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신수도(新秀島)
“섬은 작지만, 바다는 깊다.”
신수도는 그런 곳이다.
화려한 풍경 대신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이
천천히 바다와 섞여 흐르는 섬.
도시의 소음이 닿지 않는 곳에서
하루는 파도처럼 오고
저녁은 물결처럼 가라앉는다.
新(신) : 새로울 신
秀(수) : 빼어날 수
島(도) : 섬 도
즉, 새롭고 빼어난 풍경을 품은 섬.
신수도라는 이름에는 바다의 아름다움과
사람이 살아가는 섬의 시간이 함께 담겨 있다.
섬은 크지 않지만 바다는 넓고,
그 바다는 매일 다른 얼굴로 섬을 감싸 안는다.
누군가는 이곳을
“사천 바다의 숨이 가장 잘 들리는 섬”
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크게 느껴지는 곳”
이라고 기억한다.
신수도는 경상남도 사천시
삼천포 앞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배로 10분이면 닿지만
바다 위에서는
또 하나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육지와 멀지 않지만 섬에 발을 딛는 순간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
아침은 배와 함께 시작되고
낮에는 그물이 마르고
저녁이면 항구가 다시 조용해진다.
신수도의 하루는 시계가 아니라
바다의 호흡으로 흐른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하루를 여행하기보다
섬의 시간을 잠시 빌려 사는 기분이 든다.
배에서 내리면
작은 항구가 가장 먼저 섬의 얼굴을 보여 준다.
어선들이 조용히 묶여 있고
바다는 부두 계단을 천천히 적신다.
이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파도와
멀리서 울리는 갈매기뿐이다.
신수도는 이 작은 항구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맞이한다.
신수도의 골목은 바다 바로 옆에서 시작된다.
낮은 집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말린 그물과 조용히 쉬는 고양이들이 보인다.
섬의 골목은 사람의 길이기도 하지만
바람이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신수도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멀리 다른 섬들이 겹겹이 떠 있다.
바다의 섬들은 하나의 풍경처럼 이어진다.
섬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넓기보다 깊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작은 존재라는 걸
겸허히 느끼게 된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항구의 빛도 부드러워진다.
어선은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고
마을에는 저녁연기가 올라온다.
그 시간의 바다는 낮보다 훨씬 고요하다.
신수도의 저녁은 풍경이 아니라
섬의 하루가 숨을 고르는 순간이다.
행정구역: 경상남도 사천시 신수동
위치: 삼천포항 남쪽 약 2km 바다
면적: 약 1.3㎢
해안선 길이: 약 6km
인구: 약 200명 내외
연결: 신수대교(연륙교)
신수도는 육지에서 비교적 가까운 섬이지만
관광지보다 어촌의 삶이 더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풍경보다 사람의 시간을 먼저 만나게 된다.
신수도의 사람들은 바다의 기분을 읽으며 산다.
바람이 세면
“오늘은 바다가 거친 날”이라고 말하고,
바다가 잔잔하면
“내일은 좋은 물때가 되겠다”라고 이야기한다.
섬에서의 삶은 자연과 협상하며 사는 삶이다.
그래서 섬사람들의 하루는
도시보다 단순하지만 훨씬 깊다.
이곳에서는 바다와 함께 사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봄에는 바다 안개가 섬을 감싸고
여름에는 햇빛이 물결 위에서 반짝인다.
가을이면 통영 바다가 가장 깊은 색을 띠고
겨울에는 바람이 섬을 깨끗하게 씻어 간다.
신수도의 계절은
꽃보다 바다의 색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어느 계절에 와도 섬은 다른 얼굴을 보여 준다.
신수도를 떠나는 배에 오르면
바다는 한동안 나를 따라온다.
멀어지는 섬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곳이 특별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잠시 느린 시간을 살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섬은 늘 작다.
하지만 그 안에는
도시보다 넓은 시간이 들어 있다.
그리고 신수도는
그 시간을 바다 위에
조용히 펼쳐 놓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사천 앞바다에는 아직 이름 없는 섬.
섬은 낮고 조용했지만
바다는 늘 그 섬을 둘러싸고
깊은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은 먼바다를 바라보며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 섬 아래에는 잠든 용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남해 깊은 바다에는
한 마리의 큰 용이 살고 있었다.
그 용은 오래전 세상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지만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 지쳐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용은 조용한 바다 아래에서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자 용의 몸은 바다와 섞이고
등은 산이 되고 비늘은 바위가 되었다.
폭풍이 몰아친 어느 밤이었다.
번개가 바다를 가르고 파도가 크게 일었다.
그 순간 용의 머리가 바다 위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날 아침
어부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섬의 모습이 용의 머리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섬을 신두섬(神頭島)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신(神) — 신령한
두(頭) — 머리
신령한 용의 머리가 바다에서 솟은 섬이라는 뜻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섬의 이름은 조금씩 변했다.
어떤 사람은
바다가 깊다 하여 심수도(深水島)라 부르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섬 주변에 산과 바위가 쉰두 개라 하여
쉰두섬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사람들은 이 섬을
*신수도(新樹島)*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면
섬사람들은 아직도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용이 몸을 뒤척이는 날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한다.
신수도는 “바닷속에서 깨어난 용의 섬”이라고.
그리고 그 용은 지금도 바다 아래에서
통영의 물길을 지키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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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thing Special》 : 《바다의 숨, 신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