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출발

편한 '광역전철'과 무서운 '비행기'

by 누리장인

0. 콧바람 쐬러 갑니다


2019년 일병 첫 휴가 때 제주도를 가본 이후 첫 육지 탈출이다. 동시에 혼자 하는 첫 취준 도피다.



지금이야 두발자유화라지만 그때는 군인 신분이라 머리를 꽤나 빡빡 깎은 상태에서 제주도로 갔다. 그래서 모자가 필수였다. 그나저나 당시 내가 어떤 경로로 얼마를 주고 제주도를 갔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나름 길을 잘 외우고 한번 가본 곳은 잘 안 잊어먹는 편인데 이번에 대구공항을 가는 길 자체나 대구공항까지 너무 낯설었다. 6년이나 지났으니, 너무 오래돼서 그런지 여튼 잘 모르겠다.


나는 구미에 살아서 지상철 대경선을 이용할 수 있었다. 지하철 같은 개념이라고는 하지만 기차처럼 다니기 때문에 표를 끊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좀 있었는데, 각종 여러 블로그 리뷰글을 보고는 마음 편하게 교통카드만 들고 사곡역을 향했다. 정확하게는 나라사랑카드였다.




[ 사 곡 역 ]


1. 처음 맞이한 대경선


막상 들어가고 나서도 고민을 조금 했다. 카드 찍으면 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들어가자마자 경산 방면 구미 방면 중 내가 가야 할 데를 폰으로 그러니까 네이버 지도로 여러 번 확인한 뒤 개찰구를 찍고 들어갔다.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라 냉큼 왼쪽 편에 보이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이날(화요일) 나는 오후 6시 넘어서 대한항공 비행기표를 끊었는데, 이유는 비용이 저렴해서였기도 하고 이 시간에 대경선을 타면 사람도 없고 적적하니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을 거라 판단하기도 했다. 환승하는 번거로움은 있어도 비용이 거의 절반값이기도 했고 말이다. 걷고 타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2시간 가까이 걸린다는 단점 역시 있었기에 6시 20분 비행기임에도 불구하고 오후 1시 정도에 출발해야 했다. 솔직히 그냥 미리 가야 마음이 편하다. 1시간 전에 수속 준비하라고 미리 알림이 뜨기도 하지만, 우선은 내가 너무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기에 조금 긴장했기에 먼저 가서 내 마음을 달래야 했다.

하여튼 나는 처음으로 대경선 지상철? 광역전철? 을 탔다. 아주 사람이 없을 시간대에 말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평일 오후임에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 분들이 모두 나 같은 백수들 일리가 없는데' 하면서 주위를 살펴봤는데, 생각보다 많았다. 출발역은 또 아닌지라 도착한 광역전철을 막상 보니 이미 구미역에서 타고 오신 분들도 적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나는 서서 갔다...


노선도를 보아하니 모순된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세상이 좋아졌다'라는 생각이 들긴 하나

'요즘 나라 경제가 엉망이긴 한 터라 쓸데없이 만든 건 아닐까? 하지만 만들어서 좋긴 하다...'

'외할머니나 이모나 엄마나 서로 쉽게 오고 갈 수 있어 좋긴 하겠다.'


하면서 부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이 교차한다. 그러다 대경선은 확실히 어머니나 내가 자주 가는 구역(?)들에 정차하다 보니 '그래 국민 세금을 이런 데 써야지' 라며 생각의 마침표를 찍었다.


동대구역에 내려서 <급행1>을 타기 위해 내려가는 길이다. 이걸 타야 대구국제공항을 가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한 여성분이 <급행 1>이 아닌 다른 버스를 타는 걸 보고는 머리가 절로 굴러갔다. 분명 저분은 공항을 갈 것 같은데 왜 저 버스를 탈까 하고 말이다. 머리를 [셜록 홈즈 모드]로 전환했다.


근데 또 복장이 골프복장이라 어디 숙소 하면서 골프 치려고 그러시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골프선수면 또 훈련 삼아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골프백이라고 하나? 골프채가 들어가 있을 법한 그런 가방을 또 매지는 않았다. 볼링장에 볼링공 맡겨두듯 골프장에 장비를 맡겨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공항에 가는 게 아니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도 타야 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분이 타는 모습을 쭉 보다가 결국 버스노선도를 직접 확인했는데, 알고 보니 모든 버스가 대구국제공항을 갈 수 있었다. 생각보다 현실은 관대했던 것이다. 쓸데없이 버스를 몇 번 보낸 것이다. 어떤 버스는 [대구국제공항], 어떤 버스는 [대구국제공항 앞] 이렇게 쓰여있었으니 말이다. 분명 지도 앱에서는 급행 1만 간다고 찍어줬는데 말이다. 물론 기계 탓만 할 건 아니다.




[ 대 구 국 제 공 항 ]


2. 보조 배터리 어떻게 해?


