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 관람후기

꼬메디 루왁(komedi luwak)

by 오윤오

(포스터 사진 출처)


- 이번 글은 박찬욱 감독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시청하고 적은 후기입니다.

-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개인적 취향과 인상을 토대로 편하게 감상을 남겨보았습니다.

- 영화 내용을 가리지 않고 언급하고 있어 열람에 주의를 요합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께서는 먼저 작품을 보고 읽어주세요! (26년 2월 7일 기준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 방지용 포스터)

스포일러 방지턱

(포스터 출처)



- 이병헌은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개봉 당시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 나는 이 영화를 코미디 영화로 봤다. 극장에서 웃음을 참느라 혼쭐이 났다. 다른 관객들은 별로 웃질 않았기 때문이다. 웃어서는 안 될 때 웃는 건 아닐까 겸연쩍게 느껴져서 웃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번에 넷플릭스에 영화가 등록된 것을 알고 편하게 영화를 보면서는 눈치를 보지 않고 웃어젖힐 수 있어서 후련했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얼마동안 나는 틈날 때마다 영화 내용을 떠올려보곤 했다. 넷플릭스로 다시 보면서는 마음에 드는 장면을 되풀이해 보기도 하고, 재생을 멈춰 놓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보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영화를 즐기고 곱씹어본 끝에, 나는 사람에 따라서는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 영화의 주요인물인 유만수(이병헌 분)는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함 있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는 그 결함에 대한 주인공의 인간적 대처를 표현하는데, 이 영화의 만수는 자기가 살인마라는 사실에 인간으로서의 대처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커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루왁커피(kopi luwak)'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 이야기만큼은 주워들어 알고 있다. 사향고양이가 맛이 좋은 커피원두를 쏙쏙 골라서 집어먹는데, 그것이 소화가 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된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고양이가 저도 모르게 골라낸 최상급의 원두를 루왁커피라 하여 내려마시는 것이다. 사향고양이 뱃속을 지나가면서 향도 더 좋아진다고 한다.


사향고양이에겐 최상급 커피콩의 향미를 가려내는 본능적인 이끌림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걸 소화하는 능력도 방법도 없음이 흥미롭다. 이 사향고양이의 이야기는 인간의 지성이 즐겨 먹는 '농담'이라는 기호식품을 연상시킨다. 농담을 액면 그대로 집어삼키면, 잘 소화되지 않는다. 지성적인 조리 절차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언어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조리법을 체득한다. 우리는 농담과 진담을 능숙하게 구분하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유만수(이병헌 분)는 인간이 아니라서 농담을 먹을 줄 모른다. 인간이라기보단 농담을 생짜로 집어삼키는 사향고양이의 모습에 가깝다.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커피를 내려 먹는 게 익숙한 것처럼, 인간이라면 농담을 지성적으로 잘 익혀서 먹을 생각을 할 텐데, 유만수는 농담의 적절한 식용법을 몰라서 무턱대고 집어먹는다.


만수의 아내 미리(손예진 분)가 했던 농담을 떠올려보자. 제지업계에서 만수의 잠재적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인물인 선출(박희순 분)을 두고 손예진은 '그에게 벼락이 떨어질 일이 없을까' 기대한다는 식으로 농담을 던진다. 좁은 소파에서 남편을 끌어안은 채로 던진 이 농담 이후로 실직자 이병헌은 도살자로 거듭나더니, 재취업을 어렵게 만드는 경쟁자들을 차례차례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영화 내에서 도살자가 되기로 마음먹게 만드는 중대한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다. 영화 속 만수의 선택에는 고뇌도, 특정한 신념의 견인도, 주변 사람의 영향도 선행되지 않았다. 그저 와이프의 애교 섞인 농담이 한마디 던져졌을 뿐이다. 그것은 한 사람을 살인자로 전락시키는 '원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다. 단지 만수가 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두겁을 두르고 있었지만 사실은 사향고양이였기 때문에, 유인원이었기 때문에, 혹은, 애초에 도살자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농담을 날것으로 집어먹고 단번에 도살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만수를 도살자로 만든 것은 만수의 '주인공다움'이 아니고, 감독의 의도와 연출에 의한 만수의 '몰인간성'이라고 나는 판단했다. 농담을 기점으로 이 영화가 사실은 미리(손예진 분)의 상상을 보여 주고 있다고 이해해도 아주 틀리지는 않는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것도 만수의 '몰인간성'이 이유다. 만수가 실제 인간이 아니라 꿈 속의 존재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만수의 행적은 꿈이 아니고서는 납득이 어렵다. 납득을 바라고 만들어진 캐릭터도 아닐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며 만수가 '결함을 가진 주인공'의 모습으로 파악되지 않게끔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 연출과 설정을 찾아보았다.


