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현실 사이
노란봉투법은 그 이름만 들으면 따뜻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노동자를 빚더미에서 구해주는 법.”
실제로 2014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이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에 내몰렸을 때,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넣어 보내며 연대의 상징이 되었던 역사적 맥락이 있다.
하지만 법은 감성이 아니라 현실을 담아야 한다.
지금은 내수도 부진하고 수출도 둔화된 경기 침체 국면이다.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이는 대신 버티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여기에 손해배상 제한까지 더해진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불법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보전할 방법이 차단된다. 결국 이 법은 노동자 개인을 지켜주는 대신 기업 전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노조의 존재 자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노조를 여전히 ‘약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노조는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하다.
청년·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은 오히려 이들의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된다.
임금과 복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이는 새로운 불평등을 낳는다.
과거의 노조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면, 오늘날의 노조는 기득권에 가까워졌다.
그들에게 더 강력한 법적 방패를 쥐여주는 것은, 약자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는 일일 수 있다.
법은 항상 균형을 고민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만큼 기업의 재산권과 경영활동도 존중받아야 한다.
지금은 특히 그렇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과제는 “성장 동력 회복”이다.
새로운 투자 유치
내수 진작
고용 창출
이 세 가지가 지금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은 기업의 손발을 묶고,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며, 결과적으로는 일자리마저 줄일 수 있다. 법이 의도와 달리 경제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해선 안 된다.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려는 법이 결국은 노동자 자신에게도 독이 될 수 있다.
기업이 움츠러들면 고용이 줄고, 청년들의 취업 기회가 줄어든다.
투자자가 빠져나가면 산업 경쟁력도 약화된다.
균형을 잃은 사회에서는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나는 솔직히 노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이제 노조는 더 이상 약자의 상징이 아니다.
기득권 집단이 되었고,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회 전체의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노란봉투법은 따뜻한 이름 뒤에, 오히려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차가운 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업과 노동의 균형, 그리고 사회 전체의 활력 회복이다.
어느 한쪽만의 명분에 기댄 법은 결국 또 다른 불균형을 만들어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