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 돈 줘
식당에 갔는데 모르는 노인이 다가와...
“형사님,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제가 잘못한 죄라면 이 물건을, 아니 이걸, 아니...”
남성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노인을 쳐다보았지만 화가 나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봐요,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세요.”
형사는 근엄한 표정으로 남성에게 주의를 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하도 속이 터져서 표현이 이상하게 나왔습니다. 아무튼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형사는 노인을 쳐다보았다.
노인은 형사와 눈이 마주치자 “배고파, 돈 줘”라고 말했다.
“배고파요?”
형사가 묻자 노인은 형사를 쳐다보며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배고파, 돈 줘.”
“이것 좀 보세요, 계속 돈 달라는 말만 한다니까요.”
남성은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니까 뭐가 어떻게 억울하다는 겁니까?”
형사는 종이와 펜을 들어 보였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제대로 잘 적을 테니 하나도 빠짐없이 다 밝히라는 표현이다.
“제가 이 노인을 처음 만난 건 한 달 전이었습니다.”
형사는 종이에 적었다. ‘만난 건 한 달 전’
남성은 종이에 적은 걸 보더니 손가락으로 종이를 짚었다.
“제가 만난 게 한 달 전이 아니라 처음 만난 게 한 달 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요? 처음 만난 게 한 달 전이라는 이야기는 다시 만난 건 최근이라는 말입니까?”
형사가 날카롭게 물어보자 남성은 “네,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한 달 전에 저 노인이 우리 식당에 왔습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저 노인은 우리 식당에 오더니 손님들 식사하는 테이블을 돌면서 계속 같은 말만 하는 겁니다.”
“돈 달라고?”
“아닙니다. 배고파. 밥 줘.”
형사가 고개를 돌려 노인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래서 손님들이 밥을 사줬습니까?”
“아닙니다. 요즘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옛날에는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드니까 밥 사 주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밥을 사줍니까?”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당연히 내 쫒았지요. 식당 분위기가 얼마나 안 좋아지는지 아십니까? 안 그래도 요즘 장사가 안돼서 죽을 지경인데...”
남성은 죽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한 달 전이라는 말씀이네요? 그렇다면 그다음에 만난 건 언제입니까?”
“3일 전입니다. 저 노인이 다시 우리 식당에 나타난 겁니다.”
“또 밥 사달라고 하던가요?”
“식당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들어왔기 때문에 마침 손님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밥 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사실 한 달 전에 저 노인을 내 쫒고 나서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나도 살고 저 노인도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괜히 성급하게 내쫓았구나 하고.”
남성의 표정에 약간 여유가 생겼다.
“후회를 하던 참에 다시 나타나니까 좋았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저 노인의 가치를 알아봤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래 봬도 사업수완은 있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사업에 써먹었다는 말이네요?”
“상부상조하는 거죠. 저는 돈을 벌고 저 노인은 돈을 받고.”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보세요.”
형사는 의자를 앞으로 당겨 남성에게 가깝게 다가갔다.
형사의 본능이 움직였다.
‘바로 이 부분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핵심을 파악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앞뒤가 맞춰진다.’ 30년 형사 생활에서 얻은 지혜다.
‘요즘 신입형사들은 이런 감이 없단 말이야. 데이터만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니, 쯧쯧.’
형사는 잠시 신입형사들이 생각났지만 곧 이번 사건에 집중했다.
“저에게 아주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 노인에게 훈련을 시키자는 생각요. 일종의 직업훈련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하하.”
남성은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아이디어가 대견한 모양이다. 좀 전까지 반성하던 기미를 보이던 남성은 갑자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대단한 사업가의 웃음이다. 옆자리에 있던 노인이 놀랐는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배고파, 돈 줘.”
형사는 손을 들어 노인을 진정시켰다. 다행히 노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웃지 말고 그다음을 설명하세요.”
형사가 인상을 쓰자 그때야 상황 파악이 되었는지 남성이 다시 풀 죽은 목소리로 진술했다.
“아아, 치매구나. 그러니까 같은 말만 계속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치매를 낫게 한다는 말입니까?”
“아아 참, 형사님도. 한번 치매가 된 걸 어떻게 원래대로 되돌립니까?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표현에 주의하세요.”
“앗, 죄송합니다.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남성은 노인을 힐끔 쳐다보며 급히 사죄하였다. 별로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했습니까?”
형사가 말을 재촉하였다.
“치매니까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지만 단어 하나 바꾸는 정도면 수정이 가능하거든요.”
“수정한다고?”
“그렇죠. 이제야 조금 이해하시네요.”
남성은 우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는 ‘배고파, 밥 줘’라고 말하던 걸 단어를 약간 바꾸었습니다. ‘배고파, 돈 줘’로.”
“그렇게 바꾸니까 바꿔졌다는 말입니까?”
“아이고, 그렇게 바꾸는데 3일이나 걸렸습니다. 제 입이 다 부르텄습니다.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고.”
“결국 바꾸었네요?”
“제가 또 한다면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상부상조했습니까?”
형사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식당에 오는 모든 사람에게 ‘배고파, 돈 줘’라고 말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귀찮으니까 한 푼씩 주더라고요. 하하하. 다들 밥은 안 사줘도 돈은 한 푼 주니까요. 돈 줄 테니 저리로 꺼지라는 말이죠. 참 냉정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왜 저 모양입니까? 돈을 잘 받아오는데?”
형사는 펜을 들어 노인의 눈동자 주변을 가리켰다. 몽둥이로 맞은 자국이 선명하다.
“저놈의 치매 로봇이 돈을 어디다 숨겼는지 끝까지 말을 안 하니까요.”
남성이 화난 목소리로 답했다.
형사는 종이에 남성의 용의를 적었다.
“로봇권 2조 3항 로봇 데이터 무단 수정. 3조 8항 로봇 노동 무단 착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