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A Dec 26. 2022

방향(方向) is Free

대만 '예류 지질공원'의 방위표. 방위는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정해진다. 방위는 건축기술의 발달로 선택과 집중의 요소가 되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라는 타이틀이 붙어서 큰 복을 지어야 겪을 수 있다는 일들이 있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정남향 집에 거주하는 것도 그중 한 가지로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극명한 계절과 다양한 날씨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 태양광의 인입 조절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이는 단순하게 채광의 영역을 넘어서 대류 현상으로 인한 환기와 실내 습도 조절마저 관여하는 향(向)의 다양한 능력치라고 할 수 있다.


한겨울의 햇빛은 다른 계절보다 더 달다. 지금 사는 집은 동지(冬至)를 즈음한 며칠 동안 앞 건물이 해를 막아선다. 맑은 하늘을 지척에 두고도 응달에 파묻혀 있자니, 그저 시간을 재촉하고 싶다. 겨울철 스산한 공기는 해가 보얗게 뜨기 전까지 그 냉랭함을 굳건하게 고수한다.


여름은 또 어떠한가. 화끈하게 매운맛을 내는 햇빛은 작은 손으로 지운 그늘을 빌어서라도 피하려 한다. 게다가 뜨끈하게 데워지는 창호 앞자리의 더운 기운은 빗자루로 훌훌 쓸어내고 싶다. 겨울에는 꽁꽁 여며두던 북쪽의 작은 창을 쭉쭉 늘려 확대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건물은 해바라기처럼 해를 따라 고개 돌려 쫓을 수도 없고, 잠시 못 본채 태양에 등을 돌릴 수도 없다. 그래서 건물의 앉은자리는 실로 신중해야 할 요소이다. 예로부터 남향집에 대한 찬양이 이어져 왔고, 효율적이고 이점이 많은 것은 달리 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고 주거 건축물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선호하는 주택의 가치에서 눈여겨 볼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도권 주택 소유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주거시설 구매 시 고려하는 요인'에 관한 설문조사가 있다. 2019년 결과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단지 배치와 향(向)'이 가장 높은 선호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조사에서는 '내부 평면 구조'를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꼽은 응답자가 더 많아졌다.


이는 주택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체류 시간이 길어진 것이 주된 이유로 예상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건축기술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으로 이해된다. 인간의 기술이 자연의 영향력을 이겨 낼 수 있음을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사고의 변화라 할 수 있다.


현대의 건축물은 일종의 유기적 철옹성과 같다. 단열을 보강하고 온도 조절 시스템을 설치한다. 토털 환기 설비를 구비하고 습도 조절 기기를 활용한다. 여기에 조명까지 추가하여 IOT (Internet of things)라는 숨결을 불어넣으면 '남향집에 사는 3대의 덕'을 인위적으로 쌓을 수 있다.


건축물이 실내의 쾌적함에 항상성을 지니게 되면서, 건축물에 대한 믿음도 점차 굳어지고 있다. 기술력은 수비수가 되어 설계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이제 남향은 거들뿐. 조망과 설계에 더욱 힘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도비 이즈 프리(Dobby is free)'를 외쳐도 될 만큼 방향으로부터 꽤 자유로워졌다.


겨울, 단내 나는 햇볕의 맛이 온몸에 간지럽게 퍼지면 보약 한 첩 먹은 듯이 따사롭게 혈기가 돌게 하지만 말이다.      


이전 15화 친해지고 싶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