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여기 빠르네
동원훈련 예비군을 갔다. 충청도에 위치한 청안동원훈련장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2023년 처음으로 실시하게 되었으며, 코로나를 겪어온 예비군 3년 차인 내 입장에서는 매우 생소했다. 수요일 오전 10시 출발이라 조금 일찍 나서서 8시 45분쯤에 금오산대주차장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병사 3명과 간부 1명이 나보다도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군무원분들(?)도 군장병들을 맞이할 준비가 덜 된 시각이었다. 그나저나 먼저 기다리던 간부는 짐이 어찌나 큰지 거의 본인 키만 했다. 예비군 훈련 3일이 아니라 30일은 보내려고 하나 싶었다. 나는 평소에 쓰던 민트 배낭 가방이었다. 생각해 보니 대부분 군인 냄새 물씬 풍기는 가방들만 맸던 것 같다.
금오산 주차장이라 그런지 화장실을 갔더니 '뱀조심'이라고 적혀있었다. 군대에서도 뱀은 본 적이 없는데, 그 스티커를 보자마자 신경을 360도 온 사방으로 곤두세운 상태로 화장실을 들어갔다 나왔다. 날씨는 또 좋아서 주차장을 반바퀴 돌쯤 철봉을 발견했다. 동네 철봉보다 조금 높았는데, 문득 3일 동안 운동 못할 걸 생각하니 아쉬워서 턱걸이를 조금 했다. 원래 평소 하던 등 운동 루틴은 채울 생각이었는데, 평소 하던 것보다 반 밖에 할 수 없었다. 곧이어 도착한 버스와 창가자리를 뺏길 위험 때문이었다. 버스가 굉장히 많이 와있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한 예비군들 덕분에 버스에 인원이 금방 차고 있었다. 명단에 이름을 작성하고 버스에 탑승했는데 모두가 다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9시 30분쯤 되자 기사아저씨께서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고 하셨다. 군무원분들은 사람 수를 세다가 명단 인원보다 2명이 더 많은 걸 보고 인원수 체크만 한 5번 하셨다. 그러다가 명단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더니 제일 마지막 칸 2개에 이름이 2명 더 적혀있는 걸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그 예비군 2명은 왜 굳이 맨 뒤에 적은 건지 이해가 되진 않지만, 좋게 생각해서 나름 혁신(?)적이라고 생각하겠다. 그렇게 정확히 10시 1분에 출발하였다.
가는 길은 창문은 다 내린 채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내 옆 사람은 피곤했는지 나한테 기대기까지 했다.
'허.. 이 거참'
앞자리 두 명은 덩치가 꽤 컸는데 서로 불편해 보인다. 몸을 대각선으로 해서 어떻게든 어깨를 이곳저곳 집어넣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덩치가 비교적 작은 분은 자리를 바꾸자며 바깥쪽으로 앉더라. 그 와중에 기사분께서 '덥습니까?' 하고 물어보셨는데 예비군 한 명이 '덥서요~!'라고 했다. 아마 본인도 말하고 아차 했을 거다.
부대에 도착하자 소령분이 올라타더니 국방모바일보안을 다운로드하여 카메라 OFF를 하라고 하셨다. 예비군이니까 다 그런 건지는 몰라도 꽤 친절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그냥 카메라 버튼 자체가 눌러지질 않았다. 하차하자마자 자가진단키트 검사를 하고, 본인 소속 중대를 확인한 다음 막사로 가서 3일 동안 지낼 생활관이 어딘지도 확인하였다. 이후 현역 병사들의 안내에 따라 본인의 탑승 유무 표시를 하고 계좌번호도 작성하였다. 교통 여비 및 예비군 지원금 때문인 듯하다. 생활관에 들어서자 처음 보는 얼굴로 가득했고 괜히 씁쓸하기도 했다. 사회물은 먹었겠지만 다들 어린 티가 그래도 좀 났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간부 얼굴들은 그렇지 못했다. 심심해서 생활관 명단이 적힌 곳으로 가서 나이를 한번 살펴보았다. 몇 년생인지 다 적혀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내가 제일 많았다. 소대장 중대장하는 대위, 중사, 하사 그런 분들은 내 또래였다.
