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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Oct 02. 2021

회사에서는 가면을 써야죠?

가면 벗은 내 얼굴은 가면보다 더 가면스럽다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남성이 가면을 찾았다. 밤새 쓰고 잤던 가면을 벗고 출근하는 가면을 써야 한다. 그런데 가면이 하나도 없다. 

“아참, 어제저녁에 너무 늦어서 가면을 못 사 왔구나.”

혼자 살고 있는 이 남성은 다른 사람에게 가면 좀 사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다. 

“어떡하지? 이 가면은 벌써 일곱 시간이나 썼는데.”

남성은 한참 동안 고민했다. 새 가면은 없고 출근은 해야 한다. 남성은 큰 결심을 했다. 

가면을 쓰지 않고 출근했다.

회사에 가니 동료들이 이미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다. 

“좋은 아침.”

남성이 인사하니 동료들도 남성에게 인사했다. 

동료들은 남성을 보면서 감탄 어린 칭찬을 하였다. 

“오늘은 아주 멋진 가면을 하고 나왔네? 꼭 진짜 사람 같아.”

“혹시 그 가면이 새로 나온다던 동물 피부 가면 아니야? 거친 피부가 진짜 같아.” 

“그 가면 어디서 샀는지 좀 알려줘. 화내고 싶을 때 쓰면 좋겠어.”

남성의 얼굴을 처음 보는 동료들이 모두 좋은 가면이라고 칭찬했다.

남성은 기분이 좋았다. 

한 시간이 지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한마디 했다.

“아무리 그 가면이 좋아도 그렇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다른 가면으로 바꾸지 않아?”

“아아, 지금 바꾸러 가려던 참이야.”

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면실로 갔다. 가면실에는 혼자 들어갈 수 있는 방이 다섯 개 나란히 있다. 가면을 바꿔 쓰는 장소인데 이곳은 감시 카메라가 없다. 

“가면을 바꿔 쓰는 장면을 몰래 훔쳐보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믿을 수가 없어.”

남성은 혼잣말을 하며 비어있는 방에 들어가서 앉았다. 

“어떡하지? 다행히 얼굴을 가면처럼 생각해서 지나갔지만 새로운 가면은 어떻게 할까? 근무시간이지만 잠깐 나가서 사 올 수밖에 없겠지?”

남성은 회사 밖으로 나와 옆 건물로 들어갔다. 가면 매장이 열일곱 개 있는 가면 백화점이다.

완벽한 감시 사회가 되고 나서 모든 사람은 가면을 쓰고 다닌다. 처음에는 안면인식을 피하려는 목적이었지만 매일 가면을 쓰다 보니 이제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가면은 마치 공기처럼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가면 산업은 이 시대 최대의 산업이다.      




“요즘 어떤 가면이 유행합니까?”

남성은 진열대 앞에서 망설이다가 점원에게 물었다.

가면이 너무 많으니까 고르기 어렵다.

“고객님이 사용하실 건가요?”

“네, 지금까지는 가장 할인이 많이 되는 가면을 사용했는데 오늘은 좀 새로운 걸 하고 싶어 서그럽니다. 신상품 가면이 이렇게 많이 나왔네요.”

남성은 놀라는 표정으로 신상품을 보았다. 

“요즘에는 한 시간마다 가면을 바꿔 쓰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우리 회사에는 삼십 분마다 가면 바꿔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점원은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아마 일 분마다 가면을 바꿔 쓰게 될지 몰라요.”

“가면 하나로 하루를 쓰는 사람도 있다던데 가짜 뉴스가 분명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가면 하나를 며칠씩 쓰고 다녔을까요?”

남성은 점원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점원은 여우 가면을 쓰고 있다. 목소리를 듣고 나이를 어림짐작해보면 아직 20대 여성처럼 느껴진다.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나이도 추측에 불과하다.

남성은 아인슈타인 가면을 손에 들었다.  

“아인슈타인 가면도 잘 나가요.”

점원이 옆에 서서 응대했다.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고 있는 가면이라서 귀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가격이 가장 중요합니다.”

점원은 남성에게 신상품 가면을 몇 개 보여줬다.

“만약 밝은 느낌을 원하신다면 여기 이런 가면은 어떠세요? 백 개 구입하시면 5퍼센트 할인해 드릴게요. 지금 하고 계신 가면은 좀 어두워 보이네요.”

