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과 국제화, 그리고 무너진 경계선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라 불렸다.
해외 뉴스에서나 접하던 마약 사건은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2023년 한 해에만 마약류 사범 2만 7천 명이 적발되었다.
불과 10여 년 전과 비교하면 두세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더 이상 ‘청정국’이라는 말은 우리를 지켜주는 방패가 되지 못한다.
문제는 ‘범죄의 거리감’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강남 학원가에서는 학생들에게 ‘마약 음료’가 배포됐다.
대학 동아리에선 회장이 회원들에게 LSD와 대마를 제공했다.
도심 버스정류장에서는 ‘QR코드를 찍으면 액상 대마를 구매할 수 있다’는 광고물이 붙었다.
우리가 흔히 오가는 거리, 학교, 카페, SNS 속에서 마약은 이미 우리의 곁에 와 있다.
마약범죄가 늘어난 데는 여러 요인이 겹쳐 있다.
텔레그램, 다크웹, 가상화폐는 익명성을 보장한다.
과거처럼 어두운 골목에서 은밀하게 만나 거래할 필요가 없다.
QR코드 하나만으로도 거래는 성사된다.
마약은 더 이상 국경에 막히지 않는다.
국제우편이나 특송 화물 속에 소량으로 섞여 들어온다.
수백 kg 단위의 밀수도 적발된다.
한국은 이제 ‘소비 시장’으로 분류되고 있다.
미국, 태국 등 일부 국가에서 대마가 합법화되면서
“술보다 덜 위험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졌다.
특히 젊은 세대는 호기심과 도전심으로 쉽게 발을 들이게 된다.
코로나 이후 경기 침체와 불안정한 고용은
범죄조직의 ‘알바 모집’을 쉽게 만들었다.
“몇 시간만 운반하면 수백만 원을 준다”는 유혹은
특히 청년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끌어들였다.
경찰은 대응을 강화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국에 4개뿐이던 마약수사대는
이제 전국 모든 지방청에 설치되었다.
단속 건수도, 압수량도 증가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재범률: 마약사범의 재범률은 약 30% 이상. 한 번 발을 들이면 끊기가 어렵다.
은밀화: 단속이 강화될수록 유통은 더 은밀해지고, 온라인으로 숨어든다.
치료 공백: 수사와 처벌은 있어도, 중독자 치료와 사회 복귀를 돕는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
단속만으로는 문제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국제우편과 항공화물 검색 강화, 해외 수사기관과의 공조,
온라인 플랫폼과의 협력을 통해 유통망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한 예방 교육이 절실하다.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마약은 일시적 호기심이 아니라
평생을 무너뜨리는 선택”임을 보여줘야 한다.
마약 중독자는 범죄자이자 동시에 환자다.
이들을 교도소에 가두는 것만으로는 답이 없다.
치료, 상담, 직업훈련을 통해 사회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학교, 학원, 가정, 지자체가 함께 감시망이자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익명 신고 시스템, 상담 창구, 지역 보건소의 연계가
촘촘히 마련될 때 예방 효과는 커진다.
마약은 더 이상 ‘어딘가 멀리 있는 범죄’가 아니다.
우리가 걷는 거리, 다니는 학교, 스크롤을 넘기는 SNS 속에 이미 침투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여전히 “청정국”이라는 옛 환상에 기대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단속·예방·치료·재활이라는 네 축을 사회 전체가 함께 세워갈 것인가.
“당신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