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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물림

3루에서 태어난 이들의 착각

by 다소느림

출발선이 다른데, 공정한 경쟁일까?


드라마 스토브리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본인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3루타를 친 줄 안다.”
짧지만 묵직한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실력과 성취로 착각하는 모습을 꼬집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물림 구조가 딱 이렇다.

공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심지어 동네 식당과 자영업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공기업과 기업의 ‘특혜 대물림’


공기업에서 임직원 자녀가 채용 과정에서

우대받는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청년들은 분노한다.
열심히 준비해도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노력보다는 ‘출신 배경’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걸 체감하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대기업은 노조 협약을 통해 직원 자녀 우선 채용 조항을 두기도 했다.

표면상으론 ‘복지’지만, 밖에서 보면 불공정한 특권으로 읽힌다.


자영업과 식당도 예외가 아니다


“유명 맛집 아들이 차린 가게”라는 말만으로도 손님은 자연스레 몰린다.
간판에 붙은 ‘혈통’이 이미 보증수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의 성패는 본인의 노력에 달려 있다.
맛을 지켜내고 발전시키는 건 결국 주인의 역량이지만,

출발선 자체가 이미 남들과는 다르다.
처음부터 절반은 확보한 장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두고 흔히 말한다.
“땅 짚고 헤엄친다.”


정치, 문화, 스포츠까지


정치권에선 지역구 세습이 흔하고,

연예계와 스포츠계에선 부모의 이름값이 곧 기회다.

기량이 비슷하다면 결국 누구의 자녀인지가 더 크게 작용한다.

이 모든 현상은 같은 뿌리를 가진다.

출발선의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것.


문제는 대물림이 아니라 태도


대물림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부모의 노력으로 쌓아둔 기반을 자녀가 이어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자기 성취인 양 내세우는 태도다.
출발선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말하는 순간,

사회적 신뢰는 무너진다.


청년들의 억장


청년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약속이 무너지는 순간,

미래에 대한 희망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3루에서 태어나고,

누군가는 아예 구장 입장권조차 받지 못한 채 밖에서 서성인다.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태도.
바로 그 꼴이 보기 싫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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