1. 평범한 생활인의 모습과 범죄자의 모습이 물과 기름처럼 깔끔하게 양립하고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만수라는 남자의 평범함이다. 자상한 아버지이자 다정한 남편이고, 성실한 근로자이며,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무진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남자, 그러면서도 가끔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고 괴로워하는 남자, 이렇게 이리저리 뜯어봐도 유만수는 평범한 남자로 묘사되고 있다. 그 마음 속에는,


'자식에게 자상해야 한다'

'아내에게 다정해야 한다'

'직장에서 성실해야 한다'

'빨리 다시 직장을 구해 가정에 힘을 보태야 한다'

'다시는 술을 마시고 큰 실수를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부부생활에는 외도를 해선 안 된다'


따위의 윤리적 명령들이 검푸른 먹으로 쓰여져 있고, 이 검푸른 먹은 평범한 남자 아무에게나 빌려달라고 부탁해볼 수 있는 보편적인 양심의 잉크다.


그런데 검푸른 먹으로 빼곡히 채워진 그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어쩔수가없다면 죽여라'라는 명령이 빨간 먹으로 정서되어 있다. 이 빨간색 잉크는 양심의 말을 받아적는 용도로는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다. 만약 인간성을 가진 주인공을 그려내려고 했다면, 이 빨간 먹을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빨간 먹을 써서 그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낙인을 찍었다.


도살자가 되기 전에는 물론이고 도살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그는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로, 성실한 근로자로 묘사된다. 사람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아내와 참석하기로 약속한 댄스 파티를 기억해내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에서는 중범죄를 저지른 자가 가질 법한 어둠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아내와의 약속을 잊은 채 초과근무를 하고 말았다는 듯 서두르는 그 모습은, 큰 범죄를 저지르는 데 그날 하루를 보낸 사람이 드러낼 만한 태도가 아니다. 심지어 사람을 잔인한 방식으로 해치는 와중에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와도, 범죄자가 아니라 남편으로서 전화를 받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인간성을 가진 주인공이었다면 주저, 죄책감, 혼란 같은 것을 느꼈을 테지만, 그의 양심에는 살인마가 되었다는 실감이 침윤하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는 와중에도 일상에서는 평범한 품행과 양심을 어렵지 않게 간직하고 있는 이 완벽한 양립의 상태에서 관객은 이질감을 느끼고 유만수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게 된다.



2. 식물에 대한 만수의 태도가 이상하다.


만수는 식물애호가로 묘사된다. 온실을 꾸며 그만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을 정도다. 아내 미리도 그가 식물을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철사를 써서 분재에 힘을 주어 모양을 잡으려다가 가지를 부러뜨리고 마는 장면에서는 위화감이 느껴진다. 아마 감독이 그렇게 의도했을 것이다.