공항 내부는 내가 나름 정신없어서 찍진 못했는데, 혼자 체크인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1층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1층은 국내선 국제선 도착 및 체크인하는 곳이고, 2층이 출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때 모바일 체크인, 셀프 체크인, 유인 체크인 중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따로 실을 짐은 없어서 굳이 유인 체크인을 활용할 생각은 없었으나 고민거리는 바로 보조배터리였다. 최근 비행기 사고들 때문인지 그 원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는 보조배터리에 대한 규정이 따로 생겼기 때문이다. 규정을 읽긴 했으나 이렇게 하면 맞는지 틀린 지 직원분께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규정을 최대한 숙지하고 파악한 뒤 10,000mAh짜리 보조배터리를 품 속에 넣고 셀프체크인 후 2층으로 올라갔다.


참고로 올해 3월 1일부터 도입된 보조배터리 기내반입 규정은 항공사마다 조금씩 다르다. 공통적으로는 기내 휴대 반입만 가능하며, 용량별로 기준이 상이하기에 반드시 용량 표시가 있는 제품을 지참해야 한다. 여행 전 반드시 확인하거나 공항에서 문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OIG4.jRmofEcsyrxDKhZlk4RF?cb=iwc2&pid=ImgGn


3. 유쾌한 중년 신사분들


2층에서 기다리는 동안 내 주위에 어르신분들이 앉게 되셨다. 대량 5-6명 정도의 중년 신사 일행이셨는데 같이 제주도 여행을 가시는 듯했다. 이때 난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분들의 유쾌한 대화가 너무 재밌어서 활자가 눈에 잘 안 들어왔다.


A : "기다리는 동안 술 좀 마시고 오자!"

B : "이 친구야 수속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무슨 술을 마셔 30분 남았다 30분!"

A : "금방 갔다 온다"

B : "술 마시고 타면 되겠냐? 가서 먹자 가서 먹어."


하지만 술을 드시고 싶었던 어르신은 결국 던킨 도너츠에서 도넛이라도 몇 개 사 오셨다. 입이 상당히 심심하셨었던 듯싶다. 술 마시는 걸 꺼려했던 분도 어느새 입에 도넛을 물고 계신다. 그렇게 또 껄껄껄 하면서 얘기하고 계신다. 그러다 C 어르신 한 분은 뭘 주우셔서 기쁘셨는지 웃으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계셨는데, 내가 봤을 때는 'T'인 것 같은 B 어르신이 얘기하셨다.


B : "그거 줍느라 네 허리 다 나갔다."

A : "쓸데없는 에너지 썼네."


그러자 C 어르신이 얘기하신다.


C : "대신 살 빠졌잖아."


역시 친구들끼리 모이면 나이고 뭐고 상관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그렇게 금방 오후 5시 30분(비행기 출발 1시간 전) 이 되고 수속을 끝내러 들어갔다. 마침 그 어르신분들도 같은 시간대의 같은 비행기였다.


그러고 보니 Trip.com에서 비행기표를 예매했을 때 깨달은 작은 진실이 있는데, 이때 여행은 준비단계부터 미로와 같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영문 이름으로 표를 구매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야 오랜만이니 모를 수도 있겠지만 알 사람은 아는 정보일 것이다. 주민등록증은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기에, 다행히 영문이 표기된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침 내게는 한글과 영문이 함께한 운전면허증이 있었기에 미리 꺼내 자신 있게 제시하고는 탑승장으로 향했다.


4. 구름 위 떨리는 순간들


사실 비행기 타기 전에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대구 국제공항은 허락하지 않았다. 주변에 군사 시설이 있는 관계로 촬영이 불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로 나는 애초에 폰을 잘 꺼내지도 않았다. 본능적으로 찍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라 그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탑승하고 나니 조금 긴장이 됐다. 평소에도 놀이기구 같은 걸 두려워하긴 해도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비행기는 확실히 진짜(?) 공중을 날다 보니 간이 쪼그라들었다. 마침 창문 쪽에 앉기도 했고, 혼자 여유로운 척 바깥을 구경하며 날개를 유심히 관찰했다.


'혹시나 새들이 날아들지는 않을까?'

'날개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저 얇은 금속판이 우리를 잘 지탱할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 뭔가 보이면 알려는 줘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것도 잠시 활주로를 달리자 날개를 응시하던 내 용기마저 자연스레 창문을 뚫고 증발해 버렸다. 비행기가 중력을 멀리하는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공중에 뜨는 느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때 동안 숨을 살짝 참았다. 아마 참았던 것 같다.

창 밖에 펼쳐진 하늘은 매우 맑았다. 날개도 문제가 없었다. 지상은 상당히 평화로워 보였고 작았다. 찰리 채플린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뭐 자주 비행기 타는 분들이야 처음 잠깐 생각하고 말았을 수 있겠지만, 문득 나라는 존재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고도 경이로운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도 말이다.



<2편에서 봐요~>



참고자료 : 내 경험 및 AI 사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