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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장인 Dec 03. 2023

아 진짜 에스컬레이터 왼쪽에 서지 마요

실제로 보고 느껴야 깨닫지

 2023년 12월 2일


 이 날은 전역 이후 가장 유산소를 강하게 한 날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래와 같은 긴 여정이 있었다.

 오후 12시 지인들을 뵙기 위해 7시 50분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잠깐 올라갔다. 용산의 맛집 '한땀스시'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마침 최근 어머니가 눈여겨보던 가방 매장인 '샐리가든'이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었다. 아주 기가 막힌 인연(?)이다. 용산역 앞 푸르지오 서밋 지하 1층에 있는 '한땀스시'는 꽤 찾기 어려웠다. 숨은 맛집을 알고 찾아와도 찾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1층으로 알고 한 바퀴를 돌고 있었으니... 정말 멍청했다. 다시 검색을 해본 뒤 내려가는 수단인 에스컬레이터를 찾아냈다. 그렇게 만난 지인분들은 어디서 타고 왔는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미 내려와 계셨다. 그런데 음식점 찾기가 어려운 건 서로가 마찬가지였다. 마침 마주친 곳에 음식점 위치 안내판이 있어 냉큼 찾아 들어갔다.


 그렇게 점심을 마치고 스타벅스까지 들린 후에 나는 4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며 난생처음 이태원을 가보았다. 사실 이태원 중심가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다른 지역에 비해 외국인이 많긴 했으나 내 목표는 오로지 샐리가든이었기에 이태원을 둘러볼 시간은 없었다. 게다가 서초에 있는 '루밍'도 가봐야 했기에 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루밍에도 어머니가 꼭 보고 싶어 하던 수납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샐리가든에 가보니 일전에 전화준 적이 있다는 말을 하고 가방들을 살펴보았다.



 가방을 양쪽을 접은 상태와 편 상태를 찍어보기도 하고, 크기를 비교해보기도 하며 고민을 했다. 내가 살 건 아니지만 나보다 훨씬 보는 눈이 까다롭고 섬세하신 어머니의 눈에 들려면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 했다. 물론 들었을 때 무게까지 생각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가볍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나이가 있으신 어머니가 짐을 넣어두고 들었다고 가정할 때 과연 이게 가벼운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매니저분도 가볍다고 하셨으나 어디까지나 그분도 젊으셨기에 비교대상이 아니었다. 단순히 잠깐 왔다 갔다 일을 하기 위해 차에 넣어두고, 사무실에 넣어두는 정도의 가방이라면 상관없지만 데일리 가방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결국, 킵해두고 어지간하면 살려고 했던 A 천가방이 있었는데 이건 나조차도 사이트에서부터 마음에 들었으나 실제로 보니 더욱 구매욕구가 돌았던 제품이었다. 데일리는 물론 어떤 옷을 입어도 편하고 가볍게 메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다른 후보군의 B천가방도 있었는데 이와 비교해서 매니저분께 여쭤보니 본인도 내가 픽한 가방이 더 낫다고 하셨다. 이때 쇼핑한다고 이러는 아들은 처음 본다며 칭찬해 주셨는데 겉으론 티 안 냈지만 속으론 내심 기분 좋았다.

 사실상 어머니를 '샐리가든'으로 이끌었던 분홍색 혹주머니 같은 가방이 있었는데 실물이 없어서 찍진 못했다. 그래도 매니저분을 통해 끈의 길이나 주머니의 높이와 크기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색깔은 물론 실제품 자체가 이미 솔드아웃된 지 오래되었다. 하여튼 듣고 보니 딱 마음에 드는 사이즈였다. 그저 같은 소재의 다른 가방만 슬쩍 눈에 담아둔 채 A 천가방을 구매해서 재빨리 버스를 타러 갔다. 여기서부터 실수였다.



