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 씨는 제이콥과는 초면이었다.
처음에는 제이콥이 누군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이가 '저 제이콥인데요.'라고 했을 때 하마터면 경찰에게 그냥 데려가라고 할 뻔했다. 경찰의 출현과 그녀의 모르쇠에 다급했는지 '저 성식이라고요.'라며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했다.
아, 성식이…. 그게 누구였더라. 아이가 하도 당당하게 그녀가 저를 아노라고 주장하고 있어서 일단 안다 치더라도, 이 제이콥이라고 부르는 성식이가 어쩌다가 그녀의 집 다락방에 숨어들게 됐는지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이는 이름을 두 개나 밝혔는데도 그녀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경찰을 돌려보내지 않자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엄마 이름이 조은영이에요”
아, 그랬다. 은영 씨 아들의 이름이 성식이라고 했다.
그녀의 집 다락방에 숨어 있던 이 제이콥이라고 하는 성식이는 제퍼슨 하이스쿨에 다닌다는 은영 씨의 아들 그 성식이었던 것이다.
기숙 씨는 일단 경찰을 돌려보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이를 신고한 사람은 건넛 집에 사는 많이 늙은 노인인 마샤 할머니였다. 그녀는 그날도 창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바깥을 염탐하고 있었다.
성식이가 다락방에 가만히 있었다면 마샤할머니의 눈에 띄지 않았을 테지만 마리화나를 피우기 위해 박공지붕의 처마 밑으로 난 작은 창문을 열었던 모양이었다.
마샤할머니는 맞은편 집의 다락 창문에 까만 머리통 하나가 보이고 곧이어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새어 나오는 장면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어쩌면 911에 생중계를 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러니까 기숙 씨가 스컹크라고 생각했던 그 냄새는 성식이가 피운 마리화나 냄새였던 것이다.
연락을 받은 은영 씨는 아들의 소재에 대해 별 안도의 기색은 없고 다만 미안하다고 했다. 기숙 씨의 지레짐작처럼 가출을 한 것은 아닌 듯했다. 영문을 모르겠는 기숙 씨와는 달리 다 안다는 듯이 '언니 하고 윤이한테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길 뚫릴 때까지만 데리고 있어 줘요.
마리화나 얘기는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은영 씨의 목소리가 체념과 슬픔이 반씩 섞여서 벌써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숙 씨는 그러마 하고 그냥 전화를 끊었다.
윤이가 돌아왔다. 다시 내리기 시작해서 새로 쌓인 눈 위를 휘적휘적 걸어왔을 것이다. 급하게 참치캔으로 김치찌개를 끓이고 계란 프라이를 해서 성식이 밥부터 먹이고 난 다음이었다. 아이는 입이 짧은지 한나절을 굶었을 텐데도 밥 한 공기를 먹다 말았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워서였을까, 윤이의 부츠 뒤꿈치에 눈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기숙 씨는 윤이에게 성식이가 들켰노라고 미리 문자로 알려 놓았었다.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기숙 씨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성식이가 먼저 답을 했다. 나름 윤이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원래는 빨리 가려고 했는데 눈 때문에 길이 닫았어요.”
한국말이 서툰 데다 잠이 덜 깬 것 같은 느리고 어눌한 말씨였다. 마약 하는 애들이 그렇게 존대, 하던 윤이의 말이 떠올랐다. 윤이가 답답한지 말을 받았다
“우리 동네에 온 게 아니고 피어슨에 왔다가 길이 막혔나 봐. 여기가 더 가까우니까 어젯밤에 전화를 했더라고. 거기가 좀 위험한 동네잖아. 어떻게든 걸어서라도 빠져만 나오라고 했어.”
윤이가 엄마 눈치를 보느라 잠깐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벗어나기만 하면 엄마한테 말해서 데리러 가겠다고. 그랬더니 할증료를 내면 아직 우버가 있다고 하면서 주소만 달라고 해서.”
아이가 다시 눈치를 살피고 말했다.’
“그렇게 새벽에 온 거야.”
윤이가 설명하는 동안 성식이는 눈을 내리 깔고 앉아 있었다. 속눈썹이 길고 숱이 많은 소눈을 한 아이였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고 아무리 위험한 동네라도 기숙 씨가 알았다면 갔을 것이었다. 눈길을 헤쳐서라도 갔어야 했다. 그러나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피어슨에 왔었다는 사실만으로 은영 씨처럼 저절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피어슨은 북부 뉴저지에 마약을 대는 도시다. 노숙인들이 많아서 낮에도 안심하고 다닐 수 없다고 했다. 아이들이 선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햄버거 봉사를 했었는데 피어슨은 성인 보호자가 반드시 동행해야 하는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성식이가 거기까지 가서 마리화나를 샀다면 공급책 정도는 될 것이었다.
그녀는 은영 씨를 떠올리자 목이 막혔다. 이 아이는 어쩌자고 저런 눈을 하고서는 영혼을 소진하는 일에 자신의 삶을 내어주고 있는 것인지.
“빛과 소금에서 친했어?”
성식이에게 이불을 올려 보낸 뒤 윤이에게 물었다. 빛과 소금은 장애우들을 위한 데이케어 선교단체로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었다.
“친했다기보다, 먼저 와서 막내 아줌마 아들이라길래 스스럼은 없었어.”
윤이는 은영 씨를 막내 아줌마라고 불렀다. 막내 아줌마 아들이 지난 학기부터 봉사를 나오고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은영 씨에게 빛과 소금을 소개한 사람이 기숙 씨였다.
