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비밀을 알게 된 고객은...
“매니저님, 이 옷에서 단추가 떨어졌는데 어떻게 할까요?”
판매원이 매니저에게 와서 물었다. 왼손에는 옷을 들고 오른손에는 떨어진 단추를 들고 있다.
“단추를 비닐봉투에 넣고 옷에 핀으로 묶으세요. 그리고 가격을 7퍼센트 할인해서 내놓고요. 왜 할인하는지 그 이유도 제대로 써야 합니다. 왜 이 가격인지 고객이 알아야 하니까요.”
매니저는 능숙한 솜씨로 지시하였다.
다른 판매원이 다가왔다. 두 손에 상의와 하의를 각각 들고 있다.
“매니저님, 이 옷은 상의와 하의 모두 먼지가 많이 묻었는데요. 세탁소 가서 세탁하면 깨끗해지겠지만 아직 팔지 않은 옷이라 세탁소 보내기도 어렵고.”
“상의와 하의를 한 벌로 묶고 가격표는 12퍼센트 할인한 값으로 고치세요. 할인하는 이유는 세탁소 가는 비용이라고 잘 적으시고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판매원에게 매니저는 신중한 어투로 설명했다.
“오늘이 우리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첫날이라 잘 모르시죠?”
매니저는 판매원을 매장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똑같은 상품은 가격도 똑같아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세요. 아무리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상품이라 하더라도 하나하나의 상품에는 그 상품만의 스토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스토리가 다르면 가격도 달라져야 합니다.”
“단추가 떨어져도 스토리고 먼지가 묻어도 스토리란 말이죠?”
판매원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사람마다 인상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듯이 똑같이 생긴 상품도 스토리는 모두 다릅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팔아야 합니다.”
“하긴 그렇긴 하네요. 똑같은 상품이라고 똑같은 가격을 받는다는 발상은 어딘가 이상하거든요.”
“어떤 상품은 돈을 더 주고서라도 꼭 사고 싶고, 어떤 상품은 공짜로 줘도 쓰기 싫죠? 바로 이런 마음이 스토리입니다.”
매니저의 설명을 들은 판매원은 크게 감동한 얼굴로 돌아갔다.
이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똑같은 상품이라도 모두 가격이 다르다. 매장에 진열된 상품을 고객이 너무 많이 만졌다면 이 상품은 8퍼센트 할인이다. 상품에 음식이 묻어 있다면 이 상품은 22퍼센트 할인이다.
가격을 할인하는 이유는 모든 고객이 다 알고 있다. 고객은 상품을 고르면서 각 상품에 붙은 스토리를 보고 마음에 들면 구입한다.
주말에 한 부부가 쇼핑을 나왔다. 부부는 남편 양복을 사려는 목적으로 남성복 매장에서 옷을 구경했다. 아내는 열심히 옷을 살펴보고 남편은 멀뚱멀뚱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다. 아내가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았는지 판매원을 불렀다.
“여기 이 옷은 35퍼센트 할인이네요. 왜 이렇게 할인이 커요?”
판매원은 스토리를 보더니 약간 인상을 구겼다.
“아아, 이거요.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지난 주말에 그 정치가가 와서 입어본 옷이거든요. 네. 네. 요즘 국민 밉상으로 미움받는 바로 그 정치가요.”
“그래요? 어떻게 할까? 그 정치가는 밉지만 35퍼센트 할인은 매력적인데.”
부인은 한참 고민하다가 옷을 구입했다.
“당신은 평소에 미운 짓만 골라서 하니까 국민 밉상 정치가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지.”
판매원은 부인에게 넥타이도 권했다.
“이 넥타이는 그 정치가가 만져보고 사지 않은 상품이라서 15퍼센트 할인입니다.”
그러나 부인은 넥타이는 구입하지 않았다.
“미운 짓은 한 번이면 족해요.”
어느 날, 쇼핑을 하던 고객이 셔츠에 붙은 스토리를 보더니 판매원을 불렀다.
“이 셔츠 말이에요, 가격이 왜 10퍼센트 더 비싼 거죠?”
판매원이 스토리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고객님, 어제 저희 매장에 요즘 가장 잘 나가는 탤런트, 그 왜 춤 잘 추고 재미있는... 맞아요. 바로 그분이 왔었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이 옷을 한번 입었다가 벗어놓고 갔어요. 사이즈가 안 맞는다고요.”
“그래요? 그 탤런트가 한번 입었다는 말이죠? 증거 있어요?”
고객은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고객님도 참, 저희를 믿으셔야 죠. 꼭 원하신다면 감시 카메라를 보여드릴게요.”
“아니,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고객은 10퍼센트 할증된 셔츠를 들어서 가슴에 갔다 대었다. 가슴에서 떼더니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두 눈은 꼭 감고 있다.
“이 옷은 제가 꼭 사야 해요.”
고객은 셔츠를 구입하고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고객과 함께 온 친구가 주변에 있는 상품을 구경하다가 판매원을 불렀다.
“이 옷은 더러운데 왜 20퍼센트 할증된 가격인가요?”
고객이 하얀색으로 된 얇은 티셔츠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판매원이 가서 스토리를 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이 티셔츠는 그 탤런트가 수건인 줄 알고 얼굴 땀을 닦은 겁니다.”
“뭐라고요? 얼굴 땀을 닦았다고?”
고객이 놀라며 손으로 티셔츠를 잡으려 하자 판매원이 급히 말렸다.
“고객님, 손으로 만지시면 안 됩니다. 눈으로만 봐주세요.”
“아아, 미안해요. 내가 흥분을 했네.”
고객은 흥분한 표정으로 판매원에게 물어보았다.
“이 티셔츠는 제가 살게요. 그런데 물어볼 게 있어요.”
“이 탤런트가 더럽힌 옷이 또 어디 있냐고요? 그건 대답할 수 없습니다. 모든 고객에게 평등한 기회를 드려야 하거든요. 저희 백화점에서는 고객에게 모든 스토리를 다 알려 드리지 않습니다.”
고객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긴 하죠. 우선 이 티셔츠부터 포장해 주세요. 다른 상품은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볼 테니.”
며칠 후. 춤 잘 추고 재미있는 탤런트가 백화점 사장실에 나타났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테스트 기간 동안 매출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습니다. 이제 정식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시죠.”
사장이 웃으면서 탤런트를 맞이했다. 탤런트는 소파에 앉아 계약서를 확인했다.
“이익의 절반을 탤런트에게 지불한다.”
탤런트는 문장을 소리 내어 읽더니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검은 구두약을 꺼내더니 두 손바닥에 정성스럽게 묻혔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남성복? 여성복?”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