첫날은 안보교육만 주야장천 들었다. 딱히 특별한 건 없었지만 저녁 먹고 난 다음에는 동화활동(단결활동)을 실시할 수 있었다. 다음날 주특기를 하기 위한 본인 소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이다. 각 생활관에 기관총, 유탄발사기, 여러 박격포 소대 등이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했다. 재밌었던 건 처음 소개한 사람이 '현역 시절 부대와 나이'를 소개하니 나도 딱 그것만 소개하게 되었다. 다만 나는 하나 더 붙였다.
"제가 원래 행정병 소속인데 탄약수여서 매우 당황스럽네요."
그러자 한 15명 정도 되는 사람 모두가 '현역 시절 부대, 나이, 지금 심정'만 줄줄이 얘기하더라. 그렇게 거창하게 모여놓고 20분 만에 해산한 뒤 대망의 가위바위보가 시작되었다.
이 가위바위보는 매우 중요했다. 바로 내가 속한 4중대의 4개의 생활관이 반반 나뉘어서 '청소'와 '불침번'을 정하는 중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난 불침번을 정말 피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요즘 제대로 못 잤는데, 여기서까지 중간에 일어나서 불침번 할 생각을 하니... 벌써 피곤했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의 각 소대장들의 가위바위보는 치열했다. 한편으로는 웃겼지만 말이다. 그렇게 6번 외치자 승부가 갈렸다. 우리 생활관은 '청소'가 걸렸다. 생활관 인원 모두가 '작은 환호'를 하였다.
청소는 화장실과 생활관만 하는 건데 딱히 할 건 없었다. 청소도구도 불충분하였고, 무엇보다 생각보다 매우 깨끗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하루종일 교육을 들을 테니 생활관에 있을 일이 없고, 이미 현역들이 청소를 잘해놨을 테니 당연한 상황이었다.
잘 때가 되자 모두 불을 안 끈다. 폰을 만지는 사람도 많았고,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아마 담배 피우러 가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그냥 현실에서 빨리 벗어나 꿈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눈을 감았다. 불을 끄기도 그렇고 안 끄기도 그렇고 눈치만 보인다. 내 옆자리에 계신 분도 자려는 듯 눕더니 다시 일어나 '불 끌게요.'하고 꺼버렸다. 딱 보자마자 알았는데 자신만의 강단이 있고, 나름 똑똑한 구석이 있는 그런 분처럼 보였다. 군대에서 '인사'했으면 욕은 먹었겠지만 일처리는 깔끔했을 스타일 같았다. 하여튼 그렇게 자려는데 5분 정도 지나자 코골이 소리가 양쪽으로 거세게 날아온다. 사실 난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예비군 후기 보면 코골이 때문에 잠자기 쉽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많았기 때문에 미리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는 무슨... 1시간 넘게 잠을 못 잤다. 눈만 감고 있었고, 내가 언제 잘 것인지 감도 안 오더라. 나도 코를 골 순 있겠지만 골더라도 전부 다 취침하면 골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11시 30분 정도에 잔 것 같고, 6시 기상 시간이 되기 1시간 전인 5시에 일어났다. 이것도 코골이 때문이다. 빵빠레 소리가 들리고, 아침부터 점호하러 연병장으로 갔다. 그 와중에 폰 만지는 사람, 하늘 보는 사람, 그냥 주머니에 손 넣고 멍 때리는 사람 등 각자의 색깔을 갖추고 점호를 받고 있었다. 국군도수체조까지 한다고 하자 경례소리보다 우렁찬 '한숨'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근데 선을 넘은 건 국군도수체조할 때 앉아서 폰을 만지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건 아니지...
오전부터 전쟁과 관련된 영상 시청 및 주특기 관련해서 부대를 나눈 뒤 연병장 및 사격장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행정병인데 아니 편제는 작전반으로 돼 있다 하더라도 박격포 탄약수는 말이 안 됐다. 60미리도 81미리도 아닌 4.2인치 박격포 소속 부대의 행정병이었는데, 81미리 박격포 탄약수로 편성된 것이다. 물론 나와 비슷한 상황인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나저나... 기관총이랑 유탄발사기는 어떻게 훈련하는거지??
소대 및 분대를 무작위로 나누고 있었는데, 우리 분대만 6명이고 다른 분대는 5명이었다. 81미리 박격포 소대는 총 2개였고 분대는 8개로 나누어졌다. 이 와중에 모든 소대를 통솔하는 교관님이 이것저것 서론도 많으시고 주문도 많으셨는데, 그분 뒤에 계시던 다른 교관님이 '제가 할게요~~'라고 하시면서 대충 설명하고 연병장으로 보내셨다. 나는 처음 교관님이 fm인 걸 한눈에 알아봤다. 그런데 하필 우리 소대가 FM 교관님이 걸려버렸다.
