

언젠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 자리에 남아
섬의 풍경이 되었다.


― 《섬 thing Special》
《마음이 놀다 가는 섬, 선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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