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금오도(金鰲島)
金 — 쉽게 닳지 않는 시간,
鰲 — 바다를 떠받든 상상의 짐승,
島 — 파도 위에 버틴 자리.
이 섬은 먼저 묻지 않는다.
“왜 왔는지” 대신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렸지”
라고 말하는 듯하다.
금오도는 쉽게 도착할 수 있지만
쉽게 떠날 수는 없는 섬이다.
금오도에 서면 땅이 먼저 단단하다.
바다는 넓지만 섬은 흔들리지 않는다.
절벽은 바람을 맞고,
길은 그 절벽을 따라 돌아간다.
이 섬의 형태는 아름다움보다
방향을 먼저 선택한 흔적 같다.
금오도의 시간은 흘러서 사라지지 않는다.
파도에 깎이고, 바람에 마모되며
결국 남아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시간이 빠르다는 느낌보다
“오래 버텼다”는 감각이 먼저 온다.
금오도의 풍경은 다정하지 않다.
하지만 정직하다.
절벽은 숨기지 않고,
바다는 과장하지 않으며,
길은 돌아가되 피하지 않는다.
이 섬의 풍경은 감상이 아니라
존재의 태도에 가깝다.
행정구역: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위치: 여수 연안 남쪽 해상
성격: 유인도
특징: 비렁길(해안 절벽길), 험준한 지형, 깊은 남해
금오도는 걷는 섬이다.
그러나 가볍게 걷는 섬은 아니다.
절벽 위 길.
아래를 보면 생각이 조용해진다.
사람은 자연 앞에서 말수가 줄어든다.
바다는 이 섬에서 옆으로 흐르지 않는다.
정면으로 마주한다.
비와 바람을 견뎌낸 흔적들이
섬 전체에 남아 있다.
해는 절벽 뒤로 천천히 내려간다.
이 섬의 저녁은
하루를 시험처럼 마무리한다.
마을은 낮은 곳에 있다.
바다보다 높아지지 않으려는 듯
몸을 낮추고 산다.
돌아가는 길에 마음이 가벼워지기보다
중심이 잡힌다.
금오도는 강한 섬이다.
그러나 버티기 위해 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
이 섬에서 사람은 잠시,
자신의 중심을 점검하게 된다.
금오도를 떠날 때 나는 감상을 챙기지 않는다.
대신 한동안 똑바로 서 있고 싶어진다.
금오도는 이렇게 남는다.
“흔들려도 괜찮아.
다만, 떠밀리지는 말 것.”
금오도는 남해의 바람과 파도 사이에서
사람에게 버텨온 시간의 무게를 건네는 섬이다.
《섬을 떠받들다》
아득한 옛날,
남해의 물길이 지금보다 더 깊고 거칠던 시절,
이 바다에는
섬이 가라앉는 밤이 잦았다고 전해진다.
파도가 높아질 때마다
사람들은 바다가
땅을 삼키려 한다고 믿었다.
그때 바다 아래에서
아주 큰 존재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등은 바위처럼 단단했고,
숨은 물길처럼 깊었으며,
움직임은 느렸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 짐승.
사람들은
그것을 오(鰲)라 불렀다.
바다를 떠받드는 상상의 짐승,
섬을 무너뜨리지 않는 존재.
그 오가
파도가 가장 거세게 부딪치는 자리로 올라와
등 위에 땅을 올렸고,
그 자리가
지금의 금오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 섬은 가라앉지 않았고,
파도에 밀려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말했다.
“저 섬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의해 받쳐진 섬이다.”
섬은 알았다.
도망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금오도는 바다를 피하지 않았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지금도 파도가 세게 치는 날이면
사람들은 말없이 바다를 내려다본다.
보이지 않지만 아직도 그 아래에서
섬을 떠받들고 있을 느리고 단단한 등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 《섬 thing Special》
《‘섬을 떠 받들다, 금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