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사회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은 한국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 사건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일탈이 아니라,
권력형 성비위가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오거돈 전 부산시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정치인들이 비슷한 사건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정치권은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조국혁신당에서 발생한 사건 역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피해자의 호소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고,
지도부는 ‘대응 미숙’을 인정하며 총사퇴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한국 사회에는 여성가족부를 비롯해 성평등 정책을 담당하는 수많은 기구들이 있다.
각 정당에도 성평등위원회, 윤리위원회가 존재한다.
여성단체 역시 전국적으로 활동하며, 성폭력·성희롱 근절을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제도들은 대부분 이름뿐인 장치로 전락하고 있다.
사건이 터지면 보여주기식 기자회견이나 대책 발표가 이어지지만,
피해자가 안전하게 보호받고 가해자가 확실히 처벌되는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여성가족부는 늘 ‘존재감 없는 부처’라는 비판을 받고,
여성단체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결국 피해자에게 남는 것은 고립감과 2차 피해다.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던 제도가 오히려 방관자가 되는 순간,
사회적 안전망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여성 정치인들의 태도다.
평소에는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강조하는 이들이,
자기 진영에서 사건이 터지면 목소리를 낮춘다.
피해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애매하게 넘어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국민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크다.
“정말로 여성 인권을 위해 싸우는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자산으로만 활용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진영 논리에 따라 목소리의 크기가 달라지는 현실 속에서,
성비위 문제는 또다시 정치적 도구로 소비되고 만다.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상에서도 여성의 안전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
데이트폭력, 스토킹, 직장 내 성희롱, 디지털 성범죄…
이름조차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위험이 존재한다.
법은 강화됐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경찰에 신고해도 ‘연인 간 문제’라며 돌려보내는 경우가 있고,
접근금지명령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때가 많다.
피해자가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하다
결국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건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이는 곧 한국 사회가 아직도 여성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는 사회라는 방증이다.
제도는 있지만 실질적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
문제는 권력이다.
정치인들이 성비위 사건에 연루되면,
사건의 본질보다 당의 이미지 관리, 선거 계산이 먼저다.
피해자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진실은 흐려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정치권은 사실상 성비위에 있어 치외법권처럼 되어 버렸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정치권의 성평등 담론 자체를 불신하게 된다.
‘여성 인권’을 외치는 목소리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제도나 구호 이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1. 성역 없는 법 집행
정치인, 재벌, 권력자라고 해서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성비위 사건은 철저하게 조사하고, 동일한 기준으로 처벌해야 한다.
2. 사전 예방 중심의 제도 전환
데이트폭력과 스토킹은 ‘사후 처벌’보다 ‘사전 차단’이 훨씬 중요하다. 접근금지명령의 실효성을 높이고,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3. 사회적 문화 변화
성비위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권력형 범죄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공유하지 않는 한, 사건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여전히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 살고 있다.
정치권의 성비위, 일상 속 데이트폭력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비롯된다.
권력의 불균형, 제도의 무력함, 정치적 이해관계가 그 뿌리다.
성비위와 데이트폭력은 더 이상 “또 터진 사건”으로 치부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역 없는 법 집행, 예방 중심의 제도,
그리고 사회 전체의 문화적 합의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같은 비극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