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뉴저지를 벗어나서 뉴욕주를 달리고 있었다.
한 시간만 더 가면 아들이 다니게 될 대학교에 도착할 것이었다. 트렁크에는 옷가지가 든 가방과 진드기를 막아준다는 이불 세트가 실려 있었다. 상표도 떼지 않은 채로였다.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출발하기 며칠 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물건들이었다.
준이는 네 곳의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아 놓고 미적대며 결정을 미뤘었다. 뉴저지에 있는 대학에 갈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있던 기숙 씨는 아이가 150마일이나 떨어진 뉴욕의 주립대학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급히 짐을 싸느라 법석을 떨었었다.
“아, 난 죽으러 가는구나.”
준이 혼잣말을 하자 기숙 씨는 아들의 눈치를 봤다. 자꾸 눈치를 살피게 되는 그녀였지만 죽으러 간다는 말에는 발끈해져서 안 해도 될 말이 튀어나왔다.
“그 비싼 등록금을 내고 뭘 죽으러 가. 가지를 말던지.”
하다가 정말로 안 간다고 할까 봐 황급히 말을 돌렸다.
“전자레인지로 돌릴 때는 비닐은 꼭 벗기고, 알았지? 냉동실에서 미리 내놓으면 좋은데.”
뒷 좌석에 실은 아이스박스에는 한국 음식이 들어 있었다. 간장 불고기도 있고, 뼈를 발라낸 엘에이 갈비찜도 있고, 스팸을 넣은 김치볶음밥과 매운 삼겹살도 들어 있었다. 그녀는 이 음식들을 한 번씩 먹기 좋게 비닐에 나눈 다음 쫑쫑 비틀어 쫌매서 얼렸다.
“불고기같이 안 매운 건 룸메랑 같이 먹고.”
이 말을 해놓고 그녀는 또 아들의 눈치를 얼른 살폈다.
기숙 씨도 안다. 룸메이트가 기숙사 방에 앉아서 아들과 함께 얼렸다 녹인 불고기를 나눠 먹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식당 밥도 부지런히 먹어. 밀플랜으로 돈을 미리 내놨으니까."
돈 얘기가 나오면 아들은 웬만하면 대꾸를 해 준다. 없는 돈에 어렵게 비싼 등록금을 내고 미국 대학을 보내는 엄마에 대한 일종의 예의였다. 없는 돈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라도 미국 대학을 가야 한다고 우긴 건 그녀였다. 준은 대학만큼은 한국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무도 등 떠밀어 주지 않는데 혼자 기를 쓴다고 될만한 일이 아니었다.
“매일 카페테리아에 가기는 하는데 둘러보면 먹을 만한 게 없다니까? 그래도 가기는 해야지. 돈을 미리 다 내놨으니까.”
준은 미국식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내내 도시락을 싸 가지고 학교를 다녔다. 음식이 아니라도 처음부터 미국 생활이 쉽지 않은 아이였다.
그녀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듯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곧게 뚫린 아스팔트 도로가 폭염을 피하지 못하고 끓어오르는 8월의 마지막 주였다. 그러나 금세 넘칠 것처럼 부글대던 시간도 끝내 지나갈 것임을 그녀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엿가락 같이 늘어지던 준이의 마음도 다시 단단해질 테고 대학에 적응도 하게 될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자 내내 쪼그라져 있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졌다.
그녀는 이제 한국인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대학 기숙사 앞에 아이를 내려놓고 꽁꽁 얼린 한국 음식 몇 봉지를 쥐어준 후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