“엄마, 나는 제이콥이 약을 한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윤이는 자기가 그렇게 말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약이라는 표현을 썼다. 마리화나만 하는 게 아닌가 보았다.
“언제 알았는데?”
“몰랐어, 집에서 스컹크 냄새가 난다고 하기 전까지는.”
윤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엄마가 스컹크 냄새랑 마리화나 냄새를 잘 구분 못하잖아.”
그랬다. 기숙 씨는 유독 그 두 냄새를 구분하지 못했다.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도 비슷한 냄새가 난다는 데는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동의했다.
“엄마가 그 말하는데 그냥 감이 오더라고. 난 쟤가 좀 안 됐어. 잰 아빠가 없으니까”
"아빤 지도 없으면서.”
아빠 얘기가 나올 때마다 모녀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하는 말장난에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는지 윤이가 짜증을 내는 대꾸를 했다.
“아아, 아니 엄마, 그런 거 말고. 몰라. 그냥 쟨 좀 그래”
내가 아빠가 왜 없어. 윤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빛과 소금에서 간사님이 꼬까신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주셨거든? 어른들은 다 알 거라던데, 엄마 알아?”
물론 잘 아는 노래였다. 솔파미 솔솔라 솔파미레미 계명으로도 부를 줄 알고 리코더로도 불 줄 알았다.
“쟤가 그 노래를 듣더니 우는 거야.”
“울어?”
“으응! 꼬까신이랑 나들이가 뭐냐고 묻더니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뚝뚝 떨어지게?”
“너무 슬픈 노래 라면서, 아기를 잃어버려서 어떡하냐는 거야.”
기숙 씨는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싶었는데 윤이의 표정을 보니 웃음기 하나 없이 심각했다.
“그런데 내가 슬펐던 건 제이콥이 울 준비가 돼 있었다는 거야. 마치 눈에 눈물 달고 살아왔던 아이처럼.”
날이 밝자마자 은영 씨가 왔다. 아이들 아침도 먹이기 전이었다. 눈은 그쳤다고 해도 운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도 일찍 왔다 싶었다. 손에는 한과 세트도 들려 있었다. 마침 집에 있는 걸 들고 왔다고 했다. 이 와중에도 깔끔하게 챙기는 인사라니 보통 깍쟁이가 아니었다. 차도 아침밥도 마다하더니 윤이에게 봉투 하나를 한사코 쥐어주었다. 대신 받아 열어보니 백 불짜리 두 장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는 성식이를 뒷 좌석에 태우고 떠났다. 군더더기 없이 깍뜻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모녀는 뭘 잘못한 사람처럼 주눅이 들어서 차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녀가 다시 찾아온 것은 며칠 뒤였다. 눈이 녹느라 처마로 비처럼 내리던 날이었다.
그녀는 코트도 벗지 않은 채 금방 나갈 사람처럼 가방을 품에 끼고 앉아 있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그땐 고마웠어요, 하고 말문을 열었다.
“성식이는 한국으로 보내야 할까 봐요.”
데리고 갈까 봐요가 아니라 보내야 할까 봐요였다.
“글랜데일 경찰서에서 성식이 학교로 연락을 했더라구요.”
기숙 씨는 자신의 탓인 것 마냥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랬구나, 내가 미안해서 어떡하지?”
“언니가 왜요. 그게 절차라니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언니가 애를 내주지 않아서 이만한 거예요.”
경찰관이 성식이를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걸 강하게 항변해서 데려가지 못하게 했었다. 내 집에 있는 동안은 내 책임이라고 하며 한 발도 현관 밖으로 못 나가게 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소매를 잡고 있는 아이의 절박한 손이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었다.
“신고자가 모녀만 살고 있는 집에 동양인이 침입해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다고 했대요.”
결과가 어떻든 고마운 이웃이었다.
“언니가 애를 안 내준 덕에 증거가 없어서 학교에서도 당장은 어떻게 못하고 마약 검사를 받게 하라는 명령서가 왔어요.”
일이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해?”
“일단은 학교를 그만두는 게 먼저죠”
“아.”
“검사를 받아서 양성이 나오면,”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경찰에 알려야 하는 게 원칙이래요. 미국 애들 같으면 처벌 좀 받고 끝나겠지만 성식이는 추방을 당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까지?”
“그게, 성식이는 이미 전적이 있어서….”
처음이 아니라는 소리다.
추방을 당하느니 먼저 나가는 게 낫기는 했다. 검사를 거부할 권리는 있지만 학교 역시 입학을 취소할 권리가 있다. 유학생이기에 가능한 처분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생비자 역시 취소가 될 것이었다. 이러나저러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구차하고 염치없는 환향이었다.
“데리고 안 가고?”
기어이 입 밖으로 내놓은 질문에 대답은 않고 은영 씨는 가봐야겠다며 일어났다.
“그냥 알려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왔어요.”
“같이 안 가고? 한국에 있을 데는 있고? 아빠는 어디 계신데?”
그녀가 따라 일어서며 질척대는 애인처럼 잡고 늘어졌다. 이렇게 보내면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조바심이 났다.
“가면 어떻게 되는 건데? 아빠한테 가는 거 맞지?”
그녀의 마음과는 달리 은영 씨가 문을 열고 나가며 차분하게 말했다.
“나중에요, 언니. 나중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