 버스를 타니 물론 토요일이긴 하지만 일찍 퇴근한다 가정 하에 지금이면 차가 밀릴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서울이지 않는가... 버스를 타니 좀 더 빨리 갈 수 있어서 택한 건데 교통체증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걸 떠나서 발열 의자 저거 진짜 따뜻했다...) 이럴 거면 지하철을 탔을 거다. 게다가 한 정거장 한 정거장 갑자기 슝 지나버리기도 해서 [네이버 길찾기]를 보고 있다가도 못 내려서 급하게 다음 정거장에 내려버렸다. 그렇게 기존에 타기로 했던 마을버스가 아닌 다른 마을버스를 타고 루밍으로 출발했다.



 루밍에는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그 제품이 없었다. 본인들도 '어 이거 쇼룸에 있었는데...' 하면서 찾는 걸 보니 빠져나간 지 얼마 안 되었나 보다.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이동했다고 하니 망연자실했다. 그래도 어차피 이건 가격대가 꽤 많이 나가는지라 내가 실물을 본다고 해서 어머니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보니 터덜터덜 나왔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자 아쉽다는 듯이 루밍에 이거 저거 물어보라고 하셔서 지하철을 타러 가던 길에 다시 되돌아가서 실제 사용하면 어떤지 여러 가지 물어보았다. 전화를 하는 게 편하지만 이왕 왔으니 직접 가서 물어보자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후회한다.


 

 서울역을 가는 지하철 코스는 2개가 있었는데 방배동에서 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빠를 것 같아서 그 길로 걸어가지 않고 뛰어갔다. 시간이 매우 촉박했기 때문이다. 길찾기에는 42분인데 지하철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50분 정도는 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달려서라도 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가서 또 기다릴 수 있지만 혹시 모르니 말이다. 도착하고 보니 역시나 기차를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걸어오다가 놓칠 바엔 이게 훨씬 낫다. 근데 문제는 환승 후 사당역에서 출발하는 거였는데 첫차 출발지점이라 그런지 한참을 안 왔다. 애간장이 녹아들었다. 18시 08분 기차인데 사당역에서 출발하게 된 시간은 17시 44분이었다. 44분이 되고 나서 최소 30초는 지난 시간이라 사실상 45분이나 마찬가지였고, 23분이 남은 상황인데 사실상 이거 저거 하다 보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할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조금만 헤매거나 기차 타는 곳까지 가는 시간이 길찾기가 알려준 시간보다 좀 더 걸린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숙대입구역에서 출발하여 지하철의 서울역에 도착하고도 서울역 고속철도까지 6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18시 7분 도착이라고 쓰여있다. 예전에 제주도 갔을 때도 그런데 이걸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최소 이것보다 10분 이상 잡고 이동해야 하는데 이건 뭐 와 말도 안 된다. 머리에 온갖 생각이 든다. 아까 이미 좀 달려서 체력이 빠졌으며, 왼쪽 무릎도 뭔가 덜컥거린다.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계단을 찾아 올라가다가 사람을 한 명 붙들고 물어봤다.


"서울역이 어디예요?"

"여긴데요?"

"아뇨 아뇨!"

"아~ 저기 고속철도 쪽으로..."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로 난 서울사람이 아니다. 중국에서 혼자 여행도 해봤던 만큼 길치도 아니다. 근데 도저히 서울역을 가는 편한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다. 친절하지 않다고 찰나 생각했지만 우선 말씀하신 대로 가다가 개찰구가 눈앞에 보여 우선 개찰구를 지났다. 그런데 또 어느 쪽으로 가야 서울역인지 확신이 안 간다. 이번엔 개찰구로 들어가시던 할아버지를 붙잡고 물어봤다.


"서울역 가는 길이 어디예요?'

