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보다 호기심으로

해방과 공허가 공존한 시간

by 다소느림
1장 ― 카페에서 배운 두 가지: 일과 두려움

군대를 제외하면 나는 늘 일을 했다.

그 시작은 카페 아르바이트였다.
동네에서는 꽤 큰 매장이었다.

문을 열면 제일 먼저 공기를 바꾸는 건 원두 냄새였다.

매대 유리창을 알코올로 문질러 얼룩을 지우고,

빈 잔을 선반 높이와 각도에 맞춰 정렬하면

드디어 하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문벨이 울리기 전까지는 늘 긴장과 설렘이 섞여 있었다.

‘오늘은 실수하지 말자.’

처음 몇 주는 손에 힘이 남아돌아 컵을 부러뜨릴 것 같았다.

스팀피처를 잡은 손목의 각도가 조금만 빗나가도

우유는 거품 대신 비명을 질렀고,

에스프레소 샷은 때로 쓰고 때로 밍밍했다.


그럼에도 손님이 “맛있네요”라고 웃으면,

그 한마디가 시급 이상의 보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일이 늘어날수록,

내 안의 두려움도 같이 자라났다.


일을 멈추면 당장 다음 주를 버틸 돈이 없다는 감각.

그건 ‘욕심’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웠다.

그래서 스케줄표의 빈칸을 보는 게 가장 불안했다.

비어 있는 날이 많아질수록 통장 잔액을 먼저 떠올렸고,

쉬어도 쉬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감 시간,

나는 큰 실수를 했다.
쇼케이스 조명만 꺼야 했는데,

깜빡하고 전원을 통째로 꺼버린 것이다.


조용해진 매장을 뒤로하고 퇴근한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공기부터 이상했다.

케이크와 디저트가 미지근했다.

크림은 모양을 잃고,

과일은 윤기를 잃어갔다.

사장님의 표정은 말 대신 숫자를 떠올리게 했다.

‘이게 다 얼마지….’

나는 변명하지 못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몇 만 원을 벌던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몇 십만 원의 손해를 끼친 셈이었다.

그날 이후로 마감표를 읽는 손이 더딜 만큼 조심스러워졌고,

전원을 분리해 놓은 스위치 하나를 내리기 전에 세 번씩 확인했다.


몸으로 배운 두려움이었다.

당시 최저시급은 5천 원대였다.
나는 주 4회, 하루 4시간씩 일했다.

한 달을 꽉 채워도 30만 원 남짓.


교통비, 밥값, 책값을 빼면 손에 남는 건 많지 않았다.부족한 돈은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있었지만,그때는 아버지가 너무 두려운 존재였다.항상 아껴쓰라는 말씀 뿐이셨다.

그래서 나는 카페알바를 하며 단기알바들을 뛰었다.


월급봉투를 받아 들고 계산기를 두드릴 때마다 이상한 허탈함이 찾아왔다.

숫자는 늘 냉정했고,

내게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사라졌다.


그 무렵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일의 보람과 돈의 무게는 다르고,

돈의 부족은 곧 두려움으로 번진다는 것을.

‘일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문장이

내 뒷덜미를 잡아끌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2장 ― 여행: 두려움 사이로 스며든 바람

아르바이트는 두려움만 남기지 않았다.

작은 자유도 주었다.

그 자유가 여행이었다.


오사카, 처음 건넌 국경


고등학생 때,

부모님의 도움으로 친구들과 오사카로 여행을 갔다왔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릴 때,

창밖으로 도시가 작아지는 모양을 보고서야

‘정말 떠나는구나’ 실감했다.

공항의 번잡함조차 낯선 음악처럼 들렸고,

밤이 오면 강가의 불빛이 물 위에 흩어졌다.


길모퉁이에서 산 따끈한 간식 하나에도

‘내가 정말 일본을 왔구나’라는 감각이 스며 있었다.

여권을 들고 걷는다는 단순한 사실이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처음 건넌 국경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그 며칠은 두려움이 비켜 선 시간이었다.


유럽, 자유라는 이름의 무게


대학 시절,

나는 더 멀리 떠났었다.

카자흐스탄을 경유해 프랑스로 들어가,

독일·체코·오스트리아·스위스를 거쳐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귀국길에도 다시 카자흐스탄 공항을 지나쳐 갔다.

자유여행이었다.


정해진 가이드도,

따라가면 되는 일정도 없었다.

숙소를 고르는 것도,

도시를 떠나는 시간도,

걸을 길과 쉴 벤치도 모두 내가 정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선택의 자유는 동시에 책임의 무게였다.

어느 도시에서는 경비를 많이 쓰는 바람에

며칠 동안 예산이 비좁아졌다.

그때 나는 물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를 버텼다.

배는 고팠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낯선 도시들의 공기는 각기 달랐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다소느림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그 안에서 새로운 시선을 찾습니다. 다소다른시선, 글로 세상과 대화합니다.

25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6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3화퇴사라는 시작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