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홍수> 시청후기

스포일러 주의

by 오윤오

- 이번 글은 김병우 감독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를 시청하고 적은 후기입니다.

-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개인적 취향과 인상을 토대로 편하게 감상을 남겨보았습니다.

- 영화 내용을 가리지 않고 언급하고 있어 열람에 주의를 요합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께서는 먼저 작품을 보고 읽어주세요!




친구 L의 추천으로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를 시청하게 되었다. 스토리가 퍼뜩 이해되지 않아 되감기와 일시정지를 활용했다. 마지막까지 본 후에도 영화를 다시 돌려보면서 스토리를 정리해보았다.



스토리

주인공은 여섯 살배기 아들을 둔 구안나(김다미 분)다. 잠에서 깨어난 구안나는 홍수가 일어난 것을 깨닫는다. 때마침 자기가 일하는 센터의 인력보안팀 소속이라는 사람(손희조, 박해수 분)이 전화를 걸어와 옥상으로 대피할 것을 지시한다. 채비할 시간이 부족해 구안나는 아들의 약(이후 당뇨병 치료제인 것으로 암시됨)만 챙겨 나서고, 손희조를 만나 옥상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옥상에 다다르면서 숨겨진 사실들이 드러난다.

1. 인류는 멸종이 확실시되어 있었으며, 소수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2. 멸종을 막을 수 없다는 판단에 의해 이미 새 인류를 조성하는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으며, 구안나는 이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로 내정되어 있었다. 구안나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연구를 진행했다.
3. 구안나는 '이모션 엔진'이란 것을 개발했다. 인간을 몸-마음의 이분법으로 구분할 때 마음에 해당하는 부분을 기술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인간의 몸의 해당하는 부분에 이모션 엔진을 합쳐 새로운 인류를 만들겠다는 것이 멸종의 대책이었다.
4. 아이(신자인)는 기계다. 인간 '몸'의 기술적 재현에 '마음'의 기술적 재현(이모션 엔진)을 합친 존재다. 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작된 시제품이라 할 수 있다. 구안나가 아이를 양육한 것은 아이의 이모션 엔진에 경험이라는 자양분을 제공하는 과정이었다.
5. 구안나는 남편이 있었다. 남편과 아이(기계) 셋이서 차가 물에 잠기는 사고를 당했는데, 이때 남편을 잃고 아이만 구출할 수 있었다. 이후 구안나는 아이를 연구기관에 반납하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구안나는 구출되지만, 구출 대상 인원은 한정되어 있었다. 손희조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원이 제거되고, 아이도 작중 표현으로 '회수'된다. 신자인의 하드웨어(몸)에 이식된 '이모션 엔진'(마음)을 적출한 것인데, 앞서 말한 멸종 대응 계획의 연구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구안나는 아이의 엔진을 실은 로켓을 타고 우주로 떠난다. 로켓 안에서는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개체를 제작할 방법을 떠올린다. 먼저 재난 상황의 시뮬레이션을 구동해 아이(의 이모션 엔진)와 아이 어머니 역할의 개체(이모션 엔진)를 함께 둔다. 시뮬레이션 안에서 아이를 실종시킨다. 재난 시뮬레이터 속에서 어머니 역할의 개체(의 이모션 엔진)가 죽거나, 그 아이를 포기하고 혼자 살아남는 것을 택하면, 시뮬레이터를 다시 돌린다. 아이를 구출해 내는 데 성공할 때까지 반복한다. 성공했을 때 비로소 모성애를 학습했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때마침 운석이 날아와 우주선에 충돌하고, 구안나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다. 구안나는 자기가 어머니 역할 실험체가 되기로 결정한다. 구안나의 기억이 추출되고 이모션 엔진으로 가공된다. 지구가 겪은 대홍수가 시뮬레이팅 환경으로 선정되고 구안나(의 엔진)는 그 속에서 재난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이후 구안나(를 토대로 만든 이모션 엔진)는 수도 없는 반복 시뮬레이팅 끝에 아이(라는 이모션 엔진)을 구출해 내는 데 성공한다.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는 어땠는가?


나는 이 영화를 몰입해서 볼 수 없었다.


일단 '대홍수'라는 말에서 내가 상상한 것은 재난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재난영화는 속수무책의 재난과 이에 맞닥뜨린 주인공이 드러내는 태도, 이 두 가지를 연결하는 구도가 기본이라고 생각된다. 일단 재난이 발생하고, 그 다음, 재난 앞에서 인물들이 공포심을 드러낸다. 공포심의 능숙한 살포는 재난 영화의 미덕이다. 재난 영화에 있어 공포심은 영화 속 인물뿐 아니라 관객들까지 함께 가져야 하는 귀중한 감정 자산이다. 재난에 대한 공포가 본바탕인 것이며 공포 다음에 태도가 있다. 다름아닌 주인공만이, 공포 이외의 태도를 겸비할 수 있다. 플러스 알파를 가질 수 있다. 그 플러스 알파로 영화의 방향이 정해진다. 일반적으로는 용기라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면 그 영화는 재난을 돌파하는 영웅의 이야기가 된다. 아니면 공포에 더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묘사할 수가 있다. 그러면 그 영화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의 색채를 띠게 된다.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태도를 더욱 확대해서 들여다봄으로써 좌절을 더 세밀하게 묘사하거나, 다른 인물들보다 더욱 큰 공포를 느끼는 겁쟁이를 내세울 수도 있다. 그러면 아마도 염세적인 영화가 탄생하지 않을까?


