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한 번에 멈춘 국가 행정
지난 주말,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전산실에 화재가 발생했다.
하루아침에 정부의 주요 전산망이 멈췄고,
온라인으로 처리되던 행정업무가 대거 중단됐다.
정부24, 인터넷등기소, 주민등록 서비스까지 모두 ‘먹통’이 된 것이다.
문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주체가 늘 그렇듯 시민이라는 점이다.
몇 분이면 끝날 일을 직접 기관을 찾아가서 처리해야 했고,
현장에는 평소보다 몇 배나 긴 대기줄이 생겼다.
사업자 등록을 준비 중인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등기부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을 준비해야 했는데,
온라인은 전혀 불가능했다.
결국 등기국을 찾아가 서류를 발급받고,
이어 시청 무인민원발급기로 향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시청에 도착해보니,
강기정 광주시장이 무인발급기를 점검하며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물론 행정 책임자가 시민 편의를 챙기고 점검하는 모습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발급을 기다리는 실제 시민의 시간이
뒤로 밀린다는 사실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웠다.
“촬영은 촬영이고, 시민 업무는 업무대로 처리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시청에서 발급을 마치지 못하고,
치평동의 365 민원업무 창구로 다시 이동해야 했다.
서류는 겨우 마무리했지만,
허탈감이 남았다.
이번 경험은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 전산망의 리스크가 곧바로 시민의 불편으로
전가되는 구조가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다.
리튬 배터리 하나의 발화가 국가 전체의 업무를 마비시키고,
결국 시민들이 발로 뛰며 그 빈틈을 메웠다.
게다가 현장에서 느낀 또 다른 아이러니는,
위기 대응을 보여주려는 행정의 홍보와
시민 편의가 서로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정치적 ‘보여주기’보다 우선시돼야 할 건
결국 시민의 권리와 시간이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화재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주요 전산망이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처럼
운영되고 있었다는 건 큰 문제다.
분산 시스템, 이중화 설비, 위기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번과 같은 전국적 마비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단순히 복구 속도가 아니라,
“다음에는 시민이 이런 불편을 겪지 않도록 어떻게 제도를 개선할 것인가”이다.
이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한다면,
다음 불은 더 크게 번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