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삽시도(揷匙島)
揷 — 꽂다,
匙 — 숟가락,
島 — 물 위에 놓인 쉼의 자리.
이 섬은 묻지 않는다.
“무엇을 하러 왔는지” 대신
“아직 떠날 필요는 없지 않으냐”라고 말한다.
삽시도는 오래 머무는 법을 안다.
삽시도에 오면 사람은 서두르다 멈춘다.
이 섬의 이름처럼 마음 어딘가에
작은 숟가락 하나가
조심스럽게 꽂힌 느낌이다.
크게 떠먹지 않아도, 조금씩 오래 남는 맛.
삽시도는 그런 맛으로 사람을 붙잡는다.
삽시도의 시간은 높이 들리지 않는다.
바다는 낮은 톤으로 숨을 쉬고,
햇빛은 소리 없이 물 위에 내려앉는다.
여기서는 ‘언제까지’보다
‘아직 괜찮다’가 먼저 다가온다.
이 섬은,
시간이 흐른다기보다 천천히 놓인다.
삽시도의 풍경은 관광지의 얼굴이 아니다.
어선이 쉬고, 그물은 말려 있고,
소나무는 오래 서 있다.
특별하지 않아서 더 믿음직한 풍경.
이 섬의 아름다움은
보여주기보다 살아온 시간의 결에 가깝다.
행정구역: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리
위치: 서해 보령 앞바다
면적: 약 3.98 ㎢ — 충남에서 안면도·원산도 다음으로 큰 섬.
해안선 길이: 약 10.8 ㎞.
교통: 대천항 → 삽시도 여객선
특징: 완만한 해안선, 소나무 숲, 조용한 어촌
인구(2011): 483명 (남 244명 · 여 239명), 237세대.
토지이용: 논·밭·임야로 구성되며 어업과 소규모 농업(쌀·채소류) 병행.
삽시도는 크지 않다.
그러나 하루를 맡기기엔 충분히 넓다.
소나무 숲길은 속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걷다 보면 생각이 먼저 내려앉는다.
빛은 바다 위에서 낮게 반사된다.
눈부심 대신 잔잔함이 남는다.
일이 끝난 뒤의 마을.
말보다 생활의 소리가 먼저 들린다.
모래 위에 남은 것은 발자국이 아니라
머물다 간 마음이다.
해는 조용히 접힌다.
이 섬의 저녁은 하루를 다독이는 손길 같다.
떠나는 길에서도 마음은 급해지지 않는다.
삽시도는 사람을 서두르지 않게 보낸다.
삽시도는 쉼을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 말 없이 곁에 남는 법을 보여준다.
크게 감동하지 않아도,
사진을 남기지 않아도,
이 섬은 충분하다.
삽시도에서 사람은 잠시
삶의 속도를 내려놓은 존재가 된다.
삽시도를 떠날 때
나는 무언가를 정리하지 않았다.
다만 마음 한쪽에 꽂혀 있던 상심을
그대로 둔 채 돌아나왔다.
삽시도는 이렇게 말한다.
“많이 가져가지 않아도 괜찮아.
조금 남겨두고 가.”
삽시도는 현실과 일상 사이에서
사람에게 조용히 머무는 법을 가르치는 섬이다.
그저 넓고 깊기만 했다.
왜구의 배가 서해로 스며들던 시절,
이 일대의 바다는
사람들에게 늘 불안한 경계였다.
그때 한 장수가 육지 끝에 서서
바다를 오래 바라보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말없이 활을 들어 올렸고,
파도가 가장 크게 부서지는 쪽을 향해
화살 하나를 날렸다.
화살은 바다 한가운데로 날아가
그대로 멈췄다.
사람들은 말했다.
“바다에 화살이 꽂혔다.”
그 자리에 작은 섬 하나가 드러났고,
사람들은 그 섬을 삽시도(揷矢島)라 불렀다.
꽂을 삽(揷),
화살 시(矢).
바다를 가르기 위한 화살이 아니라,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경계의 표시였다고 한다.
그 뒤로 삽시도는 외해를 막아서는 자리로 남았고,
사람들은 그 섬을
‘바다가 함부로 넘지 못하는 곳’이라 여겼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삽시도는
바다는 여전히 흐르지만,
이 섬 앞에서는 한 번쯤 속도를 늦춘다.
화살은 이미 역할을 다했고,
섬에는 사람이 살아갈 만큼의 잔잔함만 남았다.
삽시도는 그렇게 화살 하나로 시작해
머무름의 섬이 되었다.
― 《섬 thing Special》
《‘머무름이 꽂히는 곳 섬, 삽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