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살률
2025년 9월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사망원인통계’는
한국 사회의 아픈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24년 자살 사망자는 14,872명,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전년 대비 6.6% 증가해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10~4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며,
40대에선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자살이 암을 제쳤다.
하루 평균 40명 안팎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뜻이다.
OECD 평균 자살률이 대략 10명 안팎일 때,
한국은 최근 수년간 두 배 수준을 오르내렸다.
2024년 OECD ‘Society at a Glance’는
한국, 일본,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벨기에 등이
15명/10만 명을 넘는 고위험 국가군에 속한다고 명시한다.
즉,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장기간 지속된 구조적 문제다.
고독사는 더 이상 노인세대만의 단어가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2024년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독사 사망자는 2022년 3,559명 → 2023년 3,661명으로 늘었다.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젊은 연령대 내부에서도
자살이 고독사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 확인된다.
고시원·원룸·오피스텔로 대표되는 밀도 높은 1인 주거가
‘사회적 단절’을 고착시키고 있다.
서울시는 ‘고독 없는 도시’를 기치로
24시간 외로움 핫라인,
생활형 커뮤니티 거점(‘마음 편의점’) 등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근본 원인으로는 과도한 경쟁·장시간 노동·주거불안까지 건드려야 한다”는
비판도 동시에 제기된다.
1) 상대적 박탈감의 일상화
절대적 빈곤보다 ‘비교’가 더 견디기 어렵다.
학벌·직업·연봉·내 집·관계·심지어 SNS 지표까지,
끝없는 상대평가의 사다리가 인간의 자존을 갉아먹는다.
우리는 ‘성취’보다 ‘격차’를 먼저 본다.
2) 치열한 경쟁이 낙오를 ‘낙인’으로 만든 사회
입시→취업→승진→주거로 이어지는 생애 주기 전체가
순위 경쟁으로 조직돼 있다.
한 번의 실패가 ‘낙인’이 되고,
복귀의 사다리는 낮고 좁다.
3) 안전망의 얇은 두께
상담·치료는 있지만 접근성·낙인은 여전하다.
지역 간 격차, 비용, 근로시간 제약이 겹치면 문턱은 더 높아진다.
데이터·재정·인력의 부족으로
현장 지원이 느리고 단편적이라는 비판도 반복된다.
4) 직장 문화의 피로—과로·괴롭힘·성과 만능
52시간제와 직장 괴롭힘 금지 등 제도는 생겼지만,
현장의 문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대기업·플랫폼·IT 업계를 포함해 멘탈 헬스 이슈가 누적되며,
기업 차원의 예방·상담·복귀 프로그램이 제도화되는 초기 국면이다.
5) 해체되는 공동체, 느슨해진 연결
도시 1인 가구의 급증과 이웃 상실,
가족의 부재는 위기의 ‘완충재’를 약화시켰다.
온라인으로 연결되어도 정작 위기 때 붙잡아 줄 손은 주변에 없다.
지자체의 외로움 대응이 확산되는 이유다.
① 소득·주거·돌봄의 ‘기본 안전망’을 두껍게
청년·비정규·프리랜서에 맞춘 소득보전(부분실업·근로장려),
공공임대·역세권 청년주택의 물량·자격 완화,
시간제·원격·유연근무와 돌봄의 결합이 필요하다.
출산·합계출산율 논의도 결국 삶의 안정성과 직결된다.
② 학교·대학·군의 ‘보편적 멘탈헬스’
정기 선별(자가검진), 교내 상담 대기축소,
왕따·사이버불링 대응,
응급 시 병원 연계의 원스톱 프로토콜을 표준화하자.
10대·청년층이 자살 위험군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이미 통계가 말해준다.
③ 직장 정신건강의 ‘의무적’ 관리
연 1회 스트레스·우울 스크리닝,
관리자 교육(보스·동료 괴롭힘 금지),
익명 상담·복귀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KPI에서 ‘과로’ 유인을 제거해야 한다.
법·제도만으로는 부족하고 문화를 바꿔야 한다.
④ 데이터·현장 연결의 혁신
지역센터가 사건·응급·고위험군 데이터를
신속·정밀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개입이 빨라진다.
지금처럼 1년 이상 늦는 통계만으로는 선제 대응이 어렵다
정책 현장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다.
⑤ ‘외로움’에 선제 대응하는 도시 전략
외로움 핫라인·방문형 지원·생활거점(마음 편의점) 같은 낙인 없는 접근을 넓히되,
주거·노동·교육의 근본 원인을 같이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사성’으로 흐른다.
직접 묻기 — “요즘 죽고 싶은 생각 해?” 질문이 위험을 키우지 않는다.
경청하기 — 조언·판단보다 “네가 그렇게 느끼는구나”를 먼저.
안전 확보 — 약·도구 등 위험요인 접근 줄이기, 혼자 두지 않기.
전문가 연결 — 1393·129·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응급은 119.
사후 연결 — 하루 이틀 지나 연락하기. 위기는 파도처럼 되돌아온다.
한국은 의료·교육·치안·디지털 인프라에서 분명 살기 좋은 나라다.
그와 동시에, 비교와 경쟁이 일상인 사회이기도 하다.
두 사실은 모순이 아니라 동시에 성립한다.
그래서 우리의 질문은 “살기 좋은가?”에서 멈추지 않고,
이렇게 이어져야 한다.
비교가 아닌 연결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가?
실패 이후에도 다시 설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는가?
혼자 살아도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사회가 보장하는가?
9월 25일의 숫자들은 우리에게 숙제를 건넸다.
‘선진국’이라는 간판을 진짜 내용으로 채우는 일
그 시작은 사람의 마음을 구조하는 사회를 설계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설계는 정책·회사·학교·가정·이웃,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