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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5일제

또 다른 시선

by 다소느림

주 5일제의 환상, 그리고 새로운 착각


토요일 오전 수업이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주 5일제가 도입되자 세상은 크게 흔들렸다.
“나라 망한다”는 말이 떠돌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시간이 지나자 주 5일제는 당연한 일상이 됐다.

이제 사회는 주 4.5일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저 “쉬는 날이 늘어난다”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를 둘로 쪼개는 칼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기업 vs 나쁜 기업?


주 4.5일제를 시범 도입하는 곳을 보면 대기업, 공공기관, IT기업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자동화와 시스템 덕분에 근무시간을 줄여도 성과가 유지된다.
임금 삭감도 없고, 복지도 그대로다.


반면 중소기업·제조업은 어떨까?
생산라인은 멈출 수 없고,

납기는 맞춰야 한다.
근무시간을 줄이려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여력이 없다.
결국 인건비 압박, 임금 삭감,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 사람들은 말할것이다.
“좋은 기업은 주 4.5일제를 하고, 나쁜 기업은 여전히 주 6일제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그들은 단지 버티고 있는 것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제조업을 버리는 순간


한국 경제의 근간은 여전히 제조업이다.
반도체가 없으면 AI도 없고,

자동차·조선이 무너지면 수출도 없다.
그런데도 주 4.5일제 논의에서 제조업은 철저히 뒷전이다.

만약 이 산업이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 전체에게 돌아온다.


대기업 사무직은 더 많은 여유를 누리고,

중소기업 노동자는 더 쥐어짜이고,

산업 기반은 무너진다.


이게 과연 모두를 위한 제도일까?


특권이냐, 권리냐


주 4.5일제는 결코 나쁜 제도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부 계층만 누릴 수 있다면,

그건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다.
정책이란 모두를 위한 것이라야 한다.

대기업 사무실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밤새 꺼지지 않는 공장의 불빛도 함께 봐야 한다.


우리는 더 많이 쉴 권리가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쉼이 다른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진다면,

그것은 사회적 진보가 아니라 양극화의 가속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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