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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May 11. 2023

땅의 권력_ Yet to come

노지 하우스 농막

작은 농막을 건축주 직영으로 시공까지 시행했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고 여러 번 시행착오가 있었던 원인을 장비와 연장의 소박함이라고 탓해보려 한다.



연일 날씨의 혹독함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아직 불볕더위가 시작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토양이 바싹 메말라서 잡초조차 견디기 어려워한다. 필자는 겁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자연이 키워낸 있는 그대로의 채식을 위해 도전했고, 농사 초보의 텃밭은 제대로 실패작이다. 봄 가뭄이 심각하게 이어지면서, 가을이 되찾아 온 듯 모종이 낙엽처럼 바스러졌다. 있는 그대로의 땅은 무능력하기 그지없다.


이런 가혹한 상황에도 이웃 언니님네 밭은 초록이 싱그럽다. 먹거리가 가득한 축복의 땅이다. 밭에서 골라낸 돌무더기 한 줄로 실금 같은 경계를 치고 지낼 뿐인데 달라도 확연히 다르다. 사실 옆 땅은 '가진 것'이 많다. 맨몸의 토지는 감히 넘볼 수도 없는 큰 능력을 지닌 땅이다.


자연에 인공의 설비가 탑재될수록 가능한 활동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옆 댁에는 농사용 전기가 있고, 그것을 동력 삼아 지하수를 사용할 수 있는 펌프가 작동된다. 절대적인 힘 '물'이 있는 농토이다. 경작에 있어서 퇴비나 비료, 혹은 잡초 제거와 노하우 등은 농사 용수에 비하면 곁다리 비교군에 불과했다. 그 어떤 발악을 한다고 해도, 근래의 강수량으로는 결코 젖과 꿀이 흐르기를 기대할 수 없다.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거의 다 말라버린 인근 하천에서 조리개로 물을 몇 번 길어다 뿌리곤 했다.


허탈함에 하릴없이 공기만 쳐다보고 있던 필자를 이웃 댁에서 조용히 손짓하여 부르셨다. 보다 못한 농사 고수님이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푸셨다. 농사용 전기와 지하수 사용법을 하사하셨다. 종교의 율법처럼 거룩하고, 우주의 섭리를 거슬러 기적을 접하는 듯 감동적인 울림이었다. 이제 밭은 생명의 기운으로 소생하리라. 만물이 영생하는 은혜의 땅이 되리라. 그저 지하수만 있어도 강력한 '레벨업'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맨땅에 헤딩'을 여러 번 하면서도 한 땀 한 땀 이루어 가는 재미와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다. 돌이 가득하던 곳은 흙이 포슬거리는 밭이 되었다. 그늘 하나 없던 곳에 비바람 막아 줄 농막을 지어 올렸다. 이웃분들의 유니세프 같은 보살핌으로 지하수와 전기에 이어 상수도와 갖가지 농기구 이용권까지 누리게 되었다. 오가며 건넨 깍듯한 인사가 뻥튀기처럼 커져서 도움의 손길로 돌아왔다. 갖춰진 것이 턱없이 부족한 이를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넘쳐난다.


땅의 권력은 인공의 힘이 가미될수록 수직으로 상승함을 여실히 경험하고 있다. 이웃 중에 도로와 상하수도관이 접하며, 건축허가를 득한 분이 계신다. 그곳은 언제든 전기 신청이 가능하며, 정화조와 배수로까지 매설 완료하였다. 건축 행위가 시작된 필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조건을 착착 갖춰 나간다. 그곳은 얼마지 않아서 아기돼지 삼 형제의 막내가 지을법한 튼튼한 건축물이 사용승인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토지는 강력한 계급까지 거머쥐고, 토지 이용에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다. 누가 뭐라 해도, 건축은 땅에 권력을 부여하는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서산시대 연재 중인

최하나 건축 칼럼 니스트의 '하나두 건축' 기사입니다.

[출처] 서산시대(http://www.ss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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