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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장인 Aug 08. 2023

운동, 왜 해?

운동을 시작한 이유

 운동... 처음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은 운동부 친구들이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태권도부, 씨름부, 복싱부 등입니다. 아니면 싸움 잘하는 일진들의 서열 놀이에 활용하는 정도랄까요? 운동 잘한다고 하면 최소 무시를 당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무시당할 만큼 키가 또 작진 않아서 필요성을 못 느꼈죠. 자랑은 아닙니다. 그 키가 지금 키랑 똑같거든요...


 관심을 조금 갖게 된 계기가 있다면 반에서 팔씨름을 생각보다 잘하는 제 모습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중학교 때는 그래도 힘이 강한 축에 속했던 것 같네요. 팔 힘만 말이죠. 심지어 어떤 친구는 저한테 지고 억울해서 한쪽 팔만 죽어라 운동하기도 했습니다. 1년 뒤에 저한테 다시 한번 도전했고, 제가 졌습니다. 도전정신을 부른 이유가 뭔고 하니 겉보기에 상당히 약해 보였던 제게 진 게 억울했다네요. 저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역시 승부욕은 또 생기더라고요. 물론 저보다 더 강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운동을 통해 팔씨름이 강해진 친구를 보니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관심은 찰나였습니다.


 이후 중학교 3학년 운동회날 팔씨름 반 대항전도 나갔습니다. 전 2반이었고, 1반의 가장 힘센 친구와 팔씨름을 했죠. 그 친구 역시 제가 약해 보였는지 다른 덩치 큰 친구를 가리키며 '난 쟤랑 하고 싶은데 왜 네가 나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순서가 이미 정해진 걸 어떡하겠습니까? 룰인데 해야죠. 결국 팔씨름은 시작됐고, 교탁은 울음소리를 냈습니다. 그 친구가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있던 건지 버티다 버티다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박빙이었던 승부로 주위에선 환호했던 게 기억이 남았고, 거기게 만족한 게 잘못이었습니다.


 '난 운동을 할 필요가 없겠는데?'


 어리석었습니다. 좀 더 일찍 시작할걸...


 그렇게 9년 뒤 갖가지 이유를 안고 운동을 시작합니다.




 24살 중국에 왔습니다. 대학교 입학을 위해서였는데 한국인 친구도 없고 외로웠죠.

 당시 가장 만만했던 건 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헬스장을 끊기엔 비용이 부담스러워 철봉과 평행봉이 있는 놀이터를 찾아다녔죠. 거주하던 아파트엔 철봉이나 평행봉이 단 하나도 없었기에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 단지까지 갔습니다. 시작했을 때가 여름이었는데 주위에 그늘은 또 없어서 하루하루 여간 더운 게 아니었죠. 공기도 그리 좋은 동네는 아니니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매일 공기 오염도를 측정하는 앱을 켤 때면 노란불은 일상이었을 정도니까요.


 평소 여유가 없을 때는 대학교 수업이 끝나마자 운동장 주변에 있는 여러 높이의 철봉이 있는 장소에서 하기도 했습니다. 야간 수업을 진행했을 때인데 모기가 한창 많을 때는 제외하고는 할 만했죠. 모기가 어쩜 그리 크고 많은지... 입대 전에는 이 동네 모기가 세상에서 제일 큰 줄 알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왜 그렇게까지 운동을 하나? 중국인 친구를 사귀여서 어울리는 게 낫지 않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려 세 가지나 있었습니다.





1. 허약함을 숨겨줄 장치


 중학교 때부터 키에 비해 몸이 얇았습니다. 면봉..? 면봉까진 아니지만 근접했지요. 그렇습니다. 어깨도 좁고 팔도 얇고 골격도 크지 않은 데다가 튼튼한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신체 탓을 할 순 없지만 정신까지도 몸에 비례해서 약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신감도 떨어졌죠. 요즘 친구들 얼마나 큽니까? 얘네들이 과연 동양인의 피를 이어받은 애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말이죠. 게다가 얼굴을 보지 않으면 학생인지 성인인지 분간조차 안 됩니다. 그에 비하면 전 너무 약골이었습니다. 이를 변화시켜 줄 수 있는 건 단기적으로 보나 장기적으로 보나 정답은 운동에 있었습니다.


2. 나태함에 불씨를 붙여줄 수 있는 친구


 유학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 친구들끼리 이리저리 놀러도 가보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국민들만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한국인들과 너무 정들면 조금은 방탕한 생활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규칙적이고 모범적인 생활이 필요했죠. 그러기에 운동만큼 저를 잡아줄 만한 친구가 없었죠. 맨날 보고 싶게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설계해 주며 건강까지 챙겨주는 친구 말이죠. 운동 좋은 건 모두가 알다 보니, 운동 가야 한다고 하면 말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러모로 빠져나갈 구멍이 되기도 했죠.


3. 삶의 경험치를 증명하는 도구


 1번과 비슷할 수 있는데 좀 더 구체적인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늦은 나이 유학을 간 마당에 입대를 하게 되면 분명 훨씬 늦은 나이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중국 유학 도중에 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그러기엔 이미 정이 든 중국 친구들과 헤어질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부터 다시 적응하는 것은 제게 꽤나 가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과 한국 간의 외교적인 관계가 언제 악화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죠. 그러면 돌아오기 쉽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SSAD 사건이 터지기도 했었고, 주재원분들이 중국을 빠져나가는 일도 잦아졌었습니다.


 하여튼 안 그래도 나이가 많으면 어느 정도 대접이야 해주겠지만 군생활에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은 체력과 근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급이 다인 공간에서 나이 믿고 까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군장이나 총기, 박격포 등의 여러 장비들을 걸치려면 근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미리미리 신체능력을 길러야 했습니다. 그때 가서 훈련받으며 준비하기엔 분명 늦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아무리 나이 많고 비교적 살아온 경험이 더 있더라도 군생활은 쥐뿔도 모르는데 운동이라도 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훈련할 때마다 뒤쳐지면 무시당할 게 뻔했습니다. 심지어 훈련을 떠나 작업이나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도 운동으로 인해 다져진 외관이나 일하는 모습들은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운동은 단순히 필요한 정도가 아닌 반드시 해야 하는 부분이었으며, 당시에는 가장 큰 이유이자 계기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운동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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