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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도는 병, 이석증

알고 보면 흔하지만, 겪어본 사람만 아는 고통

by 다소느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전투


아침에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방 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그저 고개를 돌리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동작이
환자에게는 고통의 출발점이 된다.


세상이 돈다는 건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눈앞의 풍경이 실제로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고,
몸은 멀쩡한데 중심이 잡히지 않아 바닥에 주저앉게 된다.
하루의 첫 걸음을 떼기도 전에 이미 긴장과 불안이 온몸을 휘감는다.


서서 일하는 직종에겐 더 가혹하다


족발집, 주방, 공장, 마트 계산대처럼
서서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직업에서 이석증은 더욱 치명적이다.

고개를 숙여 채소를 손질하거나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는 순간,
불 앞에서 쟁반을 들고 움직이는 순간,
갑작스러운 어지럼이 찾아오면
그 즉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손님 앞에서는 웃어야 하고,
뜨거운 기름과 불 앞에서는 실수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 돌지 모르는 세상 앞에서
환자는 늘 긴장한 채 하루를 버틴다.
몸은 멀쩡하지만 균형을 잃는다는 것,
그 자체가 노동 현장에선 ‘보이지 않는 재해’가 된다.


단순한 어지럼이 아니다, 마음까지 흔든다


사람들은 종종 이석증을 ‘어지럼증’ 정도로 가볍게 여긴다.
하지만 환자에게 더 무서운 건 증상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낮에는 손님 앞에서 쓰러질까 두렵고,
밤에는 옆으로 돌아눕는 순간 세상이 다시 회전한다.


“내일은 괜찮을까”라는 불안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 병이 진짜로 힘든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순간이 반복될수록
자신감은 무너지고, 생활은 위축된다.


흔하지만 방치되는 병


이석증은 흔한 질환이다.
중년 이후 누구나 겪을 수 있고, 치료법도 있다.
간단한 이석 정복술로 좋아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문제는 재발 가능성이다.
몇 달, 몇 년 뒤 또다시 세상이 돌기 시작하면
환자는 다시 불안 속으로 빠져든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니,
주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선 하루하루가 흔들린다.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


이석증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은 아니다.
하지만 삶을 무너뜨리는 병이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흔들리며,
환자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치료만이 아니다.
이 병을 겪는 사람들이 어떤 하루를 살아가는지,
그 흔들림 속에서 얼마나 버티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는 사회적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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