"서울역은 여... 아니 저기 저쪽으로 쭉~ 가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그대로 달리자 이제야 익숙한 곳이 보인다. 그래도 서울역 한번 와봤다고 기억이 나다보다. 지하에서 서울역 쪽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4개씩 2단으로 있는 곳이었는데, 냉큼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달려갔다. 주변에서 어떻게 보든 상관없었다. 나는 거의 개껌을 향해 달려가는 개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슈가 조금 발생했다. 학생이 4명 있었는데 복장도 생각난다. 하늘색 숏패딩을 입고 있던 학생 하나가 오른쪽에 서있다가 갑자기 왼쪽으로 서더니 앞서 가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것이었다. 아니 양쪽으로 껴있어서 답답한 건 아는데 오른쪽에 서 있고, 왼쪽으로는 걸어 다니는 게 에스컬레이터 내의 '룰' 아니었나? 평소에는 그런 사람 봐도 그러려니 지켜봤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죄송한데... 죄송한데... 죄송한데..." 진짜 한 10번을 연신 외치니까 그제야 다른 학생이 본인 친구한테 말해주며 비켜줬다. 솔직히 화도 안 났다. 글을 쓰는 지금 화가 난다. 머릿속에는 기차만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울역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18시 06분이었다. 이미 에스컬레이터에서부터 다리에 힘이 빠졌고, 그때는 더더욱 없었는데 샐리가든 종이가방까지 놓쳐버렸다. 게다가 발로 차버리기까지 했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마치 팽이처럼 돌아가던 샐리가든은 달려가던 내가 바로 낚아채 들었다. 그즈음에 1분이 벌써 지나있었다. 이번에는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야 했다. 내 앞에는 커플이 있었는데 이들도 매우 급해 보였다. 뭐 하다 늦었는지 몰라도 분명 이유가 있었겠지. 여성분은 하이힐을 신고 뛰고 있었으니 운동화를 신은 나보다 다리에 무리가 갔지 않을까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다. 그때 밑에 직원분이 우리를 쳐다보며 빨리 내려오라는 식으로 손짓을 하신다. 이때 마음의 50프로 이상은 ‘탈 수 있겠다’라는 희망이 샘솟았다. 아무래도 직원분의 희망 어린 손짓도 한몫했고 앞서가는 커플에 딱 달라붙어 일행인 척 1명이 아닌 3명이면 더더욱 우리를 태우려고 노력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배치된 곳은 2호차였지만 기차를 타는 게 우선이었기에 5호차에 올라섰다. 그제야 바로 브런치에 글을 올릴 생각에 바닥이라도 먼저 사진으로 찍었다. 고개를 올리고 자시고 일단 숨 먼저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사진 찍힌 시간을 포함한 스크린샷으로 올려본다.



 이때는 다리가 아프다 힘들다 보다는 폐가 차갑고 기침이 절로 나왔다. 누가 보면 독감이나 코로나 걸린 줄 아실까봐 조용히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를 쓰고 달리면 더 힘들까 봐 벗고 달렸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택시를 탔는데 유독 기사아저씨분이 조용하시길래 날씨가 춥지 않냐고 운을 띄우자 대뜸 코로나 얘기를 하셨다. 그때 내가 기침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코로나일까 봐 그러신가 해서 바로 해명에 나섰다.


 '아 제가 기차를 놓칠 뻔해서 달리다가 찬 바람을 많이 마셔서 기침하는 거예요. 코로나도 독감도 아니에요~!'


 이후 코로나 걸리고도 뻔뻔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15분가량 일장 연설하셨고, 안전하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제야 에스컬레이터 때 내 앞을 막아선 학생이 생각났다. 분노가 살짝 올랐으나 잘 됐으니 잘 된 거지 하고 속으로 삼켰다. 평소에도 뭐 왼쪽에 서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급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경고했다. 동시에 하체운동과 유산소 운동에 대한 절실함이 생겼다. 아 무릎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하지... 사실 어제 무릎을 신경 쓰며 뛰다 보니 옆구리와 고관절 부분 근육이 좀 뭉친 것 같아서 괜시리 불편하다...


 옷이나 가방 같은 걸 보고 느끼고 구매를 결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처럼 에스컬레이터 왼쪽에 선 사람 덕분에 내가 불편을 겪고 느껴봐야 나도 그렇게 하면 안되겠구나 하며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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