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회사에서 마시는 건 '커피'가 아니다. 뇌를 한방 세게 때리며 정신을 차리기 위한 수단일 뿐. 원하는 곳에서 여유롭게 누리는 진짜 커피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육하원칙 모두가 좋은 컨디션일 때, 멋있는 나 자신을 즐기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페가 인테리어에 잔뜩 힘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감성의 좌뇌를 자극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따뜻한 조명을 흩뿌리고, 갖가지 예쁘고 비실용적인 소품을 전시하여 상상과 기억의 조각을 건드린다. 가급적 수려한 전망을 제공하고자 열과 성을 다한다. 도심을 벗어난 대형 카페의 경우 대형 자본과 결탁하여 상권을 상상 이상으로 넓게 확장하기도 한다. 잘 다듬어진 이용객의 후기 자료를 날개 삼아 지구를 대상으로 명성을 크게 얻기도 한다.
시작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공간을 소개하고 싶었다. '내 새끼 예쁜 거 못 본 사람 없게 해 주세요.' 혼자 알기 아까워서 지인들 손 붙잡고 끌고 가기를 여러 번. 우연찮은 기회를 맞아 그곳을 문화기획의 무대로 선택했다. 공간은 감정이 되었고, 감정은 예술이 되었다. 그 예술로 정제된 공간을 피워냈다.
시나브로 일어나는 상전벽해를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는 내만 갯벌. 그곳에 정성 들여 작은 찻집을 꾸려보았다. 차린 건 없지만 즐길 건 많은 공간으로 쓸고 닦아 보았다.
육지가 그리워 바다가 찾아온 찻집. 해수는 수없이 드나듦을 반복한다. 세상을 옮겨 다니며 켜켜이 쌓고 속속들이 헤엄친다. 그 바닷물 앞에 선 손님은 기억 한 조각을 지불한다. 퇴적되도록 깊숙이 묻거나 말끔히 씻어 소생시킬 그 어떤 기억을. 이 순간 뱉어내고 싶은 한마디로 차를 추천받는다. 그리고 진짜 차(茶) 한 모금을 삼켜본다.
갯골생태공원의 야간 기행 [갯골춘몽] 중 <육지가 그리워 바다가 찾집 茶>의 조망을 위해 해수 풀장에 설치한 작품. 빗물은 반사판이 되어 풍요로움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