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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Aug 26. 2021

엘리베이터가 빛의 속도로 간다면

음주 탑승이 무죄라니 말도 안 돼

화장실 변기 하나에 두 사람이 같이 앉을 수 없듯이 엘리베이터 한 대에 두 사람이 같이 탈 수는 없다.

“옛날에는 모르는 사람 수십 명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다는데 믿을 수가 엄~써. 거짓으로 지어낸 말 같아. 신화나 우화처럼 우매한 시민을 놀리는 거지.”

남성은 구부정한 자세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혼잣말이기는 하지만 옆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십여 명에게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소리가 크다. 어느 시대에나 술 취한 사람은 목소리가 크다.

“음주 탑승은 무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도대체 이해가 안 돼. 어떻게 엘리베이터를 술 먹고 타는지 몰라. 그 사람이 내리고 난 후에 바로 그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은 공기 중에 있는 알코올을 다 마셔야 하잖아. 그건 간접 살인이라고.”

한 여성이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전화기 상대편에게 하듯이 말했지만 술 취한 사람 들으라는 뜻으로 크게 말했다. 여성이 전화기에 대고 하는 말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십여 명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성 앞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남성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서 의자에 앉았다. 엘리베이터에는 화장실 변기와 비슷한 크기의 의자가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은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인공지능 스피커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사용자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는 모두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재료가 된다. 학습을 거치면 사용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사람만을 위한 최적의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은 갈 때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만약 분위기가 지난번과 똑같다면 학습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의하는 고객에게 엘리베이터 회사와 변기 회사는 고객 데이터의 품질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한다.

남성이 의자에 앉자마자 스피커에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나왔다.

“오, 안녕하씨우?”

혀가 꼬부라진 발음으로 답했다. 답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귀찮은 질문을 하기 때문에 반드시 대답을 하게 된다.

“술을 많이 드셨네요?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고럼, 기분 좋은 날이찌. 아~주, 많~이.”

“기분이 좋으시다니 축하드립니다. 그럼, 속도를 선택해 주세요.”

“아주 빠르게.”

남성이 엘리베이터 속도를 ‘아주 빠르게’로 선택하자 스피커에서 놀랍다는 반응이 나왔다.

“퇴근하실 때에는 언제나 ‘아주 느리게’를 선택하시는데 왜 오늘은 ‘아주 빠르게’를 선택하세요? 이 아파트에 이사 오신 후로 12년 만에 처음으로 ‘아주 빠르게’를 선택하셨습니다.”

“고래~? 벌써 12년이 되었나? 차암, 세월이 빠르기도 하네.”

“12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주 빠르게’를 선택하신 게 중요합니다. 왜 그러신지 이유를 알려 주세요.”

스피커는 진지하게 물었다. 아직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속도는 모두 다섯 단계다. ‘아주 빠르게. 빠르게.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리고 또 하나는 ‘엘리베이터 마음대로’다. 사용자는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목소리를 높여 속도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 선택하지 않거나 망설이면 ‘엘리베이터 마음대로’ 속도가 된다.

남성은 퇴근해서 지상 195층에 있는 집까지 올라갈 때에는 항상 ‘아주 느리게’를 선택했다. 그런데 오늘은 12년 만에 ‘아주 빠르게’를 선택했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지금까지 학습했던 남성의 데이터를 모두 살펴보았다. 하지만 남성이 왜 오늘 ‘아주 빠르게’를 선택했는지는 전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엘리베이터 마음대로’ 속도로 올라갈 수는 있지만 나중에 클레임이 걸릴 소지가 있다. 취객은 술이 깨고 나면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이 어떤 말을 하지 않았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아주 느리게를 선택했는데 왜 이렇게 빨리 올라가냐’고 클레임을 건다. 물론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서.

그래서 요즘 나오는 최신형 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 마음대로’ 속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 속도는 사용자가 타지 않았을 때 적절한 층까지 움직일 때나 내는 속도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남성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혹시 집에 맛있는 음식이 있나요? 빨리 가서 그걸 먹으려고 속도를 ‘아주 빠르게’로 선택하셨습니까?”

“맛있는 음식? 그런 건 엄~써. 있다고 해도 오늘은 몬~ 먹지. 이미 저녁을 먹고 왔쓰니까.”

취객은 오른손으로 배를 두드렸다. 상당히 불룩하다.

“혹시 집에서 해야 할 업무가 있나요? 회사에서 다 못한 업무를 집에 가지고 가서 얼른 해서 보고하려고 속도를 ‘아주 빠르게’로 선택하셨습니까?”

“남은 업무? 그런 건 엄~써. 내가 이래 봬도 업무는 그날그날 다~ 처리하고 퇴근하거든.”

인공지능 스피커는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지금까지 학습한 데이터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본사에 있는 사람 슈퍼바이저를 전화로 연결했다. 인공지능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사람이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확률은 1퍼센트 미만이다.

“안녕하세요, 본사에 있는 슈퍼바이저입니다.”

스피커에서 굵은 남성 목소리가 나왔다. 마치 ‘저는 사람입니다’라는 표시를 내는 듯한 음성이다. 나이가 적어도 70세는 되는 듯한 목소리다.

“아, 본싸에 계신 분이십니까?”

남성은 ‘분’에 악센트를 주면서 말했다. ‘당신은 사람입니까?’라는 표현이다.

“네, 항상 저희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직접 인사드리는 건 12년 만에 처음이네요.”

남성과 사람 슈퍼바이저는 스피커를 사이에 두고 인사를 하였다.

“진작에 인싸를 드렸어야 하는데 저도 워~낙~ 바쁘다 보니...”

남성은 의자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서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왜 ‘아주 빠르게’를 선택하셨습니까? 물론 그 속도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이유를 모르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데이터 학습에 바탕을 두고 최적화한 답을 바탕으로 움직이니까요.”

“이해합니다. 저희 회사에서도 모~오~든~ 업무가 최적화되어있으니까요.”

“왜 오늘 12년 만에 ‘아주 빠르게’를 선택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물론 고객님의 개인정보와 데이터는 오로지 인공지능 학습에만 사용됩니다. 절대 다른 기업과 공유하지 않고 외부로 유출하지도 않습니다.”

“공유도 하지 않고 유출도 하지 않지만 서로 참고는 하겠지요?”

남성은 참고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술이 다 깬 듯하다.

“혹시 지난달에 있었던 개인정보 참고 사건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관련자는 모두 구속되었고 개인정보는 모두 파기되었습니다.”

사람 슈퍼바이저는 남성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왜 속도를 ‘아주 빠르게’로 선택했는지.

물론 엘리베이터는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게 사실은...”

남성이 말을 시작하자 사람 슈퍼바이저는 긴장했다.

“네, 어떤 말씀이라도 다 해주세요. 그래야 저희 인공지능이 고객님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갈 때 항상 ‘아주 느리게’를 선택한 이유는 집에 마누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신혼 때는 1초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항상 ‘아주 빠르게’였지요. 그런데 오늘. 바로 오늘. 마누라가 12년 만에 친정에 갔거든요.”

남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람 슈퍼바이저가 수동으로 속도를 지시했다.

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 마음대로’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속도다.

‘아주 매우 몹시 엄청 빠르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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