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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Oct 13. 2023

Les îles

기숙 씨가 용의 집에 첫인사를 간 것은 취업이 되고 나서였다

일찍 혼자된 그녀의 엄마는 서울 변두리의 언덕배기 시장 초입 코너에서 양장점을 하셨다. 시장 덕을 보면서도 초입 코너라는 구실로 시장통 양장점은 아니라고 우길 수 있는 입지였다. 

그녀는 양장점 대신 부띠끄라는 간판을 달고 고급 양장 맞춤집으로 콘셉을 잡았다. 봄이 되면 신학기를 맞은 여대생들과 사회 초년생들이 정장을 맞춰 입으러 왔다. 

철 따라 양장을 해 입는 부인네들도 있어서 꽤 되는 장사였지만 기성복 붐이 일어나면서 대학 등록금 걱정을 해야 할 만큼 살림이 어려워졌다. 

세상을 떠나시기 전까지 그녀의 엄마는 언덕배기 시장 수선집에서 기술자로 일했다. 


아버지가 대기업의 간부인 그의 집에 비해 기우는 형편 때문에 그녀는 인사를 취업 후로 미루고 있었다. 열어둘수록 빚만 느는 양장점도 폐업을 하지 못하시게 했다. 적어도 사돈 될 자리가 부띠끄 사장이라는 직함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양장점을 양장점이라고 안 하고 부띠끄라고 한 엄마의 선견지명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기숙 씨였다. 


용이의 집은 강남의 유명한 아파트였다. 

맞으러 나온 그의 어머니는 한 벌로 된 꽃무늬 홈드레스를 입고 레이스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치마는 그냥 시늉이었는지 음식 준비는 도우미 두 분이 하고 계셨다. 

아버지와 여동생과 인사를 나누고 주방 쪽을 향해 도우미께도 인사드리자 어머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주머니들은 인사를 받고도 모르는 척 일만 하고 계셨다. 

식사는 정갈했고 심심했고 양이 적었다. 도우미가 두 분이나 왜 필요한 지 궁금할 정도였다. 어머니는 쉼 없이 해파리 한 가락, 무순 한 줄기, 말린 해삼 한 편을 개인 접시에 덜어 아버지 앞으로도 놔드리고 기숙 씨 앞으로도 놔주고 하셨다. 차린 것도 없고 먹은 것도 없이 젓가락질만 분주한 식사였다. 


차를 마시며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니 회사도 기업혁명하고 있냐? 하고 물으셨을 때 그녀는 자신이 낄 수 있는 대화가 나온 것이 반가웠다. 

그의 어머니가 엄마의 부띠끄 얘기를 막 꺼내신 참이기도 했다. 과한 존칭을 섞어가며 상호가 어떻게 되시냐, 어디에 있으시냐까지 물으셨고 이대로라면 한 번 들르시겠노라고 말씀하실 차례였다. 기숙 씨는 이 이야기의 흐름이 끊긴 것에 안도했다.

리엔지니어링 기업혁명은 9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기업의 생존전략으로 한국에도 그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녀가 근무하는 대학 병원도 세미나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 분야였다.

대화에 끼어들 틈을 찾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꽃무늬가 화려한 잔을 들며 비밀 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굽혀 말을 걸었다.

“얘, 이 잔 예쁘니?”

“네?”

워낙 작은 목소리라 기숙 씨도 그녀 쪽으로 몸을 굽혀 되물었다.

“이건 노리다께야.”

“아, 노..리다께요.”

“요기 자잘한 꽃이 좀 화려해 보이니? 넌 어느 취향인지 모르겠구나.”

“네 좀 화려한 거 같기도….”

“그래? 그럼 아가씨들은 가벼운 걸 좋아하니까 포트메리안보다는 로열 쪽이 좋은데 좀 무리지?”

아버지와 용의 대화는 주식 동향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가 가리키는 접시의 꽃무늬를 보느라 기숙 씨의 몸은 더 굽혀지고 목소리는 더 잦아들고 있었다. 마치 남자들의 대화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어머니는 더 자근자근한 목소리를 냈다. 

시종일관 무례하지 않을 정도로만 그녀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여동생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없었다. 