남성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어둡게 보인다.

“내 얼굴이 이런 색깔이었구나.”

남성이 자신의 얼굴을 이렇게 오랫동안 노출하고 있는 건 20년 만이다.

점원은 진열대 위에 계속해서 가면을 올려놨다. 소재도 다양해서 종이 가면, 천 가면, 가죽 가면, 인조 피부 가면이 있다.

“다음 달에는 드디어 동물 피부 가면도 나올 예정이거든요. 뱀 피부 가면을 쓰면 사람 얼굴은 완벽하게 뱀 얼굴이 된다고 해요. 닭 피부 가면을 쓰면 사람 얼굴은 닭살 돋은 얼굴이 된다 하고요.”

점원은 신이 나서 신상품을 설명했다. 근무시간에 가면을 사러 나오는 사람은 대부분 호구 고객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급하면 일하다 말고 가면 사러 나왔을까? 당연히 호구 고객이지.’ 

점원은 속으로 생각하며 계속해서 신상품을 소개했다. 

“이런 가면은 어떠세요? 혈압과 맥박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전자 가면도 있고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식용 가면도 있어요. 도시락 가면도 있고 샐러드 가면도 있으니 천천히 구경해 보세요.”

남성은 어제 본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신문을 보니까 코끼리 가면이 유행할 거라 하던데, 정말 그렇게 보십니까?”

“어차피 가면 회사에서 광고비를 받고 쓴 기사니까 너무 신중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점원은 가볍게 받아넘겼다. 

최종적으로 남성은 다양한 종류를 섞어서 가면 백 개를 구입했다. 

회사로 돌아와서 가면실로 직행했다. 늑대 가면을 쓰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부장이 불렀다.

“이봐, 늑대.”

모든 사원이 가면을 쓰고 근무하니 누가 누군지 모른다. 그래서 사원들은 가면을 보고 그때그때 적당하게 상대방을 부른다. 남성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늑대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부르셨습니까?”

“우리 회사가 새롭게 개발한 안면 인식기 말이야.”

“네, 가장 최신식 안면 인식기 말씀이죠?”

“그걸 회사 내에서 성능 테스트를 하고 있거든.”

“안면 인식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남성도 들은 기억이 있다는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맞아. 그걸로 오늘 아침에 테스트했는데 가장 인식이 안 되는 게 바로 자네 가면이었어. 아까 하고 있던 가면은 도대체 어떤 가면이야? 어두운 얼굴로 잔뜩 찌푸린 인상이던데.”

“그건 사람 얼굴 가면입니다.”

“그래? 나중에 제품 설명서 좀 보여주게.”

부장은 상체를 뒤로 숙이면서 고개를 들어 남성을 쳐다보았다. 부장의 악어 가면이 반질반질하게 빛난다. 

“실내에서 야광 가면을 쓰다니.”

남성은 얼굴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가면을 쓰고 있으니 인상을 쓰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부장은 할 일이 없는지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면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면 걸음걸이와 출퇴근 코스를 조합해야 하고 여기에 더해 쇼핑 데이터와 행동 데이터가 필요하거든. 모든 데이터를 조합하면 가면 속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지.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기는 해.”

“가면을 바꾸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으니 안면 인식기가 그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죠?”

남성의 질문에 부장은 대답하지 않고 신문을 보여주었다. 손가락을 들어 한 부분을 가리킨다. 

남성은 기사를 급히 읽었다.

“정부는 안면 인식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스텔스 가면을 금지시키려 했지만 문화예술계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문화가 꽃필 수 있었던 이유는 가면무도회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논리에 정부는 대항할 수 없었다. 문화를 짓밟는 정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네는 이번 정부 조처를 어떻게 생각하나?” 

남성은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이 질문에 멋있게 대답하면 다음 달에 승진할 가능성이 있다. 

“옛날에는 하루에 가면 하나로 보냈다는데 지금은 하루에 백 개로도 버티기 어렵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가면을 넣고 다닐 커다란 가방이 필요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새로운 상품으로 빅 사이즈 가방을 개발해야 합니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야.”

부장은 기뻐하며 아이디어를 칭찬하더니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쓰고 있던 사람 얼굴 가면 좀 빌려줄 수 있겠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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