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
정읍으로 향하는 길은
이미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바람은 서늘했고,
햇살은 따뜻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이
‘축제의 마지막 날’을 실감나게 했다.
구절초는 이미 절정을 지나 있었다.
하얀 꽃잎들은 살짝 시들어 있었고,
그 사이로 백일홍이 분홍빛 얼굴을 내밀며
가을의 끝자락을 대신하고 있었다.
만개한 꽃밭은 아니었지만,
그 풍경 속엔 묘한 여운이 있었다.
저물어가는 계절의 아름다움이란,
언제나 완벽함이 아닌 ‘남겨진 흔적’ 속에서 피어나는 법이니까.
정읍구절초지방정원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입구를 지나 걷기 시작하니,
꽃길을 따라 펼쳐진 부스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디선가 튀김 냄새가 풍기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섞여 들려왔다.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만으로도
축제의 분위기가 얼마나 따뜻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꽃을 보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정원의 축제’였다.
예전엔 지역 축제 하면
비싸고 불편하다는 이미지가 따라붙곤 했다.
하지만 이번 축제는 달랐다.
‘바가지요금 신고센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음식값도, 체험비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 덕분일까.
사람들의 얼굴엔 여유가 묻어 있었다.
한적한 시골마을이지만
운영은 체계적이고,
봉사자들은 웃음으로 관람객을 맞이했다.
‘이래서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방정원 안을 도는 기차였다.
처음엔 아이들만 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가족 단위로 타는 어른들도 꽤 있었다.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나도 한 번 탔다.
기차는 천천히, 정말 천천히 달렸다.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잔잔하게 이어졌다.
햇살이 따뜻했고, 공기는 선선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기차가 한 바퀴를 돌고 멈췄을 때,
괜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오늘이 좋았던 이유는
가족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간식을 먹고,
누군가는 아이의 손을 잡고 꽃길을 걸었다.
모두의 표정엔 웃음이 가득했다.
가끔은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 시들어도 괜찮은 그런 하루.
정읍의 하늘 아래에서
가족의 웃음소리가 가장 큰 꽃이 되어 피어났다.
꽃은 저물었지만,
우리의 웃음은 여전히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