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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Oct 30. 2021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사람을 죽이는 흉기를 찾아라

“현장을 잘 관찰해, 모든 단서는 현장에 있으니까.”

형사반장은 흥분한 표정으로 형사들에게 지시했다. 형사반장도 살인사건은 처음 겪는 일이다. 형사가 된 지 25년째. 지금까지 쭉 강력반에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강력사건과는 거리가 멀었다. 상인들 간의 말싸움을 말리거나 술 취한 샐러리맨을 안전하게 귀가시키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은 완전한 평화마을이다. 사건이라 부를만한 사건이 없다. 형사반장은 과거 한때 형사 드라마를 보면서 동경심을 품기도 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형사반장은 느릿한 걸음으로 현장으로 간다. 모든 수사관이 사건의 단서조차 잡지 못한다. 오직 한 사람, 형사반장만이 현장에서 단서를 발견한다. 예리한 추리를 동원해서 범인을 잡는다.’

멋진 드라마다. 

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30년 이상 살인사건이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형사반장은 자신의 업무가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렸다. 

그런데 오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모든 형사는 처음 겪는 일이라서 우왕좌왕했지만 형사반장은 달랐다. 차기 경찰서장으로 내정된 사람답게 침착하다. 

형사반장은 아주 오래전에 드라마에서 보았던 기억을 더듬었다.

“먼저 흉기를 찾아.”

곁에 있던 형사에게 지시했다.

피해자는 엎드린 자세로 거실에 쓰러져 있다. 뒤통수에는 피가 흥건하다. 사망 원인은 과다출혈이 분명하다. 범인은 피해자 뒤통수에 대고 총을 쏜 모양이다. 

‘총을 찾으면 그다음에는 지문을 검출한다. 지문을 조사하면 누가 총을 쏘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 형사반장은 금방이라도 범인을 잡을듯한 기분이 들었다. 

범인은 전문 킬러임에 분명하다. 현장을 아무리 찾아봐도 흉기가 없다.

“아무래도 이 사건은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군.”

형사반장은 경찰서장에게 전화해서 간략하게 사건을 보고했다.

“우리 마을에 30년 만에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 시작할 때가 어렵지 한번 시작하면 그다음은 쉽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긴 처음이 어렵지.”

경찰서장도 동의했다.

형사반장이 25년 동안 경찰에서 일하면서 얻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며칠 후, 마을에서 두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급소를 찔려 사망했다. 칼로 생각되는 흉기에 찔렸는데 과다출혈이 사망 원인이다. 이번 범행 역시 전문 킬러의 소행임에 분명하다. 형사들이 살인 현장을 수십 번 수색하고 경찰견까지 동원했지만 도대체 흉기를 찾을 수가 없다.

“흉기를 찾지 못하면 범인을 어떻게 잡지?”

형사반장은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범인을 잡지 못하면 형사반장에게 책임을 물을 테고 그러면 다음 달에 경찰서장으로 승진하기 어렵다.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야 한다. 

일주일이 지나도 범인을 잡지 못하자 경찰서장이 형사반장을 추궁했다. 

“왜 아직도 범인을 못 잡나?”

“현재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알리바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전문 킬러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직도 흉기를 찾지 못했습니다.”

형사반장이 굳은 표정으로 답하자 경찰서장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범인을 잡지 못하면 경찰서장은 비난을 받을 테고 비난을 받으면 기관장으로 가기 어렵다. 다음 달에 정년퇴직한 후에 낙하산으로 가기로 한 자리다. 

경찰서장은 형사반장에게 강력하게 지시했다.

“범인은 천천히 잡는다 해도 일단 더 이상의 살인은 막아야 해. 만약 또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자네와 나는 갈 곳이 없어져. 연쇄살인을 막을 아이디어를 가져와.”     

형사반장의 아이디어는 다음날 경찰서 현관에 공고문 형태로 게시되었다. 

‘앞으로 우리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살인에 사용될만한 흉기는 모두 없애야 합니다. 경찰서에서 흉기를 회수할 테니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흉기를 회수한다는 공고에 약간의 반론도 있었다. 그러나 마을에서 살인사건을 없애야 한다는 명분에 시민 모두 동의하였다. 경찰서는 흉기를 없애자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였고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모든 시민은 자발적으로 살인 흉기를 경찰서에 반납하였다. 경찰서에는 시민들이 반납한 총, 칼, 도끼, 낫, 망치가 수북하게 쌓였다.

“이제 우리 마을에서 더 이상 살인사건은 없을 거야.”

모든 시민이 자신들의 행동에 감동하였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이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마을에서 또다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형사반장은 현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마을에는 흉기가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인사건이 일어났지?”

형사반장은 피해자를 세심하게 살폈다. 

피해자는 총을 맞지도 않았고 칼에 찔리지도 않았다. 도끼, 낫, 망치에 의한 살인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마을에는 어느 주민도 흉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모든 단서는 현장에 있다. 현장을 유심하게 살펴보니 한 가지 특이사항이 있기는 하다. 

피해자가 쓰러진 주변에 물이 흥건하다. 물 색깔이 핏빛이다.

“이번 살인사건의 흉기로 사용된 도구는 얼음이 분명하다.”

형사반장은 옆에 있던 형사에게 지시했다.

“피해자 주변에 물이 흥건한데 이 물이야말로 범인이 사용했던 얼음이 녹아내린 증거임에 틀림없어. 이 물을 증거로 확보해.”

형사는 비닐봉지를 가져와서 물을 담았다.

연쇄살인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아연실색했다. 흉기를 다 반납했는데 아직도 마을에 흉기가 남아있었다니. 시민들은 이제부터 얼음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마을에서 총이 사라지고 칼이 사라지고 얼음도 사라졌다. 살인사건에 사용될만한 흉기는 하나도 남아서는 안 된다. 

마을에서 얼음이 사라지자 큰 고통이 따라왔다. 총과 칼이 사라진 고통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크다. 아무리 더워도 얼음이 없으니 고스란히 더위를 느껴야 한다. 더위를 느끼면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시민들은 사소한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제도 그랬다. 마을 사람 두 사람이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하다가 한 사람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가해자 말이 너무 과격했다는 주장도 있고 숨진 사람이 원래 심장이 약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형사반장에게는 큰 교훈이 되었다. 

“음, 흉기 리스트에서 이걸 빠트렸구나. 이것도 리스트에 넣어야겠다.”

다음 날, 경찰서 현관에 공고문이 붙었다.

“말이 곧 흉기입니다. 이제부터 말하기를 금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연쇄살인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시민이 경찰서의 조치에 동의하였다.   

마을에서는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을은 적막에 쌓였다.

모든 흉기를 금지하고 한 달이 지났다. 살인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계속 죽었다. 죽은 사람들의 사망 원인은 모두 똑같았다. 그것은...

고독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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