이 재난영화의 기본 구도를 써서 관객을 몰입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재난상황의 화급함이 잘 전달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재난의 묘사와 주인공의 태도 묘사 모두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재난의 묘사라고 생각한다. 재난의 리얼함은 재난영화의 출발점이며 출발점 없는 화살표는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재난을 먼저 잘 보여줘야 한다. 그 무서운 재난으로 생산한 공포라는 감정 자산이 넉넉해야, 주인공이 가진 태도의 특수성도 또렷하게 전달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영화가 넉넉하게 재난 상황을 보여 주는 데 성공했는가 하면, 나는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제목은 대홍수지만, 물이 너무 예의바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는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하며 홍수가 이 아파트를 점점 먹어치우면서 진행되는데, 식사예절을 배운 것처럼 지나치게 교양 있게 아파트를 삼킨다. 끊임없이 몰아치고 인정사정 없이 침몰시키는 무례함을 기대했지만, 주인공이 말해야 할 때마다, 뭔가 행동해야 할 때마다, 잠시 범람의 말썽을 멈추고 친절하게 기다려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파트 계단을 올라 대피하려는 주민들을 뒤덮는 공포를 충분히 들여다보며 재난상황에 몰입해 보는 시간도 갖지 못한 기분이다.


이렇게 재난의 재난다움을 느끼지 못했기에, 공포는 없고 플러스 알파만 남는다. 잉여의 감정만 남는다. 이 영화의 플러스 알파는 모성애였는데, 이 사랑의 메시지가 결국 '공포 부족'으로 인해 다소 공허해져 버린 게 아닌지 안타까웠다.


이 영화는 결국 재난영화만의 특장점을 취하지 않았다. 이 영화가 차별성을 가진다면 그것은 스토리의 묘미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앞서 말한 단점들을 상회하는 좋은 스토리를 보여주지도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가장 먼저 일어난 실제 홍수를 제외한 이후 모든 홍수는 시뮬레이션이다. 그리고 그 시뮬레이션 속에 움직이는 세 명의 주요인물(구안나, 신자인, 손희조)은 이미 죽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어지는 스토리는 '죽은 자식 나이 세기'라는 속담을 연상시킨다.


영화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한 시뮬레이팅이 영화 스토리 속에서 무게감 있게 전달되려면, 적어도 그 시뮬레이팅에서의 죽음이 무게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생존을 위한 주인공의 몸부림에 처절함이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시뮬레이팅 속의 구안나는 자기가 다시 재생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완전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자가 취하는 선택들은, 인간적인 선택이 가지는 불가역성의 비극으로부터 안전하다. 죽음은 가벼워지고 만다. 이 영화는 마치 마블 영화의 '멀티버스' 설정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회귀물'을 연상시키는 이야기 진행을 드러내고 있는데, 재난영화의 장르를 따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잘 맞지 않는 옷이었다고 생각된다. 어차피 다시 살아나는데 홍수에 떠내려가는 게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해서 관객이 느껴야 할 '홍수의 홍수다움'을 저해시키는 또다른 요인이 된다. 내가 '환생'이나 이에 준하는 설정을 가진 작품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불호를 감안하더라도, 그 설정을 마침맞게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만회할 기회 또한 놓친 것 같다.


내 아쉬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설정 자체에 어색함이 있진 않았는지도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구안나가 자신의 환생을 인지하고 지난 시뮬레이팅에서의 실패를 기억해내, 생존을 위해 이 정보들을 활용하고 있는 것 자체가, 반복적인 시뮬레이팅을 통한 모성 학습 기획에서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 환생을 예감하는 구안나, 혹은 환생을 이미 아는 구안나는, 말하자면 초능력자다. 인간이라는 종을 만들기 위해 시뮬레이팅 학습을 돌린다면, 초능력자 엄마를 학습시켜 만드는 것보다는 평범한 인간 엄마를 학습시켜 만드는 것이 목적에 맞지 않을까? 환생 개념의 도입이 관객의 몰입에는 물론이고, 영화 스토리에도 아쉬움을 남기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영화는 시뮬레이팅, ai학습, 인공지능 등 유행하고 있는 화두들을 굳게 붙들어서 진행시켜 보려고 하는 우직함이 돋보인다. 첨예한 주제의식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감각이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됨을 알기에, 영화 감독과 제작진의 시대감각과 우직함에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