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의 도시
대전은 늘 애매한 이름이었다.
서울과 부산 사이,
그냥 지나가는 도시.
누군가는 노잼도시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성심당 말고는
할 게 없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 대전 여행은
애초에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다.
그저 바람 쐬듯,
방송에서 본 몇 군데를 돌아보고
빵 몇 개 사 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가 오고,
바람이 매서웠던 그날,
대전은 생각보다
쉽게 잊히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첫날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발칸포 부대찌개를 파는 식당이었다.
웨이팅은 한 시간.
하지만
대기실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집이 손님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대찌개의 생명은
햄이라고들 말한다.
이곳의 햄은
사장님이 직접 만든 수제 햄이었다.
특히 발칸포에서 나오는 생햄은
곱창이나 대창처럼 생겼지만
맛은 두부처럼 담백했다.
자극적이지 않고,
국물의 균형을 깨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사장님이 바쁜 와중에도
모든 테이블을
직접 돌며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보통의 유명한 집들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손님을 놓치기 마련인데,
이곳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맛보다 태도가 먼저 기억에 남는 집이었다.
이후 들른 롤라리틀베이커리는
대전이 왜 ‘빵의 도시’라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하게 했다.
토마토와 바질을
메인으로 한 시그니처 빵,
광주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구성의 베이커리들.
요즘은 시그니처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이곳은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빵이 많아서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이 집은 이 맛”이라고
바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대전은 성심당 하나로
도시 전체의 빵 기준을
끌어올린 곳처럼 보였다.
그 영향력은
개인 베이커리들까지 이어져 있었다.
둘째 날,
본격적인 빵투어를 시작하려 했지만
성심당의 인파 앞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대신 식스센스에 나왔던
몽심으로 발길을 돌렸다.
초코바게트와 마들렌으로 유명한 곳.
빵 대회 1등이라는 이력답게
한 시간의 기다림 끝에도 납득이 갔다.
이곳의 기다림은
‘유행’이 아니라
‘실력’에서 나왔다.
근처의 푸딩 가게에서는
말차 푸딩과 복숭아 젤리를 먹었다.
복숭아는 무난했지만
말차 푸딩은 확실히 기억에 남았다.
요즘 말차가 왜 대세인지
단번에 이해되는 맛이었다.
게다가 가게 안에는
다리가 짧은
아기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다.
이런 우연한 장면들이
여행의 기억을 더 오래 붙잡아 둔다.
여행의 마지막은 사나고 카페였다.
유튜브에서 보던 3D펜 작품들과 피규어들이
실제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화면 속 콘텐츠가
현실의 장소가 되는 순간,
대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창작자가 숨 쉬는 도시처럼 느껴졌다.
대전은 이상한 도시다.
서울처럼 숨 막히게
붐비지 않으면서도
성심당과 코스트코라는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지하철은 1호선 하나뿐이지만
버스와의 연계는
놀랄 만큼 잘 되어 있고,
도로는 넓고,
건물은 크고,
시야는 트여 있다.
자극적인 랜드마크는 없지만
살기 좋은 조건들은
고루 갖춘 도시였다.
대한민국의 한가운데라는 위치도
이 도시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누가 대전을 노잼도시라 불렀을까.
적어도 내가 만난 대전은
유잼도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고 싶어지는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