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노래에 반응할까?
“스파이는 자백을 했나?”
사령관이 물었지만 수사관은 대답할 말이 없다.
“죄송합니다. 아직 아무런 자백이 없습니다.”
“스파이를 잡아다가 취조한 지 벌써 이틀이 지났는데 아직 아무런 비밀도 자백하지 않았다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사령관은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스파이를 힘들여 잡았는데 아무 자백을 얻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한 낭패는 없다.
자백을 받아야 작전을 수정할지 수행할지 결정할 수 있다.
“스파이는 고도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강요해도 자백을 하지 않습니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수사관이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스파이는 고문에 견디는 훈련을 했으니까 물고문도 소용없겠지. 전기고문도 소용없을 테고. 가족은 어때? 스파이는 가족이 없으니까 아이를 데려오겠다는 협박도 통하지 않겠군. 도대체 어떤 방법을 써야 자백을 할까?”
사령관은 고민하다가 심리학자에게 상담했다.
“스파이를 자백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을 쓰면 좋겠습니까?”
“스파이도 결국 사람이니까 사람의 특성을 아셔야 합니다. 사면이 벽으로 갇힌 취조실에 있으면 누구라도 긴장하게 됩니다. 긴장하면 말을 쉽게 하지 못하고요. 스파이를 넓고 경치 좋은 방으로 이동시키세요.”
사령관은 심리학자의 말대로 스파이를 다른 방으로 이동시켰다. 도시에서 가장 좋은 호텔의 최상층에 있는 프레지덴셜 룸을 취조 실용으로 대여했다. 평소에는 외국 대통령이 방문하면 묶는 방이다. 룸에는 침실이 세 개 있으며 넓은 거실에는 푹신한 소파가 있다. 커다란 창밖으로는 멀리 바다가 보인다. 시선을 아래로 두면 잔디밭이 넓게 보인다. 햇살이 좋은 날 밖을 쳐다보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여기서 편안하게 머무르면서 자백을 하게. 어차피 자백할 거라면 빨리 자백해야 당신이나 나나 좀 쉴 거 아닌가.”
수사관은 스파이에게 소파를 권하며 자백을 유도했다. 스파이는 소파에 깊숙이 앉았다. 편안한 자세가 되니 스파이 얼굴에 약간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이틀이 더 지나도 스파이는 전혀 자백하지 않았다.
사령관은 심리학자에게 상담했다.
“스파이를 넓은 거실에서 취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백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백하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배가 부르면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스파이에게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이세요.”
수사관은 스파이에게 산해진미를 제공했다. 스파이는 와인까지 한 잔 곁들여 배부르게 식사했다. 배가 부른 스파이는 소파에 길게 누웠다.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 스파이는 전혀 자백하지 않았다.
“역시 학자들은 이론만 아는구나. 현실을 잘 아는 사람을 불러야겠다.”
사령관은 경력 40년의 최고참 수사관을 불렀다.
“이번 스파이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고수야. 심리학자가 말하는 대로 넓은 거실로 이동시키고 맛있는 음식도 무한정 제공했지만 전혀 자백하지 않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고참 수사관은 덤덤한 표정으로 답했다.
“스파이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기 때문에 외적 요인에는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취조실을 거실로 이동한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제공한다고 해서 스파이가 자백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적 요인에 자극을 주어야 합니다.”
사령관은 소리를 낮춰 물었다.
“내적 요인이라면 예를 들어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거나 노래를 들려주어서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노래?”
“그렇습니다. 노래를 들려주는 방법도 고도의 자극입니다.”
최고참 수사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령관은 급히 수사관을 불러 스파이가 있는 거실에 노래를 틀라고 지시했다.
“어떤 노래를 틀어야 좋겠나?”
사령관이 묻자 최고참 수사관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어릴 적에 듣던 노래가 좋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면 누구나 감성적인 마음이 들기 마련입니다. 감성에 빠지면 금방 자백하게 됩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이런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령관은 옆에 있는 수사관에게 물었다.
“스파이는 몇 살인가?”
“자백을 하지 않으니까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70세는 되었을 걸로 보입니다.”
“그럼 65년 전에 유행했던 동요를 틀어주게.”
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수사관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인터넷에서 65년 전의 동요를 모조리 검색해서 다운로드했다.
거실에는 커다란 스피커가 설치되고 동요가 흘러나왔다. 스파이는 움찔하는 표정을 짓더니 두 눈을 감았다.
“확실히 노래가 효과가 있습니다. 스파이가 감정의 동요를 보이고 있습니다.”
수사관은 계속해서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동요를 이틀 동안 계속해서 틀어주었지만 결국 스파이는 아무 비밀도 자백하지 않았다.
“동요는 너무 어릴 적에 듣던 노래라서 그런가? 어떤 노래가 스파이의 급소를 찌를지 모르니까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틀어봐. 노래를 가장 많이 들을 때는 20대니까 지금부터 50년 전의 노래를 다 틀어.”
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수사관은 50년 전의 노래를 모조리 검색해서 다운로드했다.
먼저 락엔롤을 틀었다. 스파이는 기분이 격렬해졌는지 소파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저러다가 자해라도 하는 거 아니야?”
신경이 쓰인 수사관은 얼른 다른 노래를 틀었다.
스피커에서 리듬 앤 블루스가 나왔다.
스파이는 갑자기 풀 죽은 모습을 보이더니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안 되겠다. 저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
수사관은 얼른 달콤한 연가를 틀었다. 설탕처럼 달콤한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몹시 애절하게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스파이는 창가로 가더니 밖을 쳐다보았다. 허공을 쳐다보는 눈가에 약간 이슬이 맺혔다.
수사관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어때? 노래를 들으니까 좋지?”
스파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당신이 자백하면 이런 노래를 매일 들을 수 있어.”
스파이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수사관은 목소리를 약간 올려서 답했다.
"자백하면 목숨은 보장하겠다."
스파이는 괴로운 얼굴로 겨우 말을 이었다.
"저 노래 좀 꺼."
"역시 노래를 들으니까 마음이 움직이지? 스파이에게도 사람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구먼. "
수사관이 빙그레 웃으며 녹음기를 켰다. 지금부터 하는 자백을 녹취하기 위해서다.
스파이는 두 손으로 귀를 감싸며 외쳤다.
“옛날 노래만 듣고 있으니 듣기 싫어 죽겠어. 제발 최신곡 좀 틀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