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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김치가 함께 익어가는 시간

김치의 맛은 깊었지만

by 다소느림

제32회 광주김치축제


평일 오전이었다.
금요일이었고,

아직 출근길의 여운이 남아 있던 시간.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별로 없겠지’ 했다.


하지만 김치타운 입구에 닿자

생각이 바로 바뀌었다.
도로 한쪽은 통째로

판매 부스로 바뀌어 있었고,
그 사이로 김치와 각종 식품, 간식, 굿즈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사람들.
아침부터 이렇게 북적일 줄은 몰랐다.


김치명인의 손맛, 그리고 묵은지의 깊은 맛


명인 김치(블러처리).jpg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김치명인’ 부스였다.
“수상한 김치명인들”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았다.
그들의 김치는 확실히 맛이 달랐다.
감칠맛이 입안에 오래 남았다.


나는 매운 걸 잘 못 먹어서 묵은지를 골랐는데,
그 묵은지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부드럽고 진했다.
한입 베어 물자마자 김치의 산미보다 먼저,
시간이 만든 구수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아, 이게 진짜 김치구나.”
그 한마디가 저절로 나왔다.


공연의 완성도, 그리고 축제의 온도


김치축제 공연장.jpg

무대는 예상보다 컸다.
취타대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췄고,
화면에는 다양한 영상과 이미지들이 흘러나왔다.
프로그램 구성에서

‘준비를 많이 했구나’라는 게 느껴졌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웃었고,
외국인들은 휴대폰을 들고 촬영하느라 분주했다.
아이들은 무대 앞에서 박자에 맞춰 춤을 췄다.
한마디로, 축제는 살아 있었다.


먹거리 존의 그림자


김치축제 주문존.jpg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먹거리 구역.

주최 측이 나름 고민을 했던 흔적은 보였다.
구매 구역과 픽업 구역을 나눈 것도,
공연을 보며 식사할 수 있게 원형 테이블을 설치한 것도
모두 좋은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정작 현장은 달랐다.
테이블 수가 너무 적었고,
자리 간격도 좁아서

한두 명만 앉아도 금세 포화 상태였다.


일행들이 자리를 맡아두는 경우도 많았고,
그 탓에 실제로 비어 있는 자리조차 앉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식사할 자리를 찾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몇몇은 서서 음식을 먹고,
누군가는 간이 식탁 하나를 얻어와 서서 식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작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이랬다.
작년에도 결국 먹지 못하고 돌아섰던 그날처럼.


익지 않는 행정, 반복되는 불편


그래서 올해는 달라졌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그냥 그대로였다.
탁상 위에서 만들어진 동선이
현장의 불편을 흡수하지 못한 채
그대로 복사되어 나온 느낌이었다.


조금만 더 현장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조금만 더 ‘사람의 경험’을 중심으로 생각했더라면
이 축제는 정말 완벽에 가까웠을 것이다.


김치는 시간이 익혀내는 음식이다.
급히 만든다고 맛이 나지 않는다.


축제도 그렇다.
매년 조금씩 익어가야 한다.
사람들의 불편을 흡수하고,

그 피드백을 담아내야 진짜 발전이 있다.


하지만 올해의 광주김치축제는
김치의 맛은 깊었지만,
운영의 맛은 아직 덜 익어 있었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다


수상한 김치들.jpg 상을 수상한 김치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축제가 좋았다.
사람들이 김치 한 포기를 들고 웃는 장면,
외국인들이 김치 담그기에 열중하는 모습,
그 안에 있는 ‘살아 있는 현장감’이 좋았다.


광주의 가을 냄새와 함께,
김치가 익어가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 냄새는 단순히 발효의 냄새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가 다시 이어지는 냄새였다.

김치의 맛이 깊어지듯,
광주김치축제도 해마다 조금씩 더 깊어지길 바란다.


행정이 아니라 사람의 입맛으로,
서류가 아니라 현장의 온도로.

올해 나는 그 맛을 느꼈다.


그리고 그 맛이
내년에는 더 오래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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