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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름의 온도

보안스테이에서의 하루

by 다소느림

주말, 브런치 팝업 전시를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갔다.
효자동 골목 안,

오래된 건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유난히 따뜻했다.
전시를 보고 난 뒤에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아
하루쯤은 그 감정을 그대로 품고 머무르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곳이 보안스테이였다.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다.
‘보안’이라는 단어 속엔 오래된 시간의 기운이 담겨 있고,
‘스테이’라는 단어는 머무름의 여백을 품고 있으니까.


경복궁 앞, 낭만이 머무는 자리



이곳은 서촌, 그리고 경복궁 바로 앞에 있었다.
서울의 한복판이지만,
그 풍경 속에는 도심의 소음 대신 낭만이 있었다.


창밖으로는 경복궁의 담벼락이 보이고,
고개를 들면 북악산의 능선이 이어진다.
밤이면 고즈넉한 불빛이 골목 사이를 물들이며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을 준다.


전시회장이 바로 근처라 이동도 편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촌 특유의 정취가 묻어났다.
작은 서점, 오래된 카페, 벽돌집 앞에 놓인 자전거 한 대까지
그 모든 게 하나의 풍경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숙소가 아닌, 작품 속에 머문다는 것



보안스테이는 원래 여관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그래서일까, 건물 곳곳에서 과거의 흔적이 느껴졌다.
낡은 벽돌, 나무문 손잡이, 좁은 복도조차
시간의 결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1층은 감각적인 카페였고,
2층은 작은 전시회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 옆에는 실제로 폐업한 여관 건물을 허물지 않고

전시공간으로 재해석해두었는데,
그곳을 마주했을 때 묘한 감정이 들었다.


오래된 공간의 숨결을 살려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건
결국 ‘시간을 존중한다’는 의미 아닐까 싶었다.


지하 1층과 2층으로 내려가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빛과 어둠, 철제 계단, 그리고 벽면에 스며든 색채들.
모든 게 하나의 설치미술 같았고,
숙소라기보다 ‘작품 속에서 잠드는 기분’이 들었다.


머무름의 이유


보안스테이에 머무는 동안
단 한 번도 ‘숙박’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머물렀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하루 동안
나는 작품 속에서 걸었고,
공간과 대화했고,
밤이 내릴 땐 조용히 그 여운을 품었다.


서울의 중심에서
이토록 조용하고 감각적인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여운


보안스테이 전경.jpg

다음 날 아침,

창밖으로 비친 경복궁 담벼락은
햇살에 반짝였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은 공간은 머무는 사람의 속도를 바꿔놓는다.”


보안스테이는 그런 곳이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감정이 부드럽게 내려앉는,
그런 머무름의 온도를 가진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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