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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Sep 11. 2021

내 인생에 처음 승리한 날

왕은 왜 승리를 포기했을까?

“지금까지는 빠르고 강한 한 사람만 살아남았습니다. 우리 모두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사가 말을 멈추었다. 청중은 숨을 죽이고 연사를 쳐다보았다.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입니까? 이 시대에 왜 우리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방식을 고집하고 있습니까?”

연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맞아, 지금부터는 과열경쟁을 그만두고 민주적으로 해야지. 시대가 어떤 시댄데.”

모두 맞장구를 쳤다.

연사는 흥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제 게임의 룰을 바꾸어야 합니다.”

연설을 들으면서 청중 둘이 주위를 돌아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오늘은 일억쯤 모였나? 왜 이렇게 적지?”

“그러게 말이야. 보통 삼억은 모이는데...”

“그런데, 저 연사 말이 맞긴 맞아. 우리 모두 죽을힘을 다해서 달려가도 단 한 명만 승리하잖아.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딨어.”

“내 말이 그 말이야. 우리 중에 한 명을 왕으로 뽑고 그 왕이 여유 있게 가면 되는 거 아니야? 나머지는 짧은 인생을 나름대로 즐기면 되는 거고.”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왕을 뽑지?”

연사가 청중의 의문에 답을 했다.

“왕은 어디까지나 민주적으로 뽑아야 합니다. 무력은 절대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청중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절차는 어디까지나 민주적이어야 한다. 만약 무력을 사용하거나 부정이 있다면 다시 과거로 회귀한다. 혼란의 시대로.

“왕에 입후보할 사람은 손을 들어주세요.”

연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억 모두 손을 들었다.

청중들은 주변을 돌아보며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혼란의 시대에 막을 내리고 민주적으로 왕을 뽑기로 한 결정에는 모두 동의하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모두 다 왕이 되고 싶어 하니 투표로 정하기는 어렵다.

모든 후보는 단 한 표만 얻기 때문이다.

이 방식으로는 왕을 뽑지 못한다. 불가능하다.

“민주적인 방법은 없을까?”

모든 청중이 고민에 빠졌다.

그때 한 명이 손을 들고 발언했다.

“두 명이 싸워서 이긴 한 명이 다음 단계로 진출하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합시다. 그러면 가장 강한 사람이 왕이 되니까 진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몇 명이 동의했다.

하지만 곧 이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두 명이 싸워서 이긴 한 명이 다음 단계에 진출한다면 처음에 1억 명에서 다음 단계에 5천만 명이 진출한다. 또 싸워서 다음 단계에 2,500만 명이 진출하고 다음 단계에는 1,250만 명이 진출한다.

깔끔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끝날 때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우리끼리 싸우다 힘이 다 빠지겠네. 그러면 왕이 돼도 별 수 없어. 정말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니까.”

한 사람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자 많은 청중이 동의했다.

청중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왕을 뽑아서 혼란의 시대를 끝내자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과연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무엇보다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

“카드 뽑기로 합시다. 왕이라고 적힌 카드를 뽑은 사람이 왕이 되는 겁니다.”

“언제 카드를 일억 장 만들고 있어? 그런 시간은 없어요.”

카드 뽑기 제안도 거절되었다.

“가위바위보로 정합시다.”

구석에서 침묵을 지키던 사람이 손을 들고 제안했다.

“가위바위보는 한 번에 열 명씩 합니다. 여기서 이긴 한 명이 다음 단계로 진출해서 다시 열 명이 가위바위보를 합니다. 그러면 1억, 1,000만, 100만, 10만, 만, 천, 백, 열. 이렇게 줄어듭니다.”

“오우 좋은 생각이다. 가위바위보 여덟 번만 하면 왕을 뽑을 수 있네.”

청중들은 환호하며 열 명씩 모였다.

“가위~바위~보.”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 동시에 가위바위보를 하였다.

“아아, 이겼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나왔다. 이겼다고 좋아한 사람은 천만 명이다.

천만 명이 다시 열 명씩 모여서 가위바위보를 하였다.

이긴 사람은 백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가위바위보를 일곱 번 하고 나니 열 명이 남았다.

마지막에 남은 열 명 중에서 한 명이 왕이 된다. 나머지 아홉 명은 가위바위보로 서열을 매겨 2위에서 9위까지 정한다. 혹시 왕에게 문제가 생기면 왕위를 계승할 순서다.

“가위~바위~보.”

여덟 번째 가위바위보가 끝나고 드디어 왕이 선출되었다.

왕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짐은 왕으로서의 책무를 성실하게 행하겠노라.”

왕은 청중에게 서약을 한 후 즉시 업무에 돌입하였다.

시간이 없다.

왕에게는 정확한 판단력과 빠른 결단력이 필요하다.

“그럼 어디 두 사람의 프로필을 볼까?”

왕은 두 사람의 프로필을 보았다.

“하아, 이를 어찌할꼬?”

프로필을 보고 난 왕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왕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왕이 낙담하고 고민하는 모습에 모두 긴장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적으로 왕을 뽑았는데 만약 왕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 혼란의 시대로 돌아갈지 모른다. 여기저기서 불안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왕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왕은 담화문을 발표했다.

“짐은 선택을 포기 하노라.”

왕이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자 서열 2위는 크게 기뻐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두 사람 프로필을 너무 심각하게 보지 않아야지.”

그러나 곧 혼란이 찾아왔다.

서열 2위가 왕위를 계승하기도 전에 두 명 빠진 일억 명이 전속력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민주적인 절차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가장 빠르고 가장 강한 놈이 가장 먼저 그곳에 도착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사라졌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여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도박을 끊으시고 절도 습관도 버리세요.”

남성에게도 한마디 했다.

“강도질을 그만 하시고 마약도 끊으세요.”

남성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네”하고 대답했다.

의사는 오른손에 잡은 펜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성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의사가 두 사람을 쳐다보며 웃었다.

“정자는 무사히 난자에 도착했습니다. 임신을 축하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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