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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Sep 04. 2021

열 받게하는 재주도 재주다

가난뱅이는 가슴도 작다는 말에 흥분한 고객은...

“왜 인상 쓰고 쳐다봐?”

“무슨 인상을 썼다고 그러십니까?”

고객이 종업원에게 화를 내며 말하자 종업원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고객이 화를 낸다고 종업원이 무조건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시대는 지났다. 고객이나 종업원이나 다 같은 인권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 봐, 지금도 인상 쓰면서 노려보잖아?”

“제가 원래 인상이 이런 걸 어떡합니까?”

인상 쓴다는 클레임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는다. 인상이 나쁘다는 이유로 종업원 머리에 리본을 달기도 하고 귀여운 안경을 씌우기도 하지만 이런 노력도 종업원이 하기 싫다면 강요할 수 없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당신 말이야, 이전에는 어떤 일 했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사람을 열 받게 해?”

“정치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왜요.”

“그렇지? 어쩐지 보통 솜씨가 아니라 생각했어. 역시 남다르게 사람 열 받게 하는 재주가 있다 했네.”

고객은 “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표정이다.

“당신, 여기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됐어?”

“얼마나 됐으면, 그게 고객님 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왜 상관이 없어? 서비스 수준이 너무 낮으니까 그러지. 요즘 백화점에서는 도대체 어떤 교육을 시키는 거야?”

“안 사면 그만이지, 왜 남의 자존심을 건드립니까?”

고객과 종업원 사이에 싸움이 났다.  

매장 주변에 순식간에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불구경과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볼거리는 없다.

구경꾼이 늘어나면 싸움도 커진다.

구경꾼이 사라지면 싸움도 끝난다.

지금은 구경꾼이 늘어나고 있으니 싸움이 커져가는 단계다.

구경꾼들은 내심 싸움이 좀 더 커지기를 바라면서 한 마디씩 거들었다.

“하긴 요즘 보면 누가 종업원이고 누가 고객인지 몰라. 고객을 봐도 인사 안 하는 종업원이 얼마나 많은데.”

“구경만 하고 안 사면 어찌나 인상을 쓰는지 구경도 못한다니까.”

구경꾼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종업원은 흥분해서 말을 쏘아붙였다.

“돈이 없으면 그냥 집에나 있지, 뭐하러 우리 매장에 와서 바쁜 사람 힘들게 합니까?”

“뭐야?”

고객은 너무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저러다가 일 저지르는 거 아니야?”

구경꾼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고 느꼈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싸움은 싸움으로 적당하게 끝나야 한다.

“내가 오늘 끝장을 보고 말아야지.”

고객은 뒷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안돼. 안돼요.”

놀란 구경꾼이 고객을 향해서 소리쳤다.

고객은 흥분해서 누가 뭐라 하는지 듣지 못했다.

들었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고객은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쏠 테면 쏴봐. 당신은 마음이 약해서 못 쏘겠지? 형무소 갈까 봐 무섭지?”

종업원은 총을 보고도 겁을 먹지 않고 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고객을 도발하고 있다.

고객은 종업원을 향해서 총을 겨눈 채로 발발 떨고 있다.  

“원래 가난뱅이는 가슴도 작아.”

종업원의 이 발언이 결정타가 되었다.

고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종업원에게 권총을 발사했다.

먼저 왼쪽 가슴.

종업원이 뒤로 넘어졌다.

고객은 천천히 종업원에게 다가가더니 오른쪽 가슴에 한 발 더 쏘았다.

구경꾼은 모두 바닥에 엎드렸다.

싸움 구경하러 왔지 살인사건 구경하러 오지는 않았다.

만약 고객이 총을 잘못 겨냥하면 구경꾼이 죽을 수도 있다.

모든 구경꾼은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총을 쏜 고객은 넋이 나간 표정이다.

“아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고객은 후회하는 모습으로 자책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시간이 정지했다.

구경꾼들은 고개를 들어 상황을 보고 싶지만 겁이 나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고객은 총을 든 손을 내리고 멍하게 서 있다.

종업원은 쓰러진 채로 꼼짝 않고 있다.

10초. 20초가 지나고 1분이 지났다.

총을 맞고 바닥에 쓰러져있던 종업원이 몸을 꿈틀거렸다.

종업원은 일어나서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더니 두 팔을 위로 가볍게 두세 번 올려 보았다.

그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객에게 말했다.

“보세요, 고객님. 이렇게 멀쩡하다니까요.”

종업원은 상의 재킷을 들어 올렸다.

방탄조끼가 나타났다. 총알 자국이 두 곳 선명하다.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구경꾼들이 하나, 둘 일어났다.

두 사람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보더니 “역시”라는 표정으로 떠나갔다.

종업원은 고객에게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고객님이 하도 마음이 여려서 총을 못 쏘니까 제가 역할극을 했죠. 그런데 보시다시피 멀쩡하잖아요?”

“그렇네요. 정말 이 방탄조끼는 성능이 좋네요.”

고객은 감동했다는 표정이다.

“권총 하고 방탄조끼 둘 다 사면 얼마나 할인된다고요?”

“기본으로 20퍼센트 할인됩니다.”

고객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종업원을 바라보았다.

“그럼 두 개 다 주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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