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누가 몰라서 이럽니까? 사람 운전자를 없애려고 정부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모르십니까? 그렇다고 대놓고 사람 운전자를 없앤다고 하면 독재라고 비난하니 저희도 죽을 지경입니다.”
“사람 운전자 때문에 자율주행차의 운행효율이 떨어지니 한시라도 시급하게 대책을 세워주십시오. 그런 일 하라고 정부가 있는 거 아닙니까?”
길게 뻗은 회의용 테이블 중간에 앉은 사람이 맞은편에 앉은 참석자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회장님은 무슨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까?”
머리가 완전히 백발인 신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통신호를 7색 체계로 바꾸어야 합니다. 교통신호는 여전히 3색 신호 체계인데요, 지금 시대에 3색 신호라니 말도 안 됩니다.”
회장은 3색 교통신호에 대해서 단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3색 신호는 초록색은 진행, 노란색은 주의, 빨간색은 정지신호입니다. 세 가지 색깔로만 교통을 제어하니 자율주행차의 운행효율이 많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오래전에 나와 있습니다. 이런 낡은 규제를 개혁해서 경제발전의 물꼬를 터야 합니다.”
회장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정부에서 나온 참석자가 일어났다. 동시에, 참석자들이 앉은 테이블 위로 ‘교통신호 7색 체계 개편안’이라는 자료가 배포되었다.
“오늘 회의는 언론에 홍보하기 위해서 열렸습니다. 정부는 이미 7색 체계에 대한 준비를 마쳤고요. 하지만 독재라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여러분들을 불러 모아서 굳이 회의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을 뿐입니다. 국민이 7색 체계를 원하기 때문에 정부가 이에 호응한다는 형식으로 나가야 합니다.”
며칠 후, 정부는 교통신호를 7색 체계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사람 운전자는 크게 당황했다. 지금까지는 3색만 제대로 지키면 되었지만 앞으로는 7색을 따라야 한다. 추가된 색은 주황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이다. 교통신호등 주황색에 불이 들어오면 자동차는 약간 옆으로 비켜서 길을 터줘야 한다. 소방차나 구급차와 같은 긴급차량이 우선 지나가기 위해서다. 파란색에 불이 들어오면 즉시 멈추었다가 다시 진행해야 한다. 남색에 불이 들어오면 좌회전해도 좋으나 가급적 안 하는 게 좋다는 신호다. 보라색은 교차로를 직진 통과해도 좋으나 좌회전 차량에 주의해야 한다.
교통신호가 7색 체계로 바뀌고 나서 사람 운전자는 크게 감소했다. 새로운 신호 체계에 당황한 사람 운전자는 운전학원을 다니거나 뒷골목에서 운전연습을 했다. 그러나 사고가 겁이 나서 도로에 쉽게 나오지는 못했다. 사람 운전자가 감소하니 자율주행차가 시내를 통과하는 평균속도가 3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한 명 한 명 7색 신호 체계에 익숙해지더니 어느 순간 사람 운전자 수는 3색 체계 당시와 같이 늘어났다.
정부에서는 대책회의를 열었다. 물론 모든 준비가 다 끝난 상태에서 국민에게 민주정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열은 회의에 불과하다.
교통체계는 20색 신호 체계로 바뀌었다.
정부에서는 대표적인 규제개혁 사례라면서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언론에서는 20색 신호 체계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연일 기사를 실었다. 티브이에서는 연일 전문가 대담을 방송했다.
20색 신호 체계가 적용되자 사람 운전자는 급격하게 감소했다. 가끔 사람 운전자가 도로에 나오기는 했지만 교차로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교통경찰에 적발되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떤 동물인가. 환경이 바뀌면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또 적응한다. 한 명한 명 20색 신호 체계에 익숙해지더니 어느 순간 사람 운전자 수는 7색 체계 당시와 같이 늘어났다.
정부에서는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번에는 회장이 전혀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색깔을 이용하는 교통 신호 체계를 완전히 버리고 모스 부호 방식으로 변경해야 합니다. 신호등에서는 노란색만 깜박거리는데 깜박거리는 시간과 속도를 미묘하게 바꾸면서 신호를 보내는 방식입니다. 자율 주행차에게는 아주 쉬운 신호이지만 사람 운전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 참석자가 감탄 어린 목소리로 찬성했다.
“무선통신 기술자는 모스 부호를 알지만 막상 교차로에서 모스 부호 신호가 나오면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겠네요. 그러면 교통경찰이 적발해서 딱지를 끊고. 속도를 갑자기 줄이면 교통 흐름을 방해했다는 죄목도 추가할 수 있겠습니다. 세금 걷기에 딱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정부는 교통 신호 체계를 모스 부호 방식으로 바꾸었다.
언론에서는 파괴적 혁신이라면서 정부를 칭찬했다. 드디어 도로에 사람 운전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자율주행차가 시내를 통과하는 평균속도는 40퍼센트 증가하였다.
어느 날, 경찰서 교통 모니터에 신호를 위반하는 자동차가 나타났다. 자동차는 모든 교차로를 전속력으로 통과했다. 교차로는 엉망이 되었다. 이 자동차를 피하기 위해 자율주행차 한 대가 급정거하면서 다른 자율주행차와 정면충돌했다. 뒤따라오던 자율주행차들이 급히 정지하면서 12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신호 위반한 자동차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전속력으로 도주했다.
경찰서에서는 모든 경찰에게 무전을 보냈다.
“신호를 위반하고 도주 중인 차량을 긴급히 확보하라.”
모든 경찰이 총출동했다.
교차로에 투입된 경찰은 수신호로 차량을 제어했다. 그러나 한 번도 수신호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경찰은 교통규칙을 몰랐다. 결국, 자율주행차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도주범 뒤를 쫓던 경찰은 간신히 도주범을 잡았다.
도주범은 엄중한 경비 속에 경찰서 취조실에 도착했다.
너무 큰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경찰서장이 직접 심문하러 취조실에 들어왔다.
“당신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고는 계시오?”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운전자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말했다.
“노란불이 깜박거리길래 얼른 교차로를 통과했는데 그게 그렇게 큰 범죄인 줄 몰랐습니다.”
경찰서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아니, 당신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요?”
“제가 산에 들어가기 전에, 그러니까 40년 전에는 노란불이 깜박거리면 모든 차는 정지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교차로를 통과했습니다. 교차로를 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중간에 신호가 바뀌면 당연히 꼬리물기를 했고요.”
정부에서는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단 한 명의 사람 운전자로 인해서 지금까지 공들여온 교통 신호 체계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앞으로 이런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떤 신호 체계를 만들어야 할지 좋은 아이디어를 내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정부에서는 아직까지 어떤 아이디어도 만들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