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약속이 무너지다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2024년 합계출산율 0.72명)이고,
노인 인구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미 곳곳에서 “2055년이면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치권은 연금 개혁을 ‘뜨거운 감자’로만 여기며 미루고 있다.
국민연금: 18세~60세까지 납부, 소득의 9% 보험료(근로자·기업 절반씩). 하지만 소득대체율은 약 40%에 불과해 실제 생활비로는 부족하다.
직역연금(공무원·군인·사학): 국민연금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오랫동안 운영되었고, 여전히 불평등 논란이 존재하고 있다.
기초연금: 노후 빈곤층 지원 역할을 하지만, OECD 국가 중 한국 노인 빈곤율은 여전히 1위다.
퇴직·개인연금: 결국 국민이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구조지만, 소득 격차가 클수록 노후 대비의 양극화가 심화된다.
정치가 연금 개혁을 미루는 이유는 단순하다.
노인 인구는 많고, 투표율은 높다. → 혜택을 줄이는 개혁은 표심에 직격탄.
청년 인구는 적고, 투표율은 낮다. → 장기적 개혁의 수혜층이지만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렵다.
결국 한국 연금은 “현재 세대 중심의 제도”로 굳어지고,
그 부담은 자연스럽게 미래 세대에게 전가되고 있다.
사실 해법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문제는 실행의지다.
1. 국민연금의 자동 안정화 장치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올리되, 법에 연동 규칙을 못 박아 정치가 미루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수급 개시 연령을 점진적으로 상향하고, 경제·인구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조정되는 메커니즘을 도입할 수 있다.
2. 기초연금 강화
단순 현금 지급을 넘어서 의료·주거·돌봄 바우처와 연계해야 한다.
하위 계층에는 더 두텁게, 상위 계층은 점진적으로 줄이는 구조가 필요하다.
3. 퇴직·개인연금 활성화
모든 근로자가 자동 가입·자동 증액 구조에 들어가게 하고, 수수료 상한을 강제해야 한다.
저소득층에는 정부 매칭 크레딧을 제공해 노후 대비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
4. 직역연금과의 정합
신규자부터 국민연금과 조건을 수렴시켜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
5. 투명성과 신뢰 회복
개인별 연금 대시보드를 제공해 “내가 언제, 얼마를 받는지”를 누구나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초당적 연금위원회를 만들어 5년마다 자동 재검토하게 해야 한다.
연금은 단순히 “돈을 더 내고 덜 받는 문제”가 아니다.
이 제도는 세대가 서로 약속하는 사회적 계약이다.
지금 세대가 모든 혜택을 누리면, 미래 세대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미래만 바라보다 당대 노인의 삶을 외면하면, 빈곤과 불평등이 더 심화 될 것이다.
지속 가능성과 생활 보장을 동시에 잡는 일, 세대 간 형평성을 지키는 일.
그것이 연금 개혁의 본질이다.
정치권이 당장의 표에만 매몰된다고 해도,
사회 전체가 압박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청년 세대는 투표와 목소리로 참여해야 하고,
노인 세대는 자식 세대의 부담을 고려한 사회적 합의를 지지해야 하며,
정치권은 장기 의제를 미루지 않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연금은 곧 우리 모두의 미래다.
당대의 안일한 선택이, 다음 세대의 무거운 짐이 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결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