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음 Oct 24. 2024

올드패션드 베이커리

 미북부 뉴저지 글랜데일의 다운타운에는 두 개의 기차역이 있다. 

맨해튼의 펜스테이션에서 들어오는 기차와 뉴저지의 호보큰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시카쿠스에서 만났다가 글랜데일에서 다시 나누어졌다. 작은 타운이었지만 주의 관문이라 할만한 위치였다. 기숙 씨는 글렌데일의 두 개의 기차역 사이에서 에서 베이커리를 하고 있었다.

제법 구색을 갖춘 다운타운에는 드레스를 지어 파는 양장점이 있고, 타번이라고 부르는 선술집이 딸린 오래된 여인숙이 있고, 그 옆에 그녀의 베이커리가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삼 년째 퍼널 케이크와 우유를 졸여서 부은 홍차를 팔고 있었다. 


 가게 문 위에는 별 고민 없이 지어 붙인 것이 분명해 보이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처음에는 한글로 ‘숙’이라고 썼다가 얼마 후 미국인들이 부르는 대로 ‘SUKI’라고 덧써넣었다. 그러다 작년 겨울 눈폭풍과 함께 날아간 간판을 새로 달며 ‘Oldfashioned Bakery’라고 쓴 필기체를 더하면서 지금의 복잡한 간판이 완성되었다. 삼 년의 세월치고는 관록이 있어 보이는 간판이었다.


 올드패션드 베이커리의 손님은 주로 지역의 할아버지들이었다. 

글랜데일의 많이 늙은 노인들은 종일 큰 창 앞에 앉아서 바깥을 염탐하며 경찰에 전화를 하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911에 전화를 걸어 옆집 개가 뒷집 마당에 들어갔다거나, 새로 이사 온 집에 아이들만 있는 것 같다고 신고하고 경찰이 올 때까지 시간을 쟀다. 경찰은 그때마다 빠짐없이 출동을 해서 뒷집 마당에 옆집 개가 있나 살피고, 새로 이사 온 집에 아이들만 있는지 둘러보고는 노인들의 집에 들러 대화를 나누다 돌아갔다.

베이커리의 주 고객은 이들보다 덜 늙은 노인들 중 특히 할아버지들이었다. 이들은 소방서나 타운홀, 에듀케이션센터 같은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타운 도서관에 모였다. 이 할아버지들이 오후 4시쯤이면 베이커리로 와서 케이크를 먹거나, 케이크 없이 차를 먹거나, 차도 케이크도 없이 훈훈한 공기를 먹었다. 

할아버지들은 유쾌한 걸음으로 당당하게 들어와서 유리 진열대 옆으로 난 바에 걸터앉으며,

“헤이, 수키 오늘은 어땠어?”

하는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시작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척 인생을 마무리하며 서로 유언 같은 대화를 나누다가 내일을 기약하지 않고 흩어졌다. 


처음 베이커리를 열었을 때 이 할아버지들은, 아무렇게나 짜서 꽈배기처럼 튀겨낸 빵에 크림이나 파우더 슈가, 시나몬 등을 얹어주는 퍼널 케이크를 받아 들고는,

“이거 흥미로운데?”

하고 말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이 케이크에 얽힌 이야기들을 수줍게 혹은 호탕하게 풀어내는 것이었다. 

색색의 크림을 얹어달라고 한 노인은 카니발이나 프롬 파티 얘기를 했고 파우더 슈가를 뿌려 달라고 한 노인은 자신의 웨딩을 떠올렸다. 그들은 이미 프롬 파티에서 푸른 힘줄이 불끈 솟은 팔로 데이트의 허리를 두르던 열아홉의 소년이었고, 한쪽 무릎을 꿇고 피앙세에게 반지를 내밀던 꿈이 짱짱한 청년이었다. 

이 이야기를 할 때 노인들은 정수리로부터 늙음이 당당히 흘러내려서, 한껏 부풀린 어깨 위로 푸른 산의 만년설봉처럼 늠름하였다. 


이 할아버지들이 그녀의 가게를 올드패션드 베이커리라고 불렀다.

이전 01화 8월의 마지막 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