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회색빛 구름이 어둡지 않은 하얀 그늘을 만들고, 눅눅한 습기가 공기에 밀도를 실어서 피부를 스치는 날. 허무맹랑한 상상이 꼬리를 놓지 않고 하염없이 이어진다. 맥락이나 연관도 없고 얼토당토않은 조건문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진중하게 고민 중인 스스로를 알아챘다. 지금의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채 생각만 해도 싱그러운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수정·보완을 한다면, 몇몇 일은 그 순간을 위한 더 나은 결과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급속 성장과 획기적 안정을 얻게 하는 족보를 쥐고서 욕심이 나지 않을 리는 없다. 다만, 적당히 애를 써서는 결과론적으로 별달리 '좋아'질 수는 없을 것 같다. 힘이 빠지는 결론이지만 섣불리 변화를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졌다. 지금의 나를 완전히 만족해서는 아니다. 그저 한 켜씩 쌓아 온 순간들이 모두 의미 있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것만큼이나 건축의 과정도 돌이키기가 쉽지 않다. 앞 페이지를 다시 보려 책장 넘기거나 영상을 거슬러 감듯 간단하게 되돌릴 수는 없다. 건축물에 쓰여야 할 신중함의 무게는 물리적 무게만큼이나 묵직하다. 행여나 이미 굳어진 콘크리트나 모르타르를 부수려면, 거대한 쇠뭉치로 천둥 치는 소리를 동반하고 공기질도 '매우 나쁨' 수준을 견뎌내어야 한다. 올곧게 서 있는 벽체를 옆으로 쓱 당겨오기도 꽤 어렵고 복잡하다. 설계 단계의 사고력은 '다시!' 손 보는 수고로움을 방지한다.
아쉬움 없는 인생이나 건축물은 희귀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기회가 생긴다면 무조건 더 나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미래의 내가 오늘을 사는 내게 당부하고픈 말을 상상해 본다. 소파에 뉘었던 허리를 펼치고 하찮게 보내던 순간을 마무리 지었다. 내일이 되어서 과거가 뿌듯하기를 바라며 지금 당장 스스로를 채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