도살자 유만수에게 농담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 주는 한 소재는 '고추 화분'이다. 길가에서 통화중인 선출을 본 만수가 가정집으로 보이는 2층의 옥상텃밭으로 올라가, 큼지막한 고추화분을 들고 그의 머리에 겨누며 살의를 드러내는 코믹한 장면이 있다. 화분이 무거워 팔은 벌벌 떨리고, 물을 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치켜든 화분 아래로 흙탕물이 줄줄 새어나와 만수의 머리를 흠뻑 적신다. 그것은 '어쩔수가없는 도살'이라는 농담을 실현할 마음을 먹은 기이한 존재가 드러낼 만한 풍경으로 감독이 상상한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화분 안에 심어 놓고,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는 것을 흐뭇하게 관상하고, 덤으로 식탁에 알싸한 풍미를 더해 주는 수확물을 기대해볼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이 농담이다. 텃밭 주인이 화분을 든 만수를 발견하지만, 그녀는 만수가 자기 화분으로 1층에 있는 사람의 머리통을 조져 놓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도 꿀 수 없다. 너무 당연하게도, 농담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수가 엉겁결에 고추나무를 사서 온실에 들여오는 장면을 볼 때, 온실 내부를 가득 보여주는 화면이 열매 없는 검푸른 분재로 빼곡하다는 점에도 주목해볼 법하다. 온실은 만수의 마음이며, 거기 빼곡한, 열매 없는, 분재로 성장이 조절된 검푸른 식물들은 만수의 마음에 검푸른 잉크로 빼곡히 기재된 윤리관의 풍경으로도 읽힐 수 있는 것이고, 빨간 고추가 열린 화분은 온실이라는 만수의 검푸른 공간에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결국 고추는 온실에 자연스럽게 소속되는 데 실패해, 만수의 마음이 농담을 소화할 줄 모르는 이질적인 존재라는 주장을 연출상으로 뒷받침한다.

원고 일부 발췌.


3. 컨닝페이퍼를 안 써도 되는 순간이 꺼림칙하다.


유만수가 처음부터 그런 인간으로 설계되었음은 그가 애용하는 컨닝페이퍼로도 일부 엿보인다. 유만수는 필요할 때마다 손바닥에 할 말을 미리 적어놓고 컨닝을 한다. 컨닝이 필요했던 모든 순간에 그는 다소간 서툰 모습을 보인다. 말이 유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할 말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내용을 잘 전달할 만한 숙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자들을 모두 해치우고 마지막으로 치르게 된 면접자리에서 그는 컨닝을 하지 않고서도 여유롭게 말을 이어나가며, 카메라가 가까이 들여다보는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빈 손을 들여다보면서 이어지는 그의 말은 유창하다. '창의적 구상, 발상의 전환, 집요함과 대담함'을 운운하는 그의 청산유수는, 면접을 보러 오기까지 감행해야 했던 도살자로서의 행적을 추상적으로 요약하고 있는 것이어서, 결국 그가 보통의 인간은 아니라는 혐의에 무게가 더해진다. 그가 처음부터 도살자였기 때문에, 도살의 경험을 추상적으로나마 술회하는 데 있어서도 유창할 수 있는 것이다.


- 마치며


이렇게, 나는 만수가 주인공이나 인간적인 존재로 파악되지 않게끔 연출과 설정이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만수는 농담을 냉큼 집어먹지만 소화하지는 못하는, 유머의 소화기관이 결여된 유인원으로, 인간과 루왁의 혼종으로 그려지며, 사실상의 주인공은 이 유인원이 '어쩔수가없이' 도살하고 만 세 남자라고 여겨진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심정적 초점은 만수가 아니라 세 남자를 향하고 있다. 관객은 그들이 농담을 실현하는 도살자에게 어처구니없이 희생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묘한 희극적 정서를 얻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 영화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유만수라는 인물을 월남전 참전 용사의 아들이자, 질풍노도 비행청소년의 아버지라는 계보 속에 위치시켰다. 이 삼대의 계보가 영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녹아들어 영화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데 있어서도 힘을 얻는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가 보고 또 보고 싶어지는 궁극적 이유는 재밌는 코미디 영화라는 데서 기인한다고 나는 믿는다. 치밀하게 설계한 유만수라는 괴물은 최고급 농담만 집어먹는다. 그래서 나는 한 명의 재미만능주의적 관객으로서 꼬메디 루왁(komedi luwak)을 음미할 수 있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