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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Oct 13. 2023

파티 애니멀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학에 갔던 아이들이 돌아오자 다운타운은 모처럼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준이도 집으로 돌아왔다. 

준이는 더욱 열심을 낸 트레이닝의 결과로 팔다리에 근육이 붙고 가슴팍은 더 단단해져 있었다. 없는 살집에 근육까지 만들어 내느라 몸이 고생한 티가 확 났다. 자기 말로는 식당 밥을 먹었다고 하지만 얼려 보낸 음식만 아껴 먹은 게 분명해 보이는 몰골이었다.

 

날이 점점 추워지더니 집에 도착할 때쯤 싸라기눈이 내렸다.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마을 사람들은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 운동장으로 모였다. 풋볼 시즌이 한창이었다. 

준이 마침 홈게임으로 열리는 풋볼을 보러 가겠다고 해서 기숙 씨는 학교 주차장에 차를 댔다. 오랜 라이벌인 램지와의 경기였다. 전적으로 한 번 이기고 한 번 져서 성적과 상관없이 중요한 게임이라고 했다. 


풋볼 필드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고 함성을 지르며 입장하는 선수들의 입에서는 하얀 김이 펄펄 나왔다. 풋볼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이라 하이스쿨 경기에도 입장료를 받았다. 치어리더인 윤이는 경기 중에는 오빠가 있는 자리로 와서 뭔가 긴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속닥댔다. 니나 얘기도 하고 11학년 댄스파티 얘기도 하는 듯했다. 경기는 램지의 승리였다. 끝나자마자 기숙 씨네는 길이 막히기 전에 먼저 빠져나왔다. 


남매는 11학년 댄스파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뭐든 파티는 안 가는 게 좋아. 너도 대학에 가면 알게 돼. 그냥… 쓰레기야.”

준이 말했다. 그냥이라는 단어 뒤에 잠시 생각하다가, 이만한 표현은 없다는 듯이 마침내 찾아낸 단어가 쓰레기인 듯했다. 이 단어의 극단성이 주는 모멸감이 부아를 건드렸는지 윤이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오빤 프롬 갔으면서 나한테는 왜 가지 말라고 하는 건데?”

준이는 세 과목을 함께 듣는 같은 학년 여자아이와 함께 갔었다. 러브 액추어리에 나오는 스케치북 프러포즈를 했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많이 쓰는 무난한 방법이라고 했다.

“시니어 프롬만 가고 그걸로 끝 하라고. 주니어 프롬까지 뭘 가. 꼭 파티… 좋아하는 사람 같잖아.”

기숙 씨는 그가 '파티 애니멀'이라고 하려 했다가 말을 바꾼 것임을 금방 알아챘다. 

욕된 말은 아니었으나 무슨무슨 충으로 불리는 것 같은 비하감이 윤이의 심기를 더 건드리겠다 싶었을 것이다. 그녀가 알아챈 것을 윤이가 몰랐을 리 없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아이가 캐듯이 물었다.

“오빠 파티 다음에 뭐라고 하려고 그랬어?”

“대학에 파티 문화라는 게 있거든? 거기 한 번 가보면 나처럼 생각하게 돼.”

준이가 딴소리를 했다

“오빠 갔었어?”

윤이가 놀라서 되물었다. 말없이 운전만 하던 기숙 씨도 귀가 쫑긋해졌다. 

미국 대학의 파티 문화는 비밀도 아니었다. 준이의 학교처럼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대학은 더 심했다.

“룸메가 데려가 줘서 한 번 갔었어. 얘가 인싸라 선배들이 불러 준 건데 같이 가겠냐고 물어 보더라고.”

“무조건 가야지. 몰라서 못 간다는데.”

“금요일 저녁에 걔 선배가 가라는 데로 갔더니 애들이 엄청 모여 있더라고. 버스에 무조건 타는데 돈도 안 내는 거 같더라. 내는 건가? 몰라 난 안 냈어. 어쨌든 도미토리 타운에서 내리는데 거기가 다 파티 장소라고 생각하면 돼.”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면 된다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초대를 받아야 하고 5불을 내야 돼. 프레시맨은 뒷문으로만 들어갈 수 있어서 거기 돈 받는 선배가 있다고 하더라고. 우리는 늦게 간 바람에 다 취해서 막 들여보내 줬지만.”

“거기서 뭐 해?”

“아, 말로 다 못하지. 술에, 마리화나에, 방마다 커플로 꽉 차고."

“그러고는 안 갔어?”

“어. 아는 애도 없고 해서 그날도 먼저 나왔어. 룸메는 벌써 사라지고 없고. 하, 애들 음주운전 완전.”

준이 진저리를 치는 시늉을 했다.

“근데 내가 쓰레기라고 생각한 게 그 다음 주야."

 

"룸메는 또 파티에 가고, 얜 뭐 평일에도 가더만."

준이가 말을 이었다.

"하여간 새벽에 이 녀석이 언 놈을 들쳐업고 왔더라고. 이 놈이 완전 꽐라가 돼서 우는데 들어 보니까 새로 사귄 여친이랑 파티에 간 거야. 얘가 취해서 가려고 보니까 지 여친이 없는 거라. 어찌어찌 찾긴 했는데 여자가 더 취해서는 안 간다고 버티니까 그냥 두고 와버린 거지.”

“헐, 그렇다고 그냥 와?”

“얘도 엄청 취해서 지 몸도 못 가누더라고”

“파트너 데려갔으면 그렇게 취하면 안 되지.”

“아무튼 술이 좀 깨고 나니까 버리고 온 지 여친이 생각난 거야. 엉엉 울다가 다시 데리러 간다고 난린데.”

“그 때라도 가야지.”

“내가 진짜 쓰레기라고 느낀 게 그 때야. 거기 모인 애들 반응이 지금 가도 니 여친은 이미 끝났다는 거더라고.”

“뭐야, 그게….”

윤이는 심각한 얼굴로 오빠를 봤지만 준이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게 안 맞는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공식적인 거 아니면 안 가는 걸 추천해. 이게 습관이라 가는 놈은 욕하면서 또 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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