덕분에 심각한 표정으로 꼿꼿하게 앉아 경제 이야기를 나누는 남자 무리와 꽃 잔을 든 채 소곤거리며 그릇 얘기를 나누는 여인 무리의 이분적 그림이 완성되었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하신 분이라 좀 그런 면이 있으시지. 뭐랄까 돈을 버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신달까.”

나중에 이 그림에 대해 물었을 때 용이 말했다. 자수성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때였다. 한 자리하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수성가를 주장하는 통에 진짜 혈혈단신으로 일가 정도 이룬 사람들은 명함도 못 내밀었다. 

들은 바로는 그의 아버지도 자수성가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좋은 가정에서 나서 좋은 교육을 받은 축에 속했는데 어떤 면에서 자수성가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이분적 그림과 아버지의 자수성가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그것도 의아했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세련됐다고 여기시는 분이셨다. 그러니까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나름 배려라고 하시는 일의 결과는 생각하지 않는 분이셨다.

“얘, 명절이라고 시댁 와서 자고 이런 거 안 해도 돼. 우리 각자 음식 몇 가지씩 해서 당일에 모이자. 정이 너도 한 두 개 맡아.”

시댁이 캐나다라 친정에서 명절은 보내는 시누이도 똑같이 대하는 척했으나 그녀는 대답만 네, 하고는 매번 십만 원을 들고 빈 손으로 왔다. 

그렇게 몇 해 지나자 시어머니는,

“얘, 이제 준이도 있고 음식 나르기가 어렵지? 국물 있는 거 들고 다니다가 애 델라. 우리가 네 집으로 가는 게 도와주는 거지.”

그렇게 명절 상은 기숙 씨 차지가 되었고 아무도 음식을 해오지 않게 됐다. 


용이는 만고에 걱정이 없는 천하태평 왕자님이었다. 그녀가 직장을 다니며 아이 둘을 낳는 동안 그는 세컨카로 뚜껑이 열리는 차를 사서 여름에는 수상 스키를 타러 갔고 겨울에는 보드를 타러 갔다. 

생활비를 가져오고, 가끔 퇴근 후 아이들을 찾아오고, 재롱잔치에 참석했지만 그는 거기까지 하고 나면 할 일은 다 했다는 듯이 밤만 되면 나갔다. 

말을 하고 나가는 날도 있고 깨보니 없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나간 채로 며칠을 안 들어오기도 했다. 그런 날은 친구들한테 끌려서 스키장까지 오게 됐노라고 연락은 꼭 왔다. 동료들과 호텔 방을 잡아서 밤새 포커를 치기도 했다. 

수상스키 동호회 회원이라며 여자들이 아파트 앞까지 온 적도 있었다. 여자들은 붙임성 있게 호호하는 웃음을 웃으며 친한 척을 했다,

“안녕하세요. 오빠 부인 이시죠. 들은 대로 미인이시네요.”

하면서 그녀는 타 본 적이 없는 용이의 뚜껑 열리는 차에 올라 또 그 호호거리는 웃음을 웃었었다,

“언니도 같이 가세요.”

그러면 용이가,

“당신도 갈 테야? 애들은 장모님한테 잠깐 맡기지?”

했다. 그녀는 손을 흔드는 여자들을 태우고 사라지는 그의 뚜껑 열린 차를 바라보고 서있어야 했다.

그는 항상, 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라는 말로 그녀를 의부증 있는 여자인 것처럼 말했다.

“당신도 하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냐. 내가 애들 봐줄 테니까 당신도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무리 이건 아니라고 말해도 남편은 벽이었다. 이 푼수끼 있는 왕자님은 다른 사람의 생각 같은 건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의무를 다 하고 있는데 뭐가 잘못 됐다는 건지 정말로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십이 넘으면서 그도 늙어 갔고 여전히 나잇값을 못하고 있었다. 구레나룻이 희끗 해지고 배가 나오기 시작하는데도 보드를 옆구리에 낀 채 스포츠카를 타고 나서는 그의 모습은 비루하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했다. 

외박을 해도 전화를 하지 않게 되었고 언제부턴가, 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인생의 황금 같았던 풋풋한 시절을 함께 사랑한 눈빛이 어질고 형형했던 젊은이가 추잡한 중늙은이로 늙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었다. 


기숙 씨는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숫가에서 그녀의 손을 으스러지도록 잡았던 그의 행동이 정말 고백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였을까를 매일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 밤 지들은 모른다고 했던 그의 섬으로 떠난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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