역시나 예상한 대로 다른 주특기 소대와는 다르게 힘들게 진행되었다. 사실 비교적 빡신거지 혀를 내두를 만큼 힘든 건 아니었다. 그저 땡볕 아래에서 우리만 교관님으로부터 주특기 관련 역사와 필요성 및 단계별 운용방법 등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앉아서가 아닌 서서 말이다. 다른 교관님들은 병사들을 계단에 앉혀두고 그늘에서 설명을 10분 정도 하다가 20분 정도 쉬게 해 줬지만, 우리는 20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이 상황을 타파하고 싶었던 나는 처음부터 교관님의 설명 한마디 한마디에 '네!!' '예!!"를 연신 외치며 기회를 엿보았다. 열심히 대답하면 교관님도 인지할 테고 내게 발언권이 생길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말해야 쉴 수 있을지 속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제가 무릎이 아파서...' '저기.. 쉬어도 되겠습니까?' 등을 생각했다.
"저기 교관님! 설명을 더 듣고 싶은데 그늘 아래 계단에서 들어도 되겠습니까?!"
"어... 음 5분만 더 얘기하고! 내가 예비군 여러분 마음 다 알아요! 쉬고 싶겠지 아니다 조금 쉽시다!"
그렇게 겨우겨우 쉬었다. 나는 박격포 지식이 전혀 없었고, 우리 분대는 각자 다른 포를 사용했지만 박격포 출신이었으며, 나머지 한 명은 작전반 출신으로 수신호정도는 알고 있는 예비군이었다. 나도 작전반에 있긴 했지만 일병 때 한 달~두 달이었고, 실전에서는 한 번밖에 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다. 다들 연병장에서 주특기 연습할 때도 행정반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특기 훈련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진행되었고, 박격포 시험도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 분대원들 중 2명이 정말 열심히 해준 덕분에 나머지 인원들도 으쌰으쌰 해서 합격을 빨리 받고 쉴 수 있었다. 나는 사실 주특기 지식이 없기에 최대한 포신, 포다리 같은 무거운 걸 자진해서 들며 옮기고, 우물쭈물하는 예비군들 대신 교관님한테 어필하는 게 다였다.
둘째 날 저녁이 되자 안 가려던 PX를 갔다. 첫날에는 워낙 사람이 많았고, 사실 가봤자 간식 살 일 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가지 않았는데, 그래도 한번 가봐야지 않겠나?(과자, 빵 엄청 좋아하지만 잘 안 먹는다... 2-3달에 한두 번 꼴로 먹는다) 어머니도 과자가 좀 그리우실 거고 얼마나 저렴한지 확인도 하고 싶었다. PX는 5시 30분부터 6시 40분까지 열려 있었는데 6시 10분쯤에도 줄이 굉장히 길었다. 40분쯤 돼서야 겨우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간부님이 10분 정도 더 허용해 주셔서 가능했다. 꿀꽈배기, 빼빼로, 맛동산, 초코하임, 클리어 크림 1개 를 구매했다. PX전용 가방도 있었는데 1,000원이었고, 생각보다 가방이 이뻤다. 저녁에는 초청 강사(예비역 간부)가 오셔서 최근 이스라엘, 러시아 등 전쟁 지역 관련하여 교육을 해주었다.
둘째 날도 첫째 날 저녁과 다를 것 없이 코골이와 혼자만의 싸움을 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코골이가 들릴 때마다 내 건너편에 누워있던 2명이 짜증 섞인 비속어를 뱉어냈다. 나만 싸우는 건 아니었나 보다.
마지막날 아침도 여지없이 점호를 하였다. 점호 시작 전부터 간부 한분이 오시더니 스마트폰 같이 비싼 거 충전한다 하더라도 최대한 생활관에 두고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신다. 내 앞에 예비군은 '아무도 안 훔쳐갈 것 같은데?'라고 작게 얘기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전거를 제외하면 딱히 잘 안 훔치긴 하지만, 그래도 진짜 누군가 훔쳐갈지 모르는 일이다.
