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리듬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공기가 남아 있었다.
햇살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사람들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리를 걸었다.
그런데 단 며칠 사이, 공기가 달라졌다.
아침엔 김이 나는 숨결이 새어나오고,
밤엔 손끝이 시릴 만큼 찬 바람이 분다.
문제는 단순히 ‘추워졌다’는 게 아니다.
기온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그 속도를 우리 몸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엔 두꺼운 옷을 입고 나왔다가,
점심엔 더워서 벗고,
저녁엔 또 다시 옷깃을 여민다.
몸은 혼란스럽고,
마음은 그보다 더 피곤하다.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우리는 매일 조금씩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요즘 병원에 가보면 풍경이 비슷하다.
대기실은 기침과 콧물 소리로 가득하고,
누가 먼저 감기에 걸렸는지 모를 만큼 모두 지쳐 있다.
독감이 유행이라지만,
이건 단순한 계절성 질병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감기 너무 독하지 않아요?”
“약 먹어도 잘 안 낫더라.”
하지만 어쩌면 그건
‘독한 감기’가 아니라
‘약해진 사람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일,
줄지 않는 피로, 부족한 수면,
그 속에서 면역은 천천히 무너진다.
기온이 내려가기도 전에
이미 사회는 우리 몸을 먼저 혹사시키고 있다.
감기보다 먼저 찾아온 건
‘버텨야 한다’는 강박이다.
며칠 전, 나도 결국 병원에 다녀왔다.
처음엔 목이 칼칼하더니,
하루 만에 삼키기도 힘들 정도로 아파졌다.
미열이 오르고,
누런 콧물이 멈추질 않았다.
의사는 “요즘 유행이에요.”라며 짧게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요즘 유행이에요.”
마치 당연한 일처럼 들리지만,
그 당연함 속에는 묘한 무기력함이 있다.
다들 아픈데, 다들 괜찮은 척을 한다.
약을 먹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쉬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쉴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몸은 점점 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지금,
계절의 변화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쳐간다.
바람이 불기 전에 이미 피로가 쌓이고,
온도가 떨어지기도 전에 면역이 무너진다.
감기와 독감이 퍼지는 이유는
단지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다.
멈출 줄 모르는 사회,
숨 고를 틈이 없는 일상 속에서
몸이 먼저 계절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건 단순한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리듬이 병든 사회의 초상이다.
아침에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밤에는 창문을 꼭 닫는다.
단순한 행동이지만,
그 안에는 ‘조금 늦게 가도 괜찮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계절은 결국 우리를 기다려준다.
하지만 몸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조금 더 천천히,
내 몸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지금,
진짜 필요한 건 새로운 약이 아니라
멈춤의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