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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사라지는 사람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그림자

by 다소느림

도시 하나가 사라진다?


유튜브 쇼츠나 SNS에서는

“한국에서 매년 10만 명이 사라진다”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종종 돌곤 한다.

얼핏 보면 믿기 어려운 숫자다.

중소도시 하나가 통째로 자취를 감추는 규모 아닌가.

실제로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매년 7만~12만 건의 실종 신고가 접수된다.

겉으로만 보면 ‘도시 소멸’에 비견될 만큼 큰 수치다.


하지만 이 안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진실이 있다.

대부분의 실종자는 단기간에 발견되거나 스스로 귀가한다.

끝내 찾지 못하는 사람은 매년 수백 명 수준이다.

숫자는 과장되었지만,

이 ‘과장’ 속에 우리가 간과하는 진짜 문제가 숨어 있다.


언론이 외면하는 구조적 문제


언론은 ‘한 아이의 실종’,

‘치매 노인의 행방 불명’ 같은 사건 단위 보도에는 적극적이다.

하지만 매년 수만 명이 신고되고 수백 명이 끝내 발견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짚어내는 기사나 기획은 거의 없다.


왜일까?


개별 사건은 클릭 수가 나온다. 그러나 “연간 실종 통계” 같은 구조적 이야기는 추상적이고 잘 읽히지 않는다.

대부분이 조기 발견으로 끝나기에 “큰 사건”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정책적 관심도 떨어진다. 실종 문제는 표와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실종 문제는 ‘매년 반복되지만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경찰과 수사권의 괴리


경찰은 수사권을 가져갔다.

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건 달라진 게 없다.

실종 사건 초기 대응은 여전히 늦고,

장기 미제 사건 관리도 부실하다.


“수사권 독립”이라는 거창한 명분은 있었지만,

정작 실종자 가족에게 돌아온 건 권력 투쟁의 피로감뿐이었다.

권력을 쥐었으면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구조는 “권력은 챙기되,

책임은 흐린” 모양새다.

실종 사건은 그 허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세계는 더 심각하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멕시코에서는 마약 카르텔과 정부의 폭력 속에 100,000명이 넘는 실종자가 공식 집계됐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실종 보도가 피해자의 성별·인종·계층에 따라 심각하게 편향돼 있다. ‘Missing White Woman Syndrome’이라는 용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전쟁과 내전이 벌어지는 지역에서는 가족 단위로 행방이 묘연해지는 일이 다반사다. 국제적십자(ICRC)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국제적으로 등록된 실종자가 70% 가까이 늘었다.


결국, 실종은 국경과 체제를 가리지 않는 전세계적 문제다.

그러나 다루는 방식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파편적이고,

언론·정부·사회 모두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사라지는 것은 숫자가 아니다, 삶이다


숫자는 많지만, 그중 극소수만 끝내 발견되지 못한다.

그래서 “실종 문제는 심각하지 않다”는 식으로 쉽게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그 ‘극소수’가 바로 누군가의 가족이고, 인생의 전부다.

매년 반복되는 수만 건의 신고,

그리고 잊힌 수백 명의 이름.


이건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안전망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남은 질문


왜 언론은 사건만 소비하고 구조를 말하지 않을까?
왜 경찰은 권력은 챙기고 책임은 소홀할까?
왜 사회는 “곧 돌아올 거야”라는 안일한 시선으로 무심히 넘어갈까?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는 한,

내년에도 또 다른 ‘10만 명’이 신고되고,

또 다른 가족들이 평생을 기다림 속에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숫자의 과장” 뒤에 숨겨진 실종 문제의 구조적 외면을 짚으려는 시도다.
사라지는 건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고,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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