오전에 또 주특기를 하는데, 생각해 보니 사격 같은 것보다는 훨씬 낫다. 우린 연병장까지 와서 설명 듣고 주특기만 하면 되지만 사격, 수류탄, 텐트 같은 경우는 숙달이 덜 된 예비군도 많을 테고, 이동을 또 한참 해야 하기 때문에 꽤 귀찮을 거다. 여하튼 주특기 교육은 똑같이 진행하였다. 중간에 쉬는 시간 때는 교관님과 대화할 일도 있었다. 사실 의도적으로 대화를 이어나간 경향도 있었다. 교관님도 주특기 교육만 하기 심심할 테고, 나는 나대로 쉬는 시간을 연장시킬 겸, 교관님의 인생이 궁금해서 현역 시절 때 무엇을 하였는지 끊임없이 질문하였다. 성심성의껏 대화를 하자 쉬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고, 특공대 시절 낙하산을 편 기억과, 어떤 고생을 하며 군생활했는지 다 말씀해 주셨다. 보통 말 좋아하시는 FM교관님들은 대화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주특기 교육이 끝날 때쯤 분대원들끼리 나이를 얘기할 일이 있었다. 다들 25~27살이었는데 나 혼자 31살이었다. 그러자 다들 날 20대 중반으로 봤는지 미안하다고 하더라. 사실 중간에 반말을 몇 번 하길래 이게 뭐지 싶긴 했다. 한번 보고 말 사이니 딱히 언질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점심도 먹고, 집에 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총기 수입을 할 거라는 얘기를 얼핏 들어서 현역병들한테 가서 물어보았다. 그들은 '아마 계획표에 총기수입이 있어서 할 겁니다!' 아주 군기 바짝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간부님한테 한번 물어봐줄 수 있냐고 했더니 가서 물어봐주기까지 한다. 할 가능성이 있다는 대답만 들었다. 곧이어 나이 지긋한 간부님이 복도를 지나며 한 말씀하신다.
"총기수입 하지 말라 그랬어요? 왜!?"
그러자 생활관 내에서 탄식이 나온다. 나도 속으로 '이거 총기 수입 하자는 건가...?'싶었다. 아마 총기수입 안 하기로 결정 난 것 같은데 왜 시키려는 거지 싶었다. 사실 사격을 한 인원들은 하는 게 맞긴 하지만 안 한 사람들이 훨씬 많아서 안 하는 것도 맞았다. 사실 우리는 현역병들한테 '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얘기만 듣고 멜빵끈도 fm으로 제대로 쪼인 뒤 총기함에 정리 정돈해서 넣은 상황이었다.
총기수입 안 하기로 결정이 난 뒤, 나이 지긋하다고 했던 간부님이 우리 생활관을 들어와서 말했다.
"여기 멜빵 다 조였어요?"
"예!!"
"아따 여기 빠르네..."
그렇게 K-1, K-2, M60 등 다양한 총들을 가지고 반납을 진행하였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과문이었다. 노리쇠 후퇴 전진 후 격발 소리가 이렇게 경쾌할 수가 없다. 마치 우리의 퇴소를 축하해 주는 것만 같았다. 퇴소식은 소장님의 등장과 퇴장으로 마무리가 되어갔다. 입소식 때는 빨리 가고 싶어서 경례 소리나 대답 소리가 우렁찼는데, 이번에는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예비군 목소리 하나하나가 에너지가 엄청났다. 우리를 관리해 주신 간부님들이 잘해주신 탓도 있는 것 같다. 이거 끝나면 또 전방 가서 교육하신다고 하니 고생하신다.
국방모바일보안 같은 경우는 위병소에 비콘에서 해제할 수 있다길래 버스에 탄 채로 위병소 근처에서 카메라 해지를 하려고 했는지 못하였다. 아니면 공공기관에서 해야 한다는데 어찌 이리 귀찮을 수가 있나... 나는 구미에 도착해서야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해제를 하였고, 집에 별 탈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첫 동원훈련이라 옷도 슬리퍼도 휴지도 챙겨갔는데 슬리퍼나 휴지는 이미 부대에 잘 구비되어 있었고, 옷도 갈아입기 쉽지 않았다. 샤워하려니까 여성 군무원분들이 화장실 앞을 자주 다녀서 그것마저도 하기 힘들었고, 찝찝했었던 것 같다. 다음 동원훈련은 긴장 안 하고 편하게 잘 챙겨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