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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Feb 06. 2023

바라는 건축

건축 의례. 기복 콘텐츠

경기도 안산 미술관 전시장의 출입 동선 벽면에 설치된 어린이 벽화 ‘5만의 창, 미래의 벽’. 2008년 꿈의 이야기를 남겼던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까.

'비나이다 비나이다' 피가 끓던 시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용맹과 투지가 사그라들었음을 인정한다. 시나브로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수긍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가 한낱 미물에 불과함을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약간의 위안 삼고 있다.

우리나라는 바람과 기원의 문화가 일상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있다. 많이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차례와 제사를 지내고, 큰일을 앞두고 고사를 지내는 등 다양한 의례를 치른다. 갖가지 미풍양속과 자칫 변질하여 미신이 되어버린 풍습과 신앙도 다수 존재한다.

흔히 농업과 어업 등의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문화권에서 다양한 바람의 의식들이 발전하였다. 이는 기본적으로 대자연의 다스림에 아량을 청탁한다. 그리고 거칠고 힘든 일을 해내는 이들에게 기운을 북돋을 수 있는 응원의 의례를 치른다. 이는 위험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풍요를 만끽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건축에도 이와 같은 바람의 요소가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게 존재한다. 건축의 구석구석에서, 이 건물 안에서 그저 평안하고 안락하기를 기복(祈福)하고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이고 잘 알려진 의례를 꼽아보자면 상량식과 집들이가 있다.

상량이란, 목조건축의 가장 높은 골조 부분인 마룻대를 올려 골격을 완성하는 1차 마감 단계이다. 공들여 지은 한옥의 천장 저 높은 곳에 '몇 년 몇 월 블라블라'하고 한자로 써둔 흔적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상 상량 이후 과정은 부수적인 시공의 과정으로 볼만큼, 마룻대를 얹는 작업은 골조 공사의 핵심 기술이자 주요 공정이다. 그렇기에 상량식은 작업자와 주인 모두가 긴장하고 공들이자는 의미를 내포한다.

집들이는 집주인이 잘 살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의미가 있는 선물을 전하고, 집주인은 그 마음에 대한 답례로 잔치를 열던 건축 의례였다. 이제는 익숙한 일상 문화로 친숙해졌고 여전히 자연스레 전승되고 있다. 집을 주제로 서로가 서로에게 응원하는 호응의 행사이다.

한 해의 첫 번째 절기인 입춘에는 대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대문에 게시한다. 기와의 곳곳에는 소망을 틈틈이 아로새겨 기복의 결계를 쳤다. 색색의 단청으로 결결의 창살로, 좋다는 것은 죄다 담아 두었다. 건물의 '터'와 관련하여 비보 건축의 일환으로 방패 콘텐츠도 즐비하다.

과거에는 갖가지 재해와 질병이 그저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에 반해, 과학기술이 발달하며 여러모로 대비할 수 있어서일까? 건축에 있어서 의례와 바람의 표현은 확연히 줄어들었고, 대신 합리적 해결책이 늘어난 듯하다. 크고 작은 기원의 형태가 공존하고 있지만, 이제는 드라마틱한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플라세보라던가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긍정적 이득이 생길 것 같기 때문에 명맥을 이어가는 것인가 추측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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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대' 신문사에 연재 중인

'하나두건축' 건축 칼럼입니다.


[출처] 서산시